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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기 노스페이스 입었네?.. 아빠

병원

두 딸 감기 2탄입니다.


두 딸과 병원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더 많이 두리번거리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둘째 딸이 하는 말에 오랜만에 순간 화끈거렸습니다.


"어! 갓난아기가 노스페이스 입었네!"

"하하. 그럴 수도 있지!"


"에이! 나는 못 입는데.. 치!!"

"그런 말 하지 마! 우리도 한동안 엄청 많이 입었어!"

"얘야. 봐봐.. 지금 아빠 옷 브랜드네임 있니? 없니? 그런 거보다 좋은 옷 잘 사 입는 게 중요해!"


"치! 그래도 입고 싶어! 언니들 많이 입던데... 부러워!"



초5인 둘째 딸은 아이돌과  동네 근처 중학교 언니들의 옷차림과 모든 것을 동경하고 지냅니다.  소위 '언니들처럼 뭐든지 다 하고 싶다.'입니다. 아이에게 합리적 가격과 브랜드 네임이 없어도 좋은 옷이 많다고 설명해 줬습니다.   또, 제가 입고 있는 옷들을 들추며 보여줬습니다. 아빠가 의상전공했고 더 잘 안다며. 너네가 멋있다고 말해준 아빠 옷들이 전부 브랜드네임보다 실용성과 적정가격 옷들이었다고. 진짜로 요즘 제 옷은 가짓수를 줄이기도 했고 얻어 입은 옷과 합리적 가격 옷들로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나도 입고 싶어!! 저런 꼬맹이도 입는데."


그런 표정과 중얼거림은 합리적 가격, 노브랜드네임 옷에 대한 저의 예찬을 연기처럼 날려 보냈습니다. 아이는 여전히 "나도 입고 싶다. 저런 꼬맹이 아기도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는데.."라는 생각만 하고 있는 중이니까요. 자기는 못 입는 브랜드 패딩을 쪼꼬만 아기가 입고 앉아 있다는 것이 이해 안 된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아기가 입은 브랜드옷을 부러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예전 같으면 화내면서 혼냈을 것입니다. 이제는 좀 다른 방법으로 대화하려다 보니 고민고민하다가 지금 이 상황 때문에 속상한 아이를 안아 줬습니다. 둘째 딸을 그냥 지긋이 안아줬더니 막내딸이 다리 위에 걸터앉아서 안겼습니다. 그렇게 두 딸을 잠시 안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아기는 입었는데 자기들은 왜 안 입었는지? 못 입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는데 아빠가 애꿎은 설명을 자꾸 하려는 것이었고요. 그런 상황을 다 알고 이해하면서 더 이상 아무 말하지 않는 아이들이 고마워서 안아 줬습니다.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이해한다며 그냥 안아줬는데 제 품에 그냥 안겨 있는 아이들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저보다 더 성품 좋은 사람으로 느껴졌습니다.



안아 주고 있다 보니 목구멍에서 거꾸로 차오르는듯한 울컥거림이 느껴졌습니다. 꿀꺽 삼키면서 저절로 중얼거렸습니다.

"너희가 이제 그런 걸 본격적으로 부러워할 때인데 한 번쯤 과감하게 못 사줘서 미안하네. 미안." 그런 중얼거림이 이어지면서 가슴에서 울컥거림이 계속 올라왔습니다.



그러면서 두 딸들을 한참 동안 안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점점 커갈수록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과 현실과의 '괴리'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점점 많아집니다.

그 '괴리'를 이해하도록 설득시키는 일이 점점 어려워집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채고 체념해 주는 것으로 대체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 아기일 때까지는 브랜드/명품옷들을 깨끗이 입고 물려줘서 좋은 옷 많이 입히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는 아기들이라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이제는 여차하면 친구나 주변 언니들 옷을 보면서 브랜드옷을 입혀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점점 커져가는 아이들의 호기심과 관심에 따른 대화가 부담스러워지기도 합니다.



그런 마음을 느끼면서 앉아 있다 보니 어느새 우리 두 딸 차례가 되어 의사 선생님 방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은근히 마음속으로는 '다행이다!!'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창피를 무릅쓰고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행사 때 손을 높이 들고 '우리 아빠 시켜주세요.'라고 해서 대머리 가발 쓰고 틀어준 음악에 춤도 추고 그랬습니다. 그런 것은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좋고 비싼 음식 먹고 자랑한 친구의 자랑이나 카톡 프로필사진을 보고 '우리도 먹으러 가요. 맛있대요'라고 하거나 브랜드 옷을 입은  예쁜 중학생 언니를 보면  '나도 저거 입게 해 줘요.'라고 말할 때면 그저 숙연해집니다.



당장 해 줄 수가 없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도 유치원 때는 수월했습니다. 아이들이 초등 고학년과 중학생이 되니까 한계가 있는 현실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당장 안된다고 말해주면 이내 "우리 집은 안 되잖아요. 알아요."라고 단념하는 답이 돌아옵니다. 얼른 단념해 주는 것이 고맙기도 하지만 칼로 가슴을 툭 치는 느낌입니다.  아직은 거친 불평을 하면서 집을 쑥대밭 만들지는 않아서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깁니다.

 


그런 일들을 자녀가 세 명이다 보니 세 배로 겪기 시작하니까  점점 초라함도 느낍니다.  여태까지는 이직을 할 때마다 늘 새롭고 신기한 일들을 도장 깨기처럼 해내면서 돈을 벌다 보니 나름대로 자랑스럽고 인생 묘미가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니까 왜 그런 경험을 추구하고 살았냐면서 질문을 듣고 경험들에 대해 깊이가 없다며 갸우뚱거리는 질문도 듣습니다.  직장에 들어갈때면 꼭 연봉에 대한 평가도 좋지 못하게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에게 해줄게 많아지는데 못해주는 게 점점 더 많아집니다. 그러다보니 초라함을 자주 느낍니다.



키가 커갈수록 현실을 직시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중입니다. 그런 목마름을 해결하고자 '빈티지샾'에 가서 원하는 옷을 한 바구니사서 입기도 했는데 그것도 이제는 아이들에게 통합니다. 못 해주는 것은 사실이니까 무조건 화내고 혼내지 않으면서 올바른 대화를 통해 가정회복먼저 해보려고 노력중입니다.



오늘 새벽 발행된 글과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아이들과 다니다 보면 늘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생깁니다. 이번 병원나들이는 좀 특별한 일들이 많아서 발행하고나서  발행해봤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의 Rydale Clo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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