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본 깨알들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느끼고 지냅니다. 그중에 이제 사용하지 않게 되는 물건과의 추억을 더듬어보는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어느 순간 내 옆에서 늘 보던 물건(유리잉크병, 만년필, 펜글씨교본)이 조용히 사라지거나, 더 이상 업데이트가 안된다고 사용을 못하게 되는 휴대폰처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의 흐름에 이끌려 우리 곁을 지나가야 되는 물건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런 물건들을 길에서 만날 때도 있고, 생활 속에서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곰곰이 추억을 되살려보는 재미를 즐깁니다.
한동안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지내느라 추억까지 소환해서 글을 써 볼 여력이 부족했습니다. 오랜만에 소환된 추억들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5. 우유통
이제는 보기가 쉽지 않은 우유통입니다. 이제는 학교 구석에 우유보관함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광우병과 수많은 가축병에 휘말릴 때마다 수요곡선이 출렁거리는 바람에 1차 생산자분들이 생계곤란을 겪기도 했던 우여곡절의 우유와 꼭 붙어있는 물건입니다.
요즘에는 마트에 가면 물건 보관 또는 이동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전거에 매달아 놓고 주말에 마트 구매 물건을 넣고 다니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각종 연장들을 넣어서 다니는 인테리어 시공사장님들을 보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이동 및 보관을 위해 사용되며 수많은 사연이 묻어 있는 물건이기도 합니다.
그런 우유통을 보면서 떠올랐던 저의 추억을 꺼내보기로 합니다.
1. 초등학교 때 너무도 싫었던 우유통
예전에는 한 반에 40명이 넘는 아이들의 우유통을 들고 오는 자체가 너무 싫었습니다. 너무 무겁기도 하고 귀찮아서였습니다. 그래서, 어떡하면 그날을 피할 수 있을까 궁리하면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먹기 전 우유통을 들고 오는 것도 싫지만 다 먹고 남은 우유갑을 담아 반납하는 게 제일 싫었습니다. 우유갑에서 남은 우유가 흘러서 교복바지를 더럽히는 일도 제법 많았기 때문입니다.
2. 중학교 때는 훌륭한 실내 농구공이었습니다.
축구보다 농구가 좋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우유갑을 두 개 겹쳐서 다시 우유에 쑤셔 넣으면 두툼하고 묵직한 농구공이 됩니다. 그러면, 청소용구정리함 위에 또는 책상 위에 놓고 농구게임을 했습니다. 책상이 넘어져도 깔깔거리며 웃고 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3. 짖궃은 호신용품으로 변신했습니다.
전부 마시고 난 우유갑에 분필가루를 털어 넣습니다. 준비가 되면 서로 구석구석 숨어서 대응할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대면하자마자 얼굴을 향해서 우유갑을 두 손으로 손뼉 치듯이 두드립니다. 그러면 풀풀 거리면서 하얀 분필 가루가 얼굴을 뒤덮습니다. 더 많이 뒤집어쓴 친구가 이내 주먹을 휘두르며 옥신각신합니다. 그런 놀이도 그저 신나고 즐거웠었습니다.
4. 복도에서는 축구공으로 변신
농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유갑에 종이를 구겨 넣고 묵직하게 하면 축구공이 됩니다. 우유통은 훌륭한 골대가 돼서 복도나 교실구석에 놓고요. 슬리퍼를 신고 미친 듯이 달리면서 발로 차야만 골로 이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교복도 찢어지고, 실내화도 찢어지고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거나 코피가 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 순간이 그 어떤 게임보다 신나는 때도 있었습니다.
5. 방학숙제 도우미가 되는 우유갑
방학이 끝날 무렵에는 방학숙제로 뭔가를 만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유갑은 훌륭한 도우미가 됩니다. 붙여놓거나 찢어서 뭔가를 재창조해도 훌륭한 숙제가 됩니다. 그렇지만 부모님이 많이 고생해 주셨습니다. 뒤늦게 벼락치기 만들기 숙제한다고 하면 필요한 개수만큼 쓰레기통을 뒤져주시고 우유를 사 드셔서 필요한 개수를 맞춰주시기까지 해주셨습니다. 그때는 항상 '서울우유'만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6. 우유통을 들고 벌서다.
