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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냄새가 나요.. 아빠

종합 비타민.

아이들이 커갈수록 제가 절대적으로 조심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체취'입니다. 첫째 아들과 함께 할 때면 '남자끼리!!'라면서 적당한 수컷냄새는 접어줍니다. 서로의 땀냄새는 '오케이'라는 말로 퉁치기도 한다.


문제는 둘째 딸, 막내딸과 함께 할 때 조심합니다. 대학교생활, 사회생활하면서 들을 때마다 당혹스러웠던 것이 '지독한 아빠냄새'의 추억에 대한 얘기들을 들을 때였습니다. 주로 담배냄새, 술냄새, 은단냄새, 구린내, 땀 쩔인냄새, 목욕탕 스킨로션냄새, 발냄새 들이었습니다. 그런 얘기를 많이 들으면서 지내다 보니 두 딸들을 대할 때면 항상 '체취'를 관리하는 편입니다. 양치질을 안 했거나 땀을 흘리고 왔거나 냄새나는 현장에서 바로 퇴근했거나 할 때면 '찰나의 순간'을 요청한 후에 응해주기도 합니다.  



원래 땀을 많이 흘리기도 하고 땀을 흠뻑 흘리면서 운동하는 걸 즐기기도 하기 때문에 특히 '체취'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여름에는 티셔츠는 자주 갈아입는 편이고요. 숨겨진 겨드랑이도 늘 데오도란트로 관리하면서 지내는 노력도 합니다. 그런 노력을 하면서 두 딸들이 아빠를 생각하면 '악취'보다는 '상콤'한 향기와 재미를 기억해줬으면하는 마음이 큽니다.



그런 의도를 가지고 지내는 아빠에게 어느 날 생각지 못한 일이 생깁니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체력이 도저히 견디지 못해서 아내의 제안으로 종합비타민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 비타민은 먹기 전에도 독특한 향이 있는데 먹고 나서도 입 안에서 개운하지 않은 냄새가 나서 잠시동안 힘듭니다. 이른 아침 먹는 것을 깜빡해서 늦은 시간임에도 얼른 챙겨 먹었습니다. 비타민을 삼키자마자 막내가 놀아달라고 해서 살짝 애매했습니다. 아이가 놀아달라는 무작정 달려드는통에 물을 조금만 마시고 놀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급하게 먹고 물도 조금 먹은 탓에 비타민이 안 넘어가고 목에 걸렸습니다. 목 안에 붙어있는 느낌이 상당히 좋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몸장난하자며 이미 몸에 달라붙어서 힘씨름을 시작했습니다. 목 안의 이물감이 그냥 참을만하지 못해서 '잠깐, 타임!!'을 외치고 얼른 일어섰습니다. 어릴 때부터 몸장난을 많이 해주고 놀아서인지 가끔 허전하거나 심심하면 몸장난을 요구합니다. 그러면서 힘자랑을 하듯이 저와 힘겨루기를 시도합니다. 과한 힘겨루기를 하면 아이가 다칠까 봐 머리를 마주하면서 아이 손을 뿌리쳤습니다. 그 순간,



"아빠. 입에서 풍선냄새 나!! 윽!!"


"어. 비타민 먹었어. 목에 걸렸어... 물 더 먹어야 해."


그렇게 말하고 황급히 달려가서 물을 더 마셨습니다. 그제야 목에서 약이 넘어가는 듯했습니다. 목 안은 여전히 뭔가 붙어있는 느낌이 있었지만 몸장난하다 중단되어 멀뚱 거리며 기다리는 막내가 생각나서 얼른 방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아까 들었던 말이 머리에서 맴돌면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빠. 입에서 풍선냄새가 나"


아빠 입냄새와 비타민냄새가 겹쳐서 상상초월의 냄새가 난다는 겁니다. 그 냄새가 새로 산 풍선을 봉지 안에서 처음 꺼냈을 때 맡게 되는 괴상한 냄새랑 똑같다는 것입니다.- 상상하기조차 싫을 만큼 민망했습니다. 그 냄새를 알기도 하지만 그런 냄새가 입에서 났다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 얼굴에 들이대고 그렇게 말하는 막내의 입에서는 단내가 났습니다. 초 3인 막내아이는 아직 팅커벨처럼 상콤한 냄새가 나는 아기였습니다.  



아이들에게 '악취'를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서 늘 자주 씻고, 바디로션도 바르고 , 양치질도 자주 하고, 애매한 음식도 잘 먹지 않았는데..... 억울하게도 종합 비타민 먹고 나서 아이에게 '풍선 냄새'라고 들은 것입니다. 정말 당황스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아이 눈높이에서 느낀 대로 말해준 덕분에 얼렁뚱땅 넘어가긴 했지만 진짜 억울했습니다.



그런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던 것은 그런 말을 듣고 아이에게 아빠는 웃어주며 상황을 설명해 주고 끝났다는 것입니다.  예전 같으면 '버럭'화를 냈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자체만으로도 스스로 고무적이라고 자찬했습니다.





딸이 사춘기를 함께 시작하면서 냄새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름대로 조심성 있게 체취관리를 하는 중입니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40대 고개를 넘어가는 입장에서 체취관리가 쉽지 않기도 합니다. 인생선배님들께 송구하지만 저도 이제 본격 체취관리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어서 노력 중입니다. 아무리 씻어도 깨끗하게 세탁한 옷을 입어도 향기보다는 숨기지 못하는 체취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렇게 신경을 쓰면서 사는데도 이 날은 예상 못한 '입'에서 문제가 터진 겁니다. 그것도 '비타민'때문이어서 억울했습니다. '얼마나 체취 때문에 노력하는데... 억울해!!'라고 마음속으로 이불 킥했습니다. 막내인 초3아이에게 '풍선냄새'로 들었지만 상당히 당혹스러웠고 창피했습니다. 종합비타민이 항상 냄새가 고약하고 먹어도 입안에서 도는 야릇한 냄새가 항상 거부감이 들었지만 건강에 좋다 해서 먹는 중이었는데 결국 애매하게 터진 겁니다.


"입에서 풍선냄새가 나.. 아빠."라고 말하면서 코를 집는 아이의 입에서는 단내가 나길래 '칫! 아직 어린 아기구만!' 하면서 그런 말을 하는 아이가 귀엽기만 했습니다.  특히 '악취'난다고 안 하고 '풍선냄새'라고 해줘서요.



사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초5 둘째 딸, 언니 따라 사춘기 늪으로 들어가고 있는 초3 막내는 열심히 체취관리를 하는 아빠의 노력을 비웃듯이 자연스러운 '아빠 체취'를 찾고 '빙고빙고'합니다.


베개에서 나는 아빠 머리냄새, 매번 빨지 않는 두툼한 겨울외투냄새, 아빠 땀냄새, 아빠 옷들에서 나는 남자냄새들에 대해서요. 담배도 끊고 더 적극적으로 관리하면서 향수, 바디로션, 자주 씻기를 하는데도 두 딸들은 기막히게 숨은 그림 찾기처럼 아빠 냄새를 찾아냅니다.



늘 당황스러워서 여러 번 씻고 옷도 자주 빨고 냄새나면 옷 갈아입고 안아주려고 바둥바둥 노력하는 제게 아내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무 그러지 마요. 남편. 아이들은 아빠 냄새가 좋고 느끼고 싶어서 즐기는 거예요. 너무 닦고 갈아입고 그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대해줘요."라고요.



그런 아내 말을 듣고 자연스럽게 대해보려고 합니다. 필요한 말을 해주는 아내 말을 잘 들어보려고 노력 중이기도 하니까요. 그래도 민망하기는 합니다. 비타민 먹은 제 입에서는 '풍선 냄새'가 났으니까요. 돌려 말해준 막내딸에게 고맙기도 하고요. 저는 지금 그런 아이들과 살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읽어 주셔서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和国 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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