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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충격을 준..아빠

팥빙수 기계

아직 집에서 팥빙수를 만들어 먹습니다. 냉장고에 멸균팩 우유를 넣어서 꽁꽁 얼렸습니다.그리고, 며칠후 꺼내서 팥빙수 기계에 넣고 손잡이를 열심히 돌려서 우유빙수를 만들어줍니다. 멸균팩 우유를 얼린 이유는 팥빙수 기계 얼음 박스에 딱맞는 사이즈이기때문입니다. 일반 500ml우유팩 사이즈는 커서 안들어갑니다. 우유빙수를 위한 저의 아이디어입니다.


멸균팩을 벗겨서 꽁꽁 언 우유얼음을 넣어줍니다. 나름대로 힘을 다해서 한번에 갈아 냅니다. 아이들은 눈이 좌우로 움직이는 팥빙수 기계를 즐거워하며 바라봅니다. 우유얼음이 골고루 쌓이도록 밑에 놓인 그릇을 좌우로 돌려줍니다. 우유 한팩을 다 갈고나면 1인분 우유눈꽃빙수의 베이스가 준비됩니다. 그다음에는 토핑을 올리기 시작합니다. 여름에 먹고 남은 빙수용 젤리 서너 개, 아침에 먹는 시리얼 한 줌(아이들 기준), 기타 먹다 남은 과자와 오렌지주스 반컵을 부어 줍니다. 때로는 아이들의 기호에 따라 다른 아이스크림을 섞기도 합니다.



이제 아이들은 숟가락으로 먹기 시작합니다. 아이 세 명의 취향은 전부 다릅니다.

일단 섞어서 먹는 아이가 있고요. 조심하며 토핑올린대로 퍼 먹는 아이도 있고요. 뭔가를 더 넣어서 먹는 아이도 있습니다. 사진 찍고 먹기도 하고요. 사진같은건 신경안쓰고 만들었으니 그냥 퍼먹기도 합니다. 그런 제각각 아이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그러고 있으면 제 나름대로는 굉장히 뿌듯합니다. 각자가 개성을 가지고 자라고 있는것도 감사하고요. 아이들이 별거아닌 것을 즐기며 함께하는것도 감사하고요. 더 재밌는 것은 아이들이 멸균팩 우유빙수에 재미를 붙이더니 멸균팩처리된 우유나 마실거리는 모조리 냉동실로 넣어둔다는 것입니다.



사용중인 팥빙수 기계는 제가 초등학교 입학전에 사서 사용하던 기계를 결혼하면서 '소울메이트'삼아 가져온 것입니다. 이제 세대를 건너뛰어 제가 사용하던 나이대의 아이들이 또 사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사용할때마다 마음 속에는 벅찬 감동이 있습니다.

출처: https://aucview.aucfan.com/yahoo/p1059428455/




'이런 날이 오는구나'



그러면서 흥이 오른 마음에 아이들에게 "~라떼는 말이야."를 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즐겁고 신났던 분위기를 깬 것입니다. 역시 "~라떼는~"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이 팥빙수 기계가 몇 살인지 아냐? 이거 아빠가 너네만할때 할머니가 사주셔서 사용하던거야. 너네보다 나이가 많아! 아빠랑 비슷할 수도 있고."

"아. 그래요? 아빠가 몇살인데요?"

"아빠가 XX년생이니까. 올해 2023년에서 빼보면 아빠 나이가 나오지!!" 라며 신나서 설명해줬습니다.

한참을 조물거리며 계산하던 아이들이 "아빠는 XX살이네."라며 쉬운 문제를 얼른 풀었다는듯 신나게 웃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아이들은 엄마 나이는 알고 있어서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아빠 나이는 가끔 계산하기때문에 가물가물했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계산을 하고나니 아빠 나이가 엄마 나이보다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아빠가 더 나이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숫자로 체감하고 나니 심각해졌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중 일부는 울상이 되었습니다.



"으악. 우리 아빠가 내일 모레 50이라고? "



진짜로 충격받은 얼굴로 나를 몇번이나 쳐다보았습니다.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 나도 '황당'했습니다. 맛있게 재밌게 먹던 팥빙수는 이미 우주로 날아간 셈이었습니다.



"왜 그러냐? 뭐가 문제야?"

"아빠가 곧 50이잖아요."

아이 얼굴이 울상이 된채로 충격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나와 아이들 생각에는 심각한 괴리가 존재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은 이런데...

출처:사진: UnsplashTaylor


아이들이 생각하는 아빠는 이랬습니다.

출처: 사진: UnsplashTim Mossholder

그렇게 즐겁던 핸드메이드 팥빙수놀이가 정적이 흐르더니 급기야 침울해졌습니다. 나는 애매한 표정으로 잠시 멍하게 있었습니다. 우리가 있는 방을 지나가던 아내가 말해줬습니다.


" 초등 아이들 세계에서 부모가 "50대"라는 건 충격이래요."



"아빠가 곧 50이 되는게 놀랄 일이니?" 또, 되물었습니다.

"아빠가 맨날 과자랑 젤리 먹고 , 공 차고 땀 흘리고, 잔디밭에 뒹굴고 뛰어다니고 그래서 어린줄 알았어요."

"맨날 티셔츠에 반바지입고 우리랑 슬리퍼 신고 돌아다니고, 잠자리 잡고 뛰어 다녀서 젊은 줄 알았어요."

"아빠!!! 늙었네요. 에구"



나는 두번째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가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같이 먹고 놀고 돌아다니며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는데 집중하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요즘 학교에서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나이 들었으면 자기들끼리 '충격'이라는 겁니다.



농담반 진담반 사과했습니다. "미안! 아빠가 늦게 결혼해서 너희를 늦게 만나서..근데..아빠 잘못도 딱히..."


나의 소울메이트 '수동 팥빙수 기계'로 아이들과 즐겁던 시간이 황당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재미보다도 '뜻하지 않은 충격'을 준 아빠가 되었고요.






정말 뜻하지 않은 충격을 준 아빠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아이 세 명을 양육하면서 아내와 내가 공감한 내용이기도 하다.


"이왕 결혼하려고 마음 먹었으면 일찍 해야 겠다. 나이가 들어가며 아기들을 돌보니까 정말 버거울 때가 많았어요."


1. 누군가가 내게 결혼을 해야 할 때를 묻는다면?

"이왕 할거면 빨리 하세요."



2. 신혼을 오래 가지고 아이를 늦게 낳겠다고 하면?

"이왕 아이 가질거면 일찍 낳으세요. 나중에 엄청 버거울 수도 있어요."

라고 답해주고 싶다. 솔직한 마음이다.



"으앙. 아빠가 내일모레 50이래!!"



충격x 100배이다. 젊은 생각과 옷차림으로 되는게 아니다. 원하는 것을 뭐든지 사주고 여행같이 해준다고 되는게 아니다. 함께 하는 아빠가 나이를 먹었다는 자체가 충격인 것이다.



"내 잘못아니다. 아니다. 잘못일 수도 있다. 엄마를 늦게 만났으니까."

"소개해준 사장님 감사해요."

https://brunch.co.kr/@david2morrow/79




출처: 사진: UnsplashKew Li W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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