가끔 수업시간에 장난치다가 혼날 때도 있습니다. 장난 정도에 따라 당구채로 맞기도 하고, 그냥 손들고 서 있기도 했습니다. 아니면 교실 밖에 나가 있기도 합니다. 어쩔 때는 우유통을 들고 서 있으라고 지시하는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들고 서다가 웃음바다가 된 적도 있습니다.
아직 먹기 전 우유통은 엄청 무거워서 벌서는 게 제대로 힘들었습니다. 다 먹고 난 다음에 우유통을 드는 건 가볍지만 여차하면 먹다 만 우유에서 흐르는 우유가 머리부터 교복까지 타고 흘러서 웃음바다가 됩니다. 그러 면벌 서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웃음바다가 됩니다. 그러는 순간 수업분위기가 망쳐지고 선생님은 얼굴이 벌게지시면서 '자습'을 통보하고 끝나버렸던 적도 있었습니다.
7. 썰매로 사용했습니다.
한겨울이 되면 아파트 담장아래 배수로, 내리막길, 달동네 친구집 가는 오르막길들이 모두 슬로프가 됩니다.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학교 우유통을 들고 서둘러 달려갔습니다. 안에 들어가서 타면 일반 썰매가 됩니다. 뒤집어서 위에 타면 극강의 스릴감을 맞볼 수 있었습니다. 여차하면 떨어져서 빙판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더라도 깔깔거리며 웃고 놀았습니다.
8. 이제는 가끔 보이는 우유통이 짠~합니다.
예전에는 우유가 당연히 플라스틱 우유통에 보관 및 배송되곤 했습니다. 이제 멸균우유 같은 경우는 종이케이스에 밀봉돼서 유통됩니다. 그래서, 늘 보는 물건이 아니긴 합니다. 그러다가 동네 골목길에서 우유통을 만났습니다. '우유유통대리점'앞인 덕에 한동안 못 보던 우유통이 잔뜩 쌓여있는 것도 보았습니다. 너무 반가워서 한참을 빙긋이 웃으며 서 있었습니다.
골목 모퉁이에서 보게 된 우유통 두 개가 케이블타이로 꽉 묶여 있었습니다. 원래 떨어지면 안 되는 부부를 떠올리며 '깨알 프로젝트'에 포함시켜서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유통, 우유갑에 얽힌 추억들이 방울방울 생각나서 '잊지잃 프로젝트'로 옮겨서 쓰기로 했습니다.
이제는 일상생활에서 우유통을 사용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이 물건도 어느새 우리 곁을 떠나고 있습니다. 대체될 물건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기에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라지는 물건과 우리의 추억도 떠나보내야 하기 때문에 잠시 붙잡아 봤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깨알'중에 사라질 물건, 이미 사라졌는데 어쩌다 보게 되면 '사명감 반 재미 반'으로 '잊사잃 프로젝트'를 작성하게 됩니다. -잊히거나 사라지거나 잃어버리는 물건들에 대한 추억소환 프로젝트입니다.
혹여, 제가 올리는 물건들에 얽힌 추억이 생각나서 댓글을 붙이신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행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일한 물건에 저와 다른 추억을 가진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마치 라디오에서 한 주제에 대해 각자의 사연을 올려서 나누는 것과 같은 효과도 있겠습니다.
초등학교 때 학교 과제로 동네 어르신들을 만나서 인터뷰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주제가 '6.25를 겪은 분들의 얘기'를 듣고 정리해서 발표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동네 어귀에 먼 산을 바라보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분들에게 가서 얘기를 듣다가 생각난 것이 있었습니다.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6.25를 실제로 겪은 분들이 안 계실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물건들을 보면서 소환하는 추억도 누군가에게는 '아련한 추억'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듣지도 보고 못한 얘깃거리'일 수도 있습니다.
'잊사잃 프로젝트'를 적으면서 그런 의미를 늘 생각합니다. 어릴 때 느꼈던 생각을 잊지 않고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적고 있습니다. 엉뚱할 수도 있지만 읽으시면서 함께 옛날 추억을 소환하신 분이 있으시다면 저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오늘도 여기까지입니다. 끝까지 읽어 주신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5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