요즘은 길을 걸을 때 느끼는 것이 2가지입니다. '점점 추워지는구나'와 '걸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입니다. 반면에 지속되는 장거리 출퇴근으로 허리가 아프고 족저근막염이 재발했습니다. 그런 저보다 더 먼 거리 출퇴근하고 더 힘들게 일하면서 지내는 분들을 매일 목격합니다. 아내가 우리 삶은 그래도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모든 분들의 하루가 그렇게 애쓰신 만큼 만족하고 행복한 하루이기를 소원하면서 제가 만난 "깨알"들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느끼는 재미와 감사가 쏠쏠합니다. 덕분에 하루가 먹먹한 날도 이겨나갈 힘이 생기기도 하고요.
#1. 일방통행
새로 깔린 도로 위에 새로 깔끔하게 페인팅된 글씨를 보았습니다. 보면서 저는 재밌는 상상도 해봤습니다.
새로 공사한 까만 아스팔트 도로 위의 글자들이 엄청 선명합니다. 그 글씨들은 보는 방향에 따라 발칙한 상상을 하게 만듭니다. 어떻게 보면 '종이컵받침 탕후루'같기도 하고요. 어떻게 보면 '어묵 꼬치'같기도 하고요. 어떻게 보면 담장너머로 보이는 '미국 눈사람'같기도 합니다. 혼자서 길바닥을 보면서 '킥킥'웃고, 여러 방향으로 사진을 찍고 있으니 지나가는 분들이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이럴 때 저는 그런 생각도 해 봤습니다. 제가 차라리 유명한 사진작가였다면 제가 대단한 작업을 하는 것으로 보여서 더 재밌었을 텐대하고 말입니다.
#2. 꽃단장 의자
어느 카페 밖에 놓인 의자를 보면서 꽃단장이 생각났습니다. 이 카페에는 모든 것이 다양하고 색다른 모습으로 재창조된 것들이 많습니다. 그 와중에 제 시선을 끄는 것은 이 의자였습니다.
의자들 사이에 유독 돋보이는 의자가 있었습니다. 의자는 홀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물론 겉에 씌워놓은 커버를 벗겨내면 평범한 의자입니다. 지나가다 그 의자를 바라볼 때 느낌은 티타임 참석한 중년부인 같았습니다. 모임에 참석하느라 한껏 멋 부린 꽃중년정도로요. 이 의자의 커버가 마치 옷 같았습니다. 보는 내내 매우 즐거웠습니다.
#3. 핑크 알갱이
근처 까페의 손잡이가 늘 시선을 끌었습니다. 오고 가며 재밌는 상상을 했습니다.
와우. 큼직하고 펑키한 손잡이는 길을 걸을 때마다 시선을 끌었습니다. 들어가면 온통 핑키 핑키 해서 다소곳해지고 마치 소녀의 공주집에 짐승들이 들어간 느낌이라서 얼른 커피만 사서 나오곤 했습니다. 손잡이를 잡고 열 때마다 이 알갱이로 커피를 내리면 '핑키 커피'가 되면 되는 건 아닐까? '이렇게 큰 커피 알갱이'로 커피 백 잔 만들 수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상상을 하면서 오고 갔습니다. 이제 그런 상상은 더 이상 못합니다. 문을 닫았고 다른 가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한동안 맘껏 상상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4. 도와줘요.
길모퉁이 또는 버스정류장에는 항상 킥보드가 줄을 지어 서있곤 합니다. 태풍후나 취객들이 많은 동네에는 종종 킥보드들이 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여차하면 일으켜달라고 "넘어졌어요. HELP!"라는 깨알마케팅문구를 새겼을 수도 있습니다. 쓰러져있는 킥보드 바닥의 문구를 보면서 다시 일으켜 세운 적도 있습니다. 그랬더니 '삐삐삐'하는 알람이 계속 울려서 세우자마자 자리를 피했던 경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다시 일으켜 세우지 않기도 합니다. 차라리 이런 상상도 했습니다. 쓰러지면 오뚝이처럼 다시 평형을 유지하도록 세팅되어 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쓰러진 킥보드를 보면서 '재밌다'라는 생각과 함께 '그래도 도울건 도와야 한다.'라는 마음을 먹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모르는 체 하지 않겠다며 새로 다짐합니다.
#5. 천사
길바닥에 툭 떨어져 있는 정말 깨알 같은 인형을 찍었습니다. 딸 둘 아빠가 아니었다면 솔직히 쳐다보지 않았을 것이고요. 가정을 만들고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뭐 눈에 뭐만 보인다.'는 옛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딸 둘 아빠에게는 길거리 바닥에 손톱만 한 인형도 눈에 들어옵니다. 이런 것이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아이들과 대화 때문이었습니다. 집에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다소 안 예쁘게 만들어진 인형 열쇠고리가 있었습니다. '안 예쁘네. 과감하게 버리자!'라고 말했더니 딸아이가 '아빠, 이 쪼꼬만 인형 내가 얼마나 아끼는 건데요. 안 돼요! 예쁘단 말이에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순간 '아! 아이의 눈에는 프린팅이 잘못된 인형 눈코입이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이쁘구나. 몰랐네!'라면서 '아차!'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래. 미안. 버리지 말자!'라고 말하며 서랍장에 넣어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 길을 걷다가 떨어져 있는 손톱만 한 인형이나 구석에 버려진 인형열쇠고리를 보더라도 일단 한번 더 보게 됩니다. '저걸 잃어버린 어느 아이는 얼마나 울고 있을까?'라고 생각하면서요.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길을 걷다 보면 눈에 보이는 게 참 많습니다. 그리고, 의도해서 느끼려고 하면 잘 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느껴지는 흐름대로 보고 있으면 웃기도 하고 반성도하는 일들이 생깁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과 사물들 모두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점점 추워집니다. 이제는 옷을 잘못 입으면 '덜덜덜'하는 날도 생깁니다. 이렇게 추워지는 날씨 속에서도 모두의 마음이 얼어붙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노숙자분들이 춥지 않은 곳에서 숙식하며 재도전할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결같이 길을 걸으면서 구석구석 보이는 "깨알"들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느낀 감정 그대로 적어보지만 서툴고 투박합니다.
작가님들의 글글솜씨보다는 한참 부족합니다. 그래도 일상 속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이 글을 통해 보셨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오늘도 여기까지 읽으시며 공감해 주신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깨알프로젝트 #21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