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에게.+60

네. 알겠어요.

사랑하는 아들에게



요즘 들어 너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 감사함을 느끼면서 도저히 편지를 안 쓸 수가 없었단다.

네가 태어난 날, 간호사분의 제안으로 아직 얼굴이 얼룩덜룩 핏자국이 묻고 수술보에 쌓인 너를 처음 안아보고 묵직함을 느끼면서 네가 얼굴을 찡그리고 움찔거릴 때마다 사람 느낌을 느끼면서 온몸으로 느낀 경이로움에 대한 감사와는 다른 감사를 느끼고 있단다.



그런 일상 속의 감사와 함께 재미있는 것은 키가 부쩍 크면서 어른 옷이라고 말하는 '아빠 옷'을 한동안 도장 깨기처럼 입고 싶어 하더니 요즘은 '또래가 입는 옷' '네가 봐서 이쁜 옷'이라고 느껴지는 아빠 옷들을 입고 싶어 하는 것도 재미있기도 하다. 눈높이가 거의 비슷해진 것을 느끼면서 대견하기도 해.



그런 대견함에서 오는 재미보다도 내가 오늘 너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조금 색다른 감정이었어. 정말 너에게 솔직하게 '고맙다'라고 말하고 싶어서란다.



폭풍의 속 같은 머릿속이라고 본인도 어떤 마음인지 어떤 행동을 하려는지 모르기에 잔소리하며 다가서려고 하지 말라는 중학교 시절인 요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순간마다 폭풍 같은 화와 행동을 하지 않도록 자제하길 애쓰는 네가 대단한 것 같아.



그렇게 조심하는 너와 대화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서로 남자끼리 화를 내며 부모 자식 계급 없이 충돌할 시기가 임박할 때도 있더라. 그럴 때 아빠는 순간적으로 긴장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눈치싸움을 하기도 한단다.


'저 놈에게 져줘야 되겠지!' 내가 이런 마음인데 이렇게 기어오른다고? 어허..'


이렇게 글로 적으니까 적는 순간에 나도 창피하지만 읽어도 네가 이해하지 못하고 웃을 수도 있겠다 싶구나. 아빠 남자 어른 삼 계급을 달고 살지만 폭풍성장 중인 아들과 마주할 때면 순간순간 긴장하고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생각하면서 말하곤 한단다.



내 말에 혹시라도 대들면 어쩌지? 그렇게 조마조마하며 너와 신경전을 펼치는 일이 종종 생기는 요즘,

그렇게 어이없는 생각을 하면서 의연한 척 행동하는 아빠의 요동치는 마음에 잔잔한 돌멩이 하나 무심하게 던지듯 네가 하는 말은 아빠가 한숨 돌리고 살아갈 의미를 만들어주더라.


"네. 알겠어요."



그렇게 무심한 듯 덤덤하게 한 마디 던지고 방을 정리하거나 쓰레기를 버리거나 출발준비를 할 때면 '고맙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면서 그제야 한숨이 덜어진단다. '네가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 내가 너와 기싸움 할 필요가 없구나! 네가 잘해줬다.'라는 의미로 제대로 된 한숨을 쉬면서 너를 바라본단다.



네가 커갈수록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하고 싶은 방법대로 하고 싶어 하니까 그냥 그대로 두도록 수시로 배우는데 실전에서는 자꾸 "내가 너의 아빠다!"라면서 침범을 하더라. 자꾸 잔소리를 하고 여차하면 신경전을 펼치면서 너를 힘들게 할 때가 생기고 말이야. 그럴 때마다 부자간 어이없는 감정싸움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네. 알겠어요.'라면서 감정조절을 해주는 네가 고맙게 느껴지는 것이야.



싸움을 할 때 혈기를 다해서 싸우는 사람보다 양보하고 피해 주는 사람이 더 진정한 승자라고 하더라. 혈기에 못 이기고 내가 너의 아빠라면서 잔소리하고 감정을 섞어서 말하는 아빠보다 순간적인 감정을 내려놓고 잠시 상황이 정리되길 기다리는 네가 진정한 승리자다. 너의 그런 행동 덕분에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아빠가 반성하고 후회하면서 네가 더 사랑스럽더라.



너의 말에 귀 기울이고 싶단다.

머릿속이 복잡한 중3을 시작하는 네가 의연하게 시작해 줘서 고맙다.

너의 방법이 서툴러 보이고 부족해 보이지 않는단다.

점점 시간이 갈수록 느린 듯하지만 천천히 자기만의 방법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너를 보니까

안심이 된단다.

에너지 넘치는 것보다 신중한 너를 사랑한다.

매사 열정적으로 하는 것보다

진짜 좋아하는 것, 필요한 것을 잘 선택해서

열정을 다해서 꾸준히 하는 너를 존중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사랑한다.


감정을 잘 조절하는 너를 존중한다.

노력하고 있지만 가끔 감정을 섞어서 말하고 행동하는 아빠와 달리

신중하게 차분하게

감정 섞지 않고 차근하게 행동하는 네가 멋있다.

너를 존중한다.


오늘은 아들, 특히 자기감정을 컨트롤하면서 지내주는 아들이 고마워서 편지를 쓰는 날이었습니다. 이런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놓고 편지를 쓸 수 있는 용기는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덕분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아들이 저보다 훨씬 낫습니다.

저는 상황마다 감정을 섞어서 큰소리치거나 잔소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부족한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반면에 중3아들은 감정을 드러내며 맞대응하기보다는 처음에 약속한 대로 적당히 대답해 주고 잠시 상황을 피해 줍니다.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고 나면 감정을 드러낸 제가 패자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반드시 아들에게 사과합니다. "아까 아빠가 감정을 섞어서 말해서 미안하다. 요즘 노력하는데 아직 부족하다. 아까 고맙다!"라고 말하면 "괜찮아요!"라면서 슬쩍 넘어가줍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저는 아들을 더 존중하게 됩니다.



아들은 저절로 커가는 것 같습니다.

부모 된 마음으로 못 봐야 하는 것, 먹지 말아야 하는 것, 입지 말았으면 하는 것들을 수도 없이 강조하면서 '조심' 또 '조심'하도록 잔소리하게 됩니다. 아들 다음으로 둘째, 막내딸 둘이 있다 보니 어디 가서도 여학생, 여자에게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도록 '선조심'시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하나도 소용없음을 요즘 느끼고 있습니다. 굳이 노파심에서 아들에게 그런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안 봐야 할 것은 안 보고 자리를 피하고 먹지 말아야 할 것은 알아서 안 먹고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잔소리로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님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아들을 보면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물론 감사를 먼저 느낍니다. 저보다 더 나은 성품이라서요. 그리고, 저보다 더 감성적이기에 다행이기도 하고요. 자연을 보면서 오감으로 느낄 줄 알고요. 자기가 원할 때면 바이올린 연주를 하기도 하고요. 힘쓰고 싶으면 축구 게임에 참여해서 골을 넣거나 골을 넣도록 어시스트하기도 합니다. 필요하면 용기 내서 여행을 다녀오기도 합니다.


항상 함께 살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 unsplash의 Miguel A Amut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