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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를 껴야 하는..아빠

부자

추운 날씨인데 아이들과 외출해야하는 날이었다. 



 처가살이동안 공간부족과 이사준비를 이유로 옷을 최대한 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패션에 신경쓰지 않는다. 유행을 따라갈 돈도 없다.  블랙 통바지에 카키색 티셔츠 그리고 흰 운동화에 패딩점퍼로 준비 1차 끝이다.



반면에 아이들은 한참을 재잘거려야 외출준비가 끝난다.

"오늘 머리를 묶을까? 풀까? 패딩점퍼에 바지를 입었더니 몸만 뚱뚱해보인다.바지가 안 이쁘다. 언니랑 똑같은 색깔 옷을 입고 싶다.새 신발을 신고 다니면 바닥이 더러워져서 싫다. 추운데 통청바지가 입고 싶다. 거리에서 본 언니들처럼 회색 트레이닝에 까 숏패딩을 입고 싶다. 등등으로 거울 앞에서 한참을 조잘거리고 투덜거린다. 벌써부터 신경쓸 일이 많은 외출준비의 시작이다.  그렇게  준비중인 두 딸들을 큰 아들은 신기한듯 쳐다보고 있다. 그렇게 에너지를 뿜뿜하며 왁자지껄하는 아이들이 그래도 이뻤다. 



와글거리는 아이들 외출준비가 끝나갈즈음에 나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외출준비의 마무리로 안경 또는 렌즈착용을 한다. 특별한 것이 없다면 그냥 안경을 쓰고 외출하고 있다. 오늘도 특별한 날이 아니라서 안경을 착용하고 현관으로 갔다.



아이 셋이 모두 준비를 마치고 좁은 현관에서 투닥거리고 있었다. 무심하게 운동화에 두 발을 넣고 일어섰다. 그때, 한 아이가 내게 말했다.


"아빠, 렌즈 안껴요? 에잉...렌즈가 좋은데...."

"어? 어? 왜? 아빠 오늘 괜찮은데..."


"음...아빠는 렌즈 낄 때가 멋있어요."

"아빠가 그렇다고?"


"아빠는 렌즈 낄때가 멋있어요. 안경을 끼면 못 생겨보이고 부자같이 안 보여요."

"어? ...아하하...알았다. 렌즈 낄께..."


그렇게 대답해주고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안경을 벗고 렌즈를 끼면서 머리에 왁스를 조금 바르고 나왔다. 요즘에는 사춘기가 시작된 두 딸들이 싫어할 행동들을 안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봐요. 아빠. 훨씬 멋있잖아요. 바로 이거에요. 아빠!!!"

"아! 여기에 양복 입으면 진짜 멋있던데. 아빠!"

"돈도 많이 벌어 보이고, 큰 회사 다니는 사람같고, 부자 같아요."

"그래. 다음에 그렇게 다닐께! 나가자."

"네..."


이런 대화를 하면서 다함께 출발했다. '렌즈를 끼면 더 잘생겨보이고 부자같아 보인다고?' 라는 아이들 말을 계속 곱씹으면서 운전을 했다.



사실 아이들 눈은 정확하다. 열심히 일한다고 아침에 나가고 저녁에 허옇게 지친 얼굴로 들어올때 항상 렌즈를 끼고 머리는 왁스를 바른 상태로 다녔다. 그리고,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이면 나름대로 반듯하게 차려입고 구두신고 다니곤 했다. 그럴때 아이들은 아빠가 엄청 멋있다고 엄지척을 해주곤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 원하는 것들을 곧잘 사줬다. 그래봐야 과자. 새로운과자이지만..



그리, 렌즈를 끼고 번듯한 모습으로 다닌다고 돈을 잘 버는 것도 아니며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아빠가 멋쟁이라고 해준다.



반면에 아빠가 안경을 낀 모습을 싫어하는 이유가 있다. 안경 도수가 높아서 눈이 만화처럼 뱅글뱅글해보여서 싫다고 했다. 그리고, 안경 쓴 모습은 집에서 아빠 모습이라고 했다.



안경 쓴 모습이 집에서 아빠 모습이라고?

집에 오면 렌즈를 빼고 안경을 착용하고 지낸다. 집에서 아빠 모습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잔소리하며 혼내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에서 아빠의 모습이 밖에서도 이어지는게 싫다것이다. 어느날, 아이와 둘이서 음료수 마시며 대화하다가 잰실을 알고나서 충격을 받았다.  



밖에서 렌즈 낀 아빠 모습은  '그래. 해보자!'라거나 '해볼까?'한다고 했다. 그런데, 집에서 안경 쓴 아빠 모습은 맨날 '하지 마라!!' '누가 했니?' '야!'라면서 혼내기만 한다는 것이다.



안경 쓴 모습을 싫어하는 진짜 이유를 알았으니 이제는 안경을 쓰고 집에 있을때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아이들과 지내려고 한다.




렌즈를 껴야 하는 아빠..는 사실!!  밖에서 함께 있을때 포근한 성품의 아빠를 원하는 아이의 '메세지'였습니다.



아내와의 회복이 우선이고 아이들과의 회복이 후순위라고 생각했습니다.왜냐하면  아이들이 말을 못하고 어릴때는 아무것도 모를 알았기때문에 강처가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말을 하기 시작하고 자기 감정을 드러낼 알면서 해주는 말들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먹을때, 어린이집 잡고 다닐때, 이유식 먹고 있을때, 유치원 다녀와서 등등 수많은 순간에 아이 앞에서 아내와 감정싸움하고 분위기 싸늘해지는 순간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놀러간 것들은 하나도  기억이 없는데 그런 감정싸움 상황들은 모두 느낌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 너무 무서웠어요." "마음이 불안했어요."라고 이제서야 말하는 걸 들었을때 가슴이 무너지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아내와의 회복도 중요하지만 아이들과의 관계회복도  급선무라는 생각에 엄청난 노력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행동을 바꾸다보니 아이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아빠와 둘이서만 있을때 어색해하고 어려워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 상당히 충격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저의 노력을 아이들이 인정해줍니다. 그러면서 마음도 열어주고 솔직한 대화들도 합니다. 아이들이 아빠 듣기 좋은 말로 "아빠랑 둘이서 나간다고요? 좋아요!! 신나요!!" 라고 해줍니다. 그러면, 저는 '더 많이 노력해줘요. 아빠!'라고 들리면서 애쓰는 시간으로 채워줍니다.



삼남매와 우루룩 몰려다니며 뭔가를 할때보다 아이 한명과 있을때 해주는 말에 귀를 쫑끗 세우면서 듣습니다. 혼자 있을때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생각을 조금씩 말해주니까요. 요즘 이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늘 늘 말씀드리지만 혹시 저와 같은 아빠가 있을까봐서입니다. 저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셨으면해서입니다. 제가 괜찮은 아빠라고 자부하고 지내던 시간을 생각하면 '너무 창피하고 부끄럽습니다.' 한없이 부족한 동상이몽 아빠였습니다.


이제는 렌즈를 끼나 안 끼나 한결같이 온화하고 따스한 아빠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하는게 맞고요.




오늘도 여기까지이며 읽어주신것에 대해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Dd


출처: 사진: UnsplashFran Jacqu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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