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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잉~너무 귀여워~.. 아빠

지금은 왜 이렇게 되었지?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간 날이었습니다.  

막내딸이 학교 다녀와서 저녁식사 후 목이 붓고 열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열이 38도를 넘기면서 아이가 축 늘어졌습니다. 혹여 독감, 코로나가 아닐까 염려가 되어 병원을 다녀왔습니다. 병원약을 먹고 어느 정도 진정이 되더니 목만 칼칼하다고 했습니다. 2일 정도가 지났는데도 회복이 안되더니 한방에 자는 둘째 딸도 목이 붓고 열이 높아서 힘들어했습니다. 결국 둘째 딸을 추가해서 두 명이 병원을 가게 되었던 날이었습니다.  

 


병원내부는 콜록거리면서 힘겨워하는 갓난아기들과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이 엄청 많았습니다. 많이 아파서 아예 엄마품을 못 떠나는 아이와 아픈데도 아장아장 돌아다니기를 쉬지 못하는 아이들로 나뉘었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안고 있는 부모님들은 매우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런 아이들 속에 두 딸들이 앉아서 대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보기에도 30분 이상 대기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기다리게 된 두 딸은 자기들은 많이 컸다면서 아기들 속에 있는 것이 살짝 창피하다고 했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다독이면서 함께 앉아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멀뚱 거리면서 기다리다가 맞은편의 내복만 입은 갓난아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조그맣고 동글한 눈을 멀뚱 거리면서 어딘가를 열심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머리카락도 거의 없고 솜털투성이인데 뭐가 궁금한지 허리를 곳곳히 세우고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기와 눈이 마주친 딸들은 너무 귀엽다며 손을 흔들어주었습니다. 그러자 아기는 칸막이 밑으로 눕더니 엄마다리 속으로 푹 파묻혔습니다. 엄마가 둘째를 임신 중이라서 엄마품에 쏙 들어가지 못하고요. 



"아이고.. 귀여워~~" 

"그르게... 너도 그랬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되었지?"

"아빠~아~. 에잇!!" 



그런 대화를 하고 있는데 우리 앞을 뒤뚱거리며 지나가는 아기를 보느라 대화가 끊겼습니다. 너무 열이 심해서 주사실에서 주사를 맞고 나오는 아기는 엄청 아프고 무서웠다고 말하고 싶었는지 엄청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세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늘 병원에서 아이들을 안고 있던 우리의 모습들이 머릿속을 스쳐갔습니다. 그런 비명소리에 마음 아파하면서 사람들이 쳐다보는 시선이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았었습니다. 오직 아이가 얼른 열이 내리고 안 아프기만을 바라면서 병원을 왔다 갔다 했었고요. 기다리는 동안 얼마나 아픈지 계속 소리 질러 우는 아기를 보기도 했고요. 손에 집히는 것은 뭐든지 던지며 소리 지르며 걷는 아기도 보고요. 대기시간이 40분이 넘어가다 보니 두 딸들이 이제 슬슬 지겹기도 하고 열이 나는 머리 때문에 지쳐서 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앉아 있는데,  

이번에는 어린이집 다닐 정도의 꼬마 숙녀가 아장아장 걸어서 우리 앞을 지나갔습니다. 한참을 아장거리면서 동화책이 가득한 책장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지루한 참에 두 딸들은 갑자기 관심을 가지면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꼬마 숙녀는 자기 몸통만 한 동화책을 들고 다시 아장아장 걸어서 엄마옆에다 갖다 놓고 있었습니다. 머리가 크고 몸에 비해 다리가 짧은 완벽한 아기 숙녀였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딸이 말했습니다.  


"보지도 않으면서 부지런히 갖다 놓네. 아고. 귀여워~"

"귀엽네. 아장아장. 힘겹다야~~ 너네도 그랬어."

"데리고 다니면 저렇게 걷는 게 귀엽다고 어른들이 손에 꼭 과자 같은 걸 쥐어주더라~"


"그런데.. 지금은 왜 이렇지? 하하"  

"에이! 그만해요. 아빠!"



그렇게 무료하게 기다리는 시간 동안 주변의 아기들을 보다 보니 50분을 잘 참아내고 " 들어오세요."라는 말에 검진이 시작되었습니다. 

"에고. 막내가 언니한테 옮겼구나. 하하" 의사 선생님의 유쾌한 농담과 함께 시작된 검진이 우려와 달리 쉽게 끝났습니다. 다행히 목이 부어서 열이 나는 단순 감기였고요. 검진이 끝나고 두 딸들에게 자기 약봉지를 각각의 손에 쥐어줬습니다. 같이 걸으면서 혼자 또 중얼거렸습니다.  


"지금은 왜 이렇게 되었지?"


그렇게 말한 이유 중에 하나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프고 추울까 봐 점퍼 안 가슴팍에 넣고 다녀도 무거운지 몰랐을 때가 있었습니다. 긁힐까 봐 조심하며 귀여워하며 애지중지했었습니다. 똥기저귀를 숱하게 갈아도 짜증 내지 않고 칭찬하고 사랑한다고 꼬물거리는 손을 만져주던 아빠였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실수를 하거나 고집을 조금만 부리면 버럭 화를 내고 혼냈습니다. 이제는 한 팔로 안고 재울 수 있는 아기가 아니라 두 팔로 안아줘야 하는 아이들로 커버린 것뿐인데 말입니다. 보기만 하면 눈을 떼지 못하고 '인간 미니어처' 라며 자랑스러워하던 아기가 크기만 커진 것뿐인데요. 기저귀 차고 이유식을 먹고 여차하면 바깥공기에 감기가 걸리니까 얼른 커서 같이 뛰어다니고 신나게 놀자고 소원했던 바로 그 아기들인데 말입니다. 그때 아기는 소원대로 크기만 커졌는데 아기를 대하는 저의 행동이 너무 달라졌습니다.  


"지금은 왜 이렇게 되었지?"


그런 생각과 함께 또 마음속에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두 딸이 지금 본 아기들처럼 그렇게 아장거리고 "띠약!(치약)" "따줘~(사줘)" 할 때마다 손 잡아주고 넘어질까 봐 노심초사했습니다. 세 아이가 모두 연년생으로 태어나서 5년 이상을 맨날 티셔츠가 흠뻑 젖을 만큼 진땀을 빼면서 좌중우돌 했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이들 챙기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렀습니다. 그렇게 정신 빼가면서 얼굴이 노래져가며 챙기던 세 명의 아기가  이제는 다른 집 아기들을 보면서  "귀여워. 귀여워."라고 말하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아..... 너무 벌써 빨리 커버렸다. 아쉽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두 딸들의 병원검진이 끝난 하루였습니다.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희비가 엇갈리기도 했습니다. 






세 아기들의 똥기저귀를 갈고 아내가 힘들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챙기다 보니 시간이 흘렀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기들이 어린이집을 차례차례 들어가더니 세 아이들이 함께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첫째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을 하더니 어느새 세 명이 초등학교를 함께 다니고 있었습니다. 또, 첫째 아들이 중학교를 들어갔습니다. "어? 어!!?" 하다 보니 중학교, 초등학교 학부모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냥 우리 아이들이 커가는구나 했는데, 지나가는 아기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이 '귀여워'라고 말하면서 손 흔들어줄 때, 엄마 손을 잡아야 넘어지지 않는 아장거리는 아기들을 보다가 저의 옆을 보았는데 툴툴거리면서 걷고 있는 손 잡아줄 필요가 없는 우리 아이와 걷고 있을 때, 그제야 시간이 훌쩍 흘러버린 것을 느낍니다. 



이제야 느껴지는 시간은 빛의 속도로 흘러갔습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아이들과 함께 하는 바로 지금'이 소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달에 '이 순간을 생각하면 후회하지 말아야지'라고 말입니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아파서 학교 못 간 아이를 정성 다해 챙겨줬더니 잠자기 전에 아이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오늘 고마워요. 챙겨줘서요." 그 말을 듣고 "잘 자라"하면서 방문 닫아주고 나오는데 마음속으로 눈물 찔끔했습니다. '오랜만에 아빠가 엄청 챙겨줬다는 느낌을 받았나 보네.. 미안. 미안.' 평상시 맨날 혼내고 이해 못 하는 아빠가 엄청 살갑게 챙겨준 하루가 진짜 감동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이 미안했습니다. 딸들에게는 매일 아빠 품이 넓고 푸근하고 뭐든지 요구할만해야 하는데.... 아직 부족한 저를 느낍니다.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의 Katie Ems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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