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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프로젝트 #36

큰사람

길을 걸을 때마다 보는 많은 "깨알"은 해운대바닷가에서 생각지못한 반짝 몽돌을 만난 느낌이기도 합니다.

목적지를 향해서 길을 걸어가다가 만날 때는 덤을 얻은 느낌이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걷다가 만날 때는 예상 못한 박카스 한 병을 받은 느낌이기도 합니다.


저는 1+1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싫어하기보다는 일부러 찾지 않지 않는 정도입니다. 그런 기획상품을 구매해서 돈을 절약하는 것은 단연코 현명한 소비입니다. 그런 소비를 지향하지 않는 이유는 무심하게 필요한 물건을 샀는데 "1+1입니다. 하나 더 챙겨 오세요."라는 말을 들었을때 예상못한 복권당첨같은 느낌으로 즐기게 되어서입니다.



아이들과 다니면서 카드값 결제금액이 걱정되어서 아이들과 간식을 사 먹다가 제 것은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이 1+1을 고른 덕분에 제 것도 생기기도 합니다. 우연히 1+1을 샀다가 덤으로 받을 때 아이들 표정이 엄청 의기양양해지는 것이 이쁘기도 합니다.

https://brunch.co.kr/@david2morrow/236



길에서 만난 '깨알'은 빅재미와 함께 '덤'으로 깨달음도 듬뿍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번 말씀 드려 볼께요.




#1. 빌딩..

아! 출근길에 그냥 지나갔다가 다시 뒤돌아와서 얼른 찍었습니다. 제가 길을 걷다가 만난 건물이름 중에 정말 아름다운 이름 같았습니다. 보자마자 그냥 건물주분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산모롱: 산모퉁이의 휘어 돌아가는 곳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산모롱이에서 목소리가 들려"라는 애기들 책도 본 게 이제 생각납니다.



도심 속 빌딩사이에서 아기자기하고 알콩달콩한 빌딩이름을 느낀다는게 큰 재미입니다. 감사이고요. 그 이름이 길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가끔 멈춰 서서 돌아보게 하고 생각하게 하니까 건물주분이 진정한 '낭만자객'같습니다.





#2. 반창고..

아내의 주말 장보기를 동행하면서 주차후 매장으로 가다가 "어.. 어어"하면서 처음에는 웃고 나중에는 차주분의 아이디어에 감탄했습니다.



급한 상황이었을 수도 있고, 부품을 기다리기 위해서 일 수도 있고요. 종종 외국에서 또는 몽골친구나 러시아지인들이 보여준 사진도 생각났습니다. 왠만한 건 수리안한다고 했습니다. 적당히 테이프 붙여서 타면서 차가 멈추면 부품 사서 교체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지나가다가 다시 돌아본 것은 마치 다친 코에 반창고붙인 것 같아서 웃었습니다. 차주분의 솜씨에 감탄하고 웃고 서 있다가 '아차'하면서 빨리 매장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아들이 '아빠.그럴 줄 알았어요.'하면서 바라보고 있었구요.




#3. 열매..

애들과 시골길을 걷다가 만난 열매가 인상 깊어서 얼른 찍었습니다.


어릴 적 시골길에서 만난 원두막도 생각나고요. 실제로 조롱박으로 만든 표주박으로 약수터 물을 떠먹었던 기억들이 다시 새록새록해져서 웃었습니다.


저걸로 물 떠먹는 플라스틱바가지 말고 진짜 바가지 만들어서 먹으면 엄청 맛있다면서 아이들에게 설명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떠올라서 웃었고요. 아이들은 그저 모양이 특이하고 재밌다면서 웃고요.


만화에서 나온 얼굴 뿌루퉁한 캐릭터가 생각나서 저걸 얻는다면 매직으로 그림 그려서 걸어 놀까도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4. 송중기 아닌 송풍기..

제초기와 함께 세트로 사용하던 기억이 나서 찍어뒀습니다. 가을에 찍은 것인데 그때 본 감성을 써보고 싶을 때 꺼내려고 했습니다. 지금이 그때인 거 같아서 꺼내봤습니다..



송풍기의 용도는 실로 다양했습니다. 잠자다가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뜨면 경비원아저씨가 밤새 내린 눈에 주민을 위한 길을 만든다고 사용하기도 하고요.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젖은 낙엽이 길이 저러워질까봐 불어서 모으기도 하고요. 제초작업 후 잘린 풀들을 모으기 위해 이제는 갈고리사용보다는 송풍기가 더 많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가을에 찍은 송풍기를 꺼내고 싶었던 이유는 길바닥에 떨어진 낙엽처럼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수많은 불필요한 생각, 뾰족하고 모난 생각들을 송풍기로 날려버리고 싶었습니다. 작업 후 잠시 쉬는 동안 모자를 걸쳐놓은 작업자분의 센스도 다시 생각나서 재밌었습니다.



#5. 도그파킹..

맛있는 음식점의 하양 창틀과 대비되는 노랑 덮개에 눈길이 가서 잠시 길을 멈췄습니다. 그러다가 더 눈길이 가는 것은 파킹 훅였습니다. 반려견이 잠시 기다려줘야 하는 zone이었습니다.



함께 지내는 대형견, 소형견 등등 실로 다양합니다. 때로는 동반입장보다는 도그파킹을 제안하는 음식점도 있고요. 물론 잠시 테이크아웃을 위한 곳들이겠지요. 눈길을 끌었던 노랑 창문덮개와 함께 세트처럼 구성된 도그훅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하늘거리는 노랑블라우스를 입은 숙녀가 벽돌색 치마를 입고 서 있는데 손바닥만 한 미니크로스백을 들고 서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잠시 도그훅에 반려견을 대기시켜 달라는 '파킹'을 지시하는 문자도 재밌었습니다. 반려견과 함께 하는 주인의 모습이 그대로 느껴지는 그림이었습니다. 반려견과 함께 지내면서 서로 의도치 않은 신경전이 펼쳐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가는 것 같아서 흐뭇하기도 했습니다.





인위적으로 만든 도시에 계획한 대로 만든 도로를 따라지어 놓은 건물들이지만 계획하지 않은 디테일들이 인간미와 자연미를 느끼게 해 줘서 숨통이 트입니다.



반듯한 계획도시는 깔끔하고 정갈합니다. 새로운 곳이라도 이동하기가 편하고 헷갈리지도 않습니다. 그런 곳의 느낌은 먼지하나 없는 유리테이블 같습니다. 가끔은 뭔지 모를 불편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반면에 구도심이나 시골은 어수선하고 어딘가 모르게 어수룩합니다. 길을 찾다 보면 뱅뱅돌기도 하고 한참을 가다 보면 차는 더 이상 지나가지 못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후진해서 50미터 이상을 나오기도 하고요. 가다 보면 먼지를 뒤집어쓰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곳은 오랜 손때가 묻은 통나무 테이블처럼 편안합니다.



길을 걸으며 '깨알'을 만나면 즐거운 이유도 반듯한 도시에서 우연한 것들이 주는 재미가 살맛나게 해줘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여전히 길을 걸을 수 있고 '깨알'들을 볼 수 있으며 함께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먼지처럼 별거 아니며 모래알처럼 많은 '깨알'들이 사라지지 않고 여기저기 있어서 매일 볼 수 있는게 엄청 행복합니다. 무려 공짜이고요.



읽어주시고 격려해 주심에 대해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의 깨알 프로젝트 # 36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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