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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프로젝트 #43

큰사람

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합니다.

늘 같은 길이라도 늘 다른 느낌이어서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을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시작해보고 싶습니다. 



늘 걸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깨알'들을 찍고 있습니다. 가끔 사진이 뿌옇게 나온 것은 엄청나게 뜨겁고 찬란한 태양을 간신히 피하면서 찍어서 그렇습니다. 태양도 자기 역할을 하느라 양보하지 않았고요. 저도 원하는 '깨알'의 모습을 느낀 대로 찍으려고 하다 보니 그렇습니다. 그런 햇빛과 실랑이를 했다고 해서 아름다움이 극대화되는 손맛 장인은 아닙니다. 햇빛과 실랑이한 어설픈 각도, 뿌연 사진이 더 리얼리티가 살아난 사진 같아서 나름대로는 기분 좋은 '깨알'입니다. 


 

그런 '깨알'을 전하게 만든 장본인 '태양'이 밉지는 않습니다. 정수리나 등짝에 뜨거운 태양열이 내리꽃을 때 '아! 이런 태양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다.'라고 중얼거립니다.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해서요. 그런 발걸음 이후 외부미팅이 있거나 중요한 자리에 가야 할 때는 땀냄새로 불쾌감을 줄까 봐 조심합니다. 미팅 전에 여벌의 옷을 준비했다가 갈아입고 임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만나는 '깨알'들은 더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 날에 그렇게 만난 '깨알'들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1. 머리띠..

다리밑 벤치 팔걸이에 보라색 머리띠가 걸려있었습니다. 어느 아이가 흘린 머리띠를 어느 어른이 이뻐하는 마음에 고이 걸어놔 주신 것 같아서 보는 순간 이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아기들 벙어리장갑, 장갑 한쪽, 아기 양말, 아기 마스크, 머리띠, 머리핀들이 잘 찾을 수 있게 한 켠에 잘 올려져 있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에 대해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을 품은 누군가가 사회 속에 있다는 생각에 '여전히 좋은 세상'이라고 혼자 웃습니다.  



세 아이와 살고 있어서 그런지 그런 '깨알'들이 항상 눈에 들어옵니다. 또한 아이들이 세상 속에서 좋은 것만 바라보고 살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는데 불편함이 없었으면 좋겠고요