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보면 도로 위를 걷거나 건물사이 골목을 돌고 돌며 다니기도 합니다. 그냥 터덜터덜걷다보면 여전히 "깨알"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요. 무노동으로 획득하는 맛도 있습니다. 그 맛을 잃지 않으려고 사진을 찍습니다.
그 사진들이 대단하지 않고 소유권이 저에게 있지도 않기 때문에 토요일에 올리는 사진들은 미술관도 아니고 사진관도 아닙니다. 그래서, "깨알 프로젝트"라고 하면서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제가 느낀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겠습니다.
#1. 미장원..
점심을 간단히 먹은 후 골목을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으면 그것에 대한 감상을 음미하는 편입니다. "미장원?"이라는 단어를 보는 자체로 웃었습니다.
어릴 때, 머리 깎아야 할 때 엄마 따라가면 쑥스럽긴 한데 뭔가 색다르면서 이상스러운 재밋거리가 있던 미장원이 떠올랐습니다. 미장원이라는 단어 자체는 그런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 웃었습니다.
미장원이라는 단어와 함께 간판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똑 단발"로 모두를 아름답게 만들어서 내보내주는 마술공장 같은 착각도 들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미장원"은 정말 최상의 아름다움을 디자인해 줄 것 같은 원장님이 기다리실 것 같은 착각도 들었습니다.
간판하나에 추억과 신뢰를 만끽하는 잠깐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원장님, 간판이 너무 아름다워서 찍고 감상했습니다. 혹여 미장원 간판이 사진으로 쓰였다고 노여워하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2. 아이스크림..
아이들이 워낙 가고 싶어 해서 들어간 도넛 가게였습니다. 도넛도 휘황찬란하고 아트 한데, 가게 내부가 온통 핑크 핑크했습니다. 그런 데다가 한참을 기다려서 받은 음료는 "판타지"자체였습니다. 음료도 핑크 핑크한 데다가 쿠키와 아이스크림이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는 모양새로 컵 안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 핑크 핑크한 음료컵에 꼽힌 하얀 빨대가 환상 속에 빠진 저의 모습 같았습니다.
그 음료를 빨대로 먹고 있는 아이의 표정 또한 "판타지"에 빠진 동화 속 아이들 같았습니다. 너무 핑크 핑크한 곳은 나이 먹은 아저씨가 앉아 있기에는 미안한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 아이 아빠라는 치트키가 있기에 가능하기도 합니다. 덕분에 저도 들어가서 즐기고 있는 느낌이라서 은근히 재밌었습니다.
세상에는 먹을 것도 많고 볼 것도 많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어른으로 살다 보면 행복하고 즐거운 것보다 힘들고 지치지만 감당해야 할 것이 더 많아집니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할 것이 더 많아지고요.
그런 시간에 대한 보상처럼 가끔은 "판타지"로만 가득 찬 공간 속에서 앉아 있는 날도 생깁니다. 이 날이 그런 날이었습니다. 아이들 덕분에 앉아 있음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제 나이에 비해 아이들이 아직 많이 어려서 이런 기회들이 많습니다.
#3. 베이비..
출근길에 만나는 베이비 스튜디오의 간판은 늘 태초의 신비를 잊지 않도록 해줍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그것도 세 번이나 겪었습니다. 물론 아내가 출산했고요.
세 번 모두 힘들게 출산한 아내를 보고 느낀 것이 많은 탓에 언제나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몇 번이나 감사하다고! 고맙다고! 수고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아이 셋이 태어나고 이제는 아이들과 매 순간 좌충우돌하며 엎치락뒤치락하며 살고 있습니다. 수차례 혼내고 화해하고 반성하 고를 반복하는 시간들의 연속입니다.
그런 시간들 속에 가끔은 어른들 말을 안 들으려고 하는 아이가 미워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 속상하고 죄책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복잡 미묘한 마음이 싹~ 사라지게 하는 것이 바로 출근길에 보는 '베이비 스튜디오'의 사진입니다.
'태초의 신비를 간직하고 세상에 태어난 아기'를 만났던 경이로움과 감사를 잊지 말라는 리마인더 같습니다. 저 간판을 볼 때마다 '그래! 그때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했던가!! 얼마나 조심해서 만지며 안아줬던가! ' 라며 다시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면서 지금 곁에 있는 세 아이를 무한 사랑하고 이해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잠시 서운하고 미웠던 마음이 싹~ 사라지는 것입니다.
스튜디오 사장님! 아기 사진이 너무 이뻐서 출근길에 볼 때마다 감사와 감격을 리마인더 하며 지나갑니다. 그래서, 찍어서 저의 감상을 적어 보았습니다. 혹여 보신다면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 사진이 너무 이쁘고 제게는 매일 리마인더랍니다. 감사드립니다.
#4. 노을..
이번에는 퇴근길입니다. 강원도의 노을 맛집도 아니고, 서해의 어느 섬 펜션의 저녁하늘도 아닙니다.
퇴근하면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집 앞에서 본 하늘입니다. 마지막으로 타오르면서 저무는 태양이 내뿜는 열기와 빛을 받아주고 있는 저녁 하늘과 구름들이 만들어내는 "저녁 향연"입니다.
그런 하늘의 아름다움을 '노을'이라고 단어 한마디로 정의하고 느끼기에는 너무 아쉽고 부족합니다. 이런 노을을 느끼며 발걸음을 멈추는 저녁을 매번 공짜로 느끼고 있는 것에 무한 감사를 느낍니다.
노을이라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움의 극치인데 사람인 제가 기여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시간에 따른 자연의 순환은 정말 신비하고 놀랍습니다. 파란 하늘, 솜사탕 같은 구름, 도저히 바라볼 수 없이 이글거리는 태양, 총천연색 노을의 저녁하늘도 제가 기여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아무 노력 없이 매일 느끼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공짜로 매일을 살아가니까 감사하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5. 우체통..
가다가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점점 사라지고 있는 빨강 벽돌집, 그와 정반대의 파란 철제대문은 그 구성만으로도 강렬하게 시선을 끌어당깁니다.
그런데, 저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있었으니 "우체통"이었습니다.
다 찌그러지고 플라스틱 커버도 사라졌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자기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붙어 있으면서 자기 맡은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긴 세월 동안이겠지요.
오늘도 여전히 주인에게 배달된 고지서를 보관하면서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찌그러지고 녹이 슬어도 변치 않는 '우체통'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자기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도 떠올려 보았습니다.
인상 깊었던 '우체통'이었습니다. 아마도 늘 여전히 기쁜 소식을 전해주기 때문에 망가져도 쉽게 제거하지 못하겠지요. 저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소원해 봤습니다.
"뭐든지 보기 나름이다."라고들 종종 얘기합니다. 저의 "깨알"들이 그런 것 같습니다.
별거 아닌 것들인데 재미를 줍니다. 그런데, 어쩔 때는 감동도 있고요. 심지어 반성도 하게 합니다. 그러니 그때부터는 길거리 별거 아닌 존재가 아니라 소중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하루동안 어쩌다가 뜬금없이 만나는 깨알들을 '순간포착'하는 순간마다 행복합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볼 때도 있고요. 같이 길을 걷던 아이들이 "아빠! 또 뭐 찍는다!"라며 웃기도 합니다. 여전히 그럴 수 있는 것도 즐겁습니다.
사진을 붙이고 쓰다보니 벌써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여기까지 읽고 공감해주심에 미리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다음 주 토요일에 또 "깨알프로젝트"로 찾아뵙겠습니다.
큰사람의 깨알프로젝트 #29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