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 학원 뭐 다니냐?" "나? 학원 다니는 거 없어." "너 집 어디냐?" "왜?" "찾아가서 암살해야겠다."
아이가 친구들과 실제로 나눈 대화입니다. 어떻게 학원을 안 다니냐는 겁니다. 친구들은 평일 11시 넘어 집에 가는가 봅니다. 학교 끝나고 축구, 농구들을 같이 할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축구, 농구를 하던지 길거리 풀이나 하늘을 보고 핸드폰으로 사진 찍어서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해놓고 다니는 우리 애들이 이해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집에서 공부한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되고요. 급기야 찾아가서 "암살"해야겠다는 농담반 진담반 얘기가 나옵니다.
우리 아이들이 매일같이 노래를 부릅니다.
"제발 학원 좀 보내주세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만으로 공부를 해보려고 해도 버텨낼 수가 없다고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아이들은 그날 배운 것을 집에서 복습하고 혹여 내일 수업이 이해 안 될 거 같은 것에 대해 미리 읽어보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내에게 묻고 도움받아서 정리합니다. 아이들이 말하길 어떤 아이들은 중1인데 중2수학을 풀고 있다고 자랑한다고 합니다. 학원 숙제를 하고 가느라 학교에서 바쁜 애도 있다고 합니다. 초등 5학년인데 중학수학을 풀고 있는 걸 본 적도 있다고 하고요.그 아이들은 자기가 왜 그렇게 해야 되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늘 학교 끝나면 아무 생각 없이 학원으로 간다고 합니다.
그런 친구들은 평일에 밤까지 공부하고 토일에 자유분방함을 즐기기 때문에 토, 일에 아이들에게 놀자고 연락을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평일에는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주말에는 매우 바쁩니다. 친구들과 라이프사이클이 맞지 않아서 우리 아이들이 택한 방법은 "제발 학원 보내주세요."입니다.
2. 이런 현실을 해결할 방법은 없습니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낼 여력이 없습니다. 아직 가정 경제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일상생활을 해내는 정도이기에 아이들에게 차마 말하지 못하고 아이들을 타이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가고 싶은 학원은 엄청 비싸서 아이 셋을 학원에 한두 개씩 보내주고 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아빠의 무능함"을 혼자 삭히면서 밥을 굶기도 합니다. 아내는 말없이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합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하나라도 해주고 싶어서 파트타임을 하다가 전임 업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온몸이 삐걱거리고 아파서 눕고 싶지만 학원은 못 보내도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하나라도 "그래!"라고 해주고 싶어서 이를 악물고 다닙니다.
현실을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이 잘 버텨주기만을 간절히 소원하고 지냅니다. 이런 현실이 나의 현실이 될 줄 몰랐습니다. 결혼하면 돈을 더 많이 벌어서 아내에게 걱정 없이 원하는 커피를 맘껏 마시면서 가끔 아이들 봐주고 못다 한 취미생활을 즐기면서 힘들지 않은 생활을 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예상밖의 일들을 감당하고 있으면서 그럴 때마다 밥을 굶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혼납니다. 그럴수록 밥을 먹어야지 죄책감이 든다고 굶으면 나중에 밥값의 몇 배나 드는 약값을 지불해야 한다고요.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나갔다가 "아빠가 간식 사줬어요."라는 아이들말에 아내는 가끔 묻습니다. "아빠는 뭐 먹었어? 진짜 먹었어?"라고요.
3. '암살'당하지 말고 '건강'했으면 합니다.
지금의 현실이 회복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먹먹하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암살(?)"대상자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이들이 여전히 걸어 다니다가 뜬금없이 하늘, 풀, 신호등, 간판을 찍고 서로 비교합니다. 그러면서 깔깔거리고 비웃고 칭찬도 합니다. 물론 제가 하고 다니는 행동을 언제부터인가 자기들도 취미처럼 합니다. 저보다 더 위트 있는 휴대폰 사진이 많기도 합니다. 기발한 사진들도 많고요. 앵글보다는 보고 즐긴 것을 찍도록만 알려줬습니다. 같이 걸어 다니면서 사진 찍고 웃다가 깜짝 놀란 적도 있습니다. 건너편에 아이들 반 친구가 지나간다고 조용히 하라고 아이가 주의를 줘서입니다. 건너편 친구를 봤는데 축 처진 어깨에 검은 가방이 걸려 있고 무표정한 얼굴로 아직 교복을 입은 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한두 번 본 게 아닙니다. 저는 지금 당장 보내줄 수 없는 형편이기도 하지만 무표정한 얼굴로 걷는 것보다는 도시와 자연의 어우러짐을 즐길 줄 아는 아이들이길 소원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실 여건이 허락된다면 학원을 보낼 예정입니다. 언제인지는 기약이 없습니다. 가정 경제가 당장 나아질 기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보내더라도 원하는 친구가 있고 부족한 공부가 보충이 되는 방향으로 보내주고 싶긴 합니다.
부모의 바람대로 진행되지 않는 현실, 부모의 소원대로 살아내기 힘든 아이들, 변화무쌍한 현실과 맞물려 살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제대로 전해지지 못하는 현실이 먹먹하게 느껴지는 매일의 반복입니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바람과 생각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당장 해주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아이들을 잘 타일러야 하는 현실이 이어지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합니다.
"너 암살당하면 안 되는데..."라면서 아이와 대화를 마무리했지만 친구들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가 있냐고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고 합니다. 오늘도 우리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터덜터덜 학교생활 1일을 살아내고 집에 옵니다. 놀기로 한 아이가 학원에 빨리 가라는 엄마 전화받고 놀기를 취소했다고 서운해하기도 합니다. 그런 마음을 추스르고 복습을 하고 인형놀이를 하거나 바이올린을 연습합니다. 그러다가 조용해서 들여다보면 침대에서 자고 있기도 합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돈이 좀 더 생긴다면 아이가 원하는 학원을 보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