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나는 많은 물건들의 의미와 추억을 되새겨보기 네 번째입니다. 오래되었지만 잘 관리되어서 여전히 사용 중인 물건들도 많지만 곧 폐기 처분되려고 버려진 것들도 많습니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물건들이 있고 그 물건들을 경험해 봤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할 때가 있고요.
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머지않아 아날로그적 감성을 돈 주고 느끼는 일들이 점점 많아질 것 같습니다. 종이에 글 쓰고 그림 그리기들도 쉽게 해보지 못할 일이고요. 그런 것들을 접했을 때 느끼는 편안한 감성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패드에 종이질감 보호필름을 붙이는 것도 같은 맥락 같고요.
그런 것과 같은 맥락에서 '온기레터'의 우체부들과 그 감성을 통해 힐링하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중에는 종이 편지지를 사기도 쉽지 않으며 '오돌토돌'한 표면의 종이에 '울퉁불퉁' 깎은 연필로 '사각사각'소리 내며 글씨 쓸 기회도 정말 많이 없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길 가다가 보이는 물건 중에 잊히고 사라지고 잃어버리는 것들에 대해서 두레박에 남은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시는 심정으로 찬찬히 적습니다.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3. 총채- 먼지떨이.
수많은 기쁨과 아픔을 주는 물건이었습니다. 손잡이가 나무 막대기일 때부터 얇은 대나무로 바뀌더니 이제는 플라스틱으로 바뀌었습니다. 급기야 이제는 무지갯빛 정전기 먼지떨이개로 바뀌었습니다. 아쉬워지기도 합니다.
본연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사용되는 물건들이 몇몇 있습니다. 총채(먼지떨이)도 그런 물건 중의 하나입니다.
1. 청소(본래 의미)
학교 다닐 때 먼지떨이개를 집는다는 것은 대단한 눈치가 필요했습니다. 빗자루질과 막대걸레질 또는 책상정리와 쓰레기 버리기의 노동과는 차원이 다른 청소였기 때문입니다. 분주한 청소상황에서 그저 창틀과 유리창 그리고 각각 부착물들의 먼지를 털어내주기만 하면 됩니다. 청소 시간 내내 프리랜서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청소할 수 있습니다. 청소결과가 그리 크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부담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역할을 가만히 볼 친구들이 아니기에 늘 쟁탈전을 거듭하다가 청소시간이 끝나기도 합니다.
예쁜 여학생이 들고 청소하게 되는 날은 아무도 태클 걸지 않았습니다. 그게 다 똑같은 남자 마음인가 봅니다.
그러나 얄밉게 구는 남학생이 들고 설치는 날이면 곧 싸움이 납니다. 그리고, 먼지떨이개의 손잡이가 여지없이 부서집니다. 부서질 때까지 서로 칼싸움하고 엉덩이 때리면서 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부러진 손잡이를 보고서 혼날 일을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학급회의 때 또 사달라고 하면 되었으니까요. 분리된 청소 술을 머리에 쓰고 돌아다닙니다. 청소시간이 이제는 파티시간으로 변하며 난장판의 극치가 됩니다. 아이들은 한바탕 웃다가 청소시간 채우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2. 가정교육
먼지떨이개가 모든 가정 필수품이었습니다. 먼지떨이개, 연탄집게, 빗자루는 필수 3종세트입니다. 종종 각 가정에서 가정교육을 위한 행동대원이 되기도 합니다. 잘못한 일이나 거짓말 그리고 싸웠을 때 혼쭐나는 날은 여지없이 먼지떨이개가 춤추는 날이었습니다. 손바닥을 맞기도 하고 발바닥을 맞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더 이상 맞고 싶지 않아서 잡았다가 나무 손잡이가 힘없이 부러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른한테 대들었다고 더 혼나게 됩니다. 이럴 때면 먼지떨이개가 보기 싫기도 했었습니다.
3. 제기차기
먼지떨이개가 부러지면 그 역할도 끝나는 셈입니다. 그러면 여지없이 제기차기가 시작됩니다. 무게중심이 없기 때문에 그저 차는 대로 날다가 날다가 떨어집니다. 그래도 그 모습이 재밌고 힘없이 풀풀 날아오르는 먼지떨이개 술을 힘껏 차면서 개수를 경쟁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날도 있었습니다.
4. 응원단장
학교 체육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먼지떨이개는 응원단장의 힘을 실어줍니다. 허리춤에 고무줄을 감고 먼지떨이개 몇 개를 차고 나면 하와이안이 됩니다. 그 모습으로 각 반 앞에서 경쟁하듯 진두지휘하며 우리의 응원실력을 뽐냈습니다. 가끔 짓궂은 생각으로 복장을 개량합니다. 체육복 바지는 허벅지까지 걷어붙여서 먼지떨이개 속으로 숨깁니다. 체육복 상의는 배꼽 위로 걷어 올립니다. 그런 모습으로 반 앞에서 갖은 춤을 추며 응원을 리딩합니다. 그런 모습으로 2~4명이 나서서 할 때면 여지없이 응원상 받는 날이 되기도 합니다. 응원 술보다도 더 인기 만점이었습니다.
5. 아이스하키
콘크리트 바닥으로 구성된 학교 복도는 언제나 다양한 운동이 시도되는 공간입니다. 우유팩과 더불어서 먼지떨이개 술은 훌륭한 축구공이 됩니다. 아이스하키처럼 슬리퍼 신은 발로 콘크리트 바닥을 휘저으면서 먼지떨이개 술을 발로 차고요. 상대편 복도로 신나게 차면서 골을 넣습니다. 미끌미끌한 콘크리트 바닥은 훌륭한 아이스링크가 됩니다. 쉬는 시간 10분이나 점심시간은 아주 꿀맛 같은 운동시간이 됩니다. 그러다가 먼지떨이개 술을 밟고 넘어지는 날에는 머리통이 절절해지는 뇌진탕 순간도 맛보기도 합니다. 그런 순간에도 깔깔거리며 웃는 학교 시절이 즐거웠습니다.
이제는 먼지떨이개가 쓰일 일이 없습니다. 먼지를 털어내면 잠시 날아다니다가 다시 먼지가 붙게 됩니다. 오히려 공기 중에 먼지가 돌아다니게 된다고 잘 사용하지 않는 추세입니다. 그 자리를 정전기 먼지떨이개가 이미 대체했습니다. 색깔도 오색찬란하고 가볍고 정말 먼지를 잘 빨아들이는 모양새이긴 합니다. 그래도 아쉬운 건 우리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함께하며 일희일비하던 먼지떨이개가 사라지는 건 조금 아쉽습니다.
길을 걸으면 만난 먼지떨이개가 반가웠지만 플라스틱 손잡이라서 다소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예전과 같은 나무 또는 대나무 손잡이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과거에 물건이 한참을 쓰이다가 사라졌지만 그 덕분에 현재를 살고 있음에 감사할 때도 있습니다. 지금 기성세대가 사용한 물건을 같이 사용한 세대로써의 자부심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문화와 과거의 경험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길을 가다가 만나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물건들이 보이면 그것과 얽힌 추억을 나눠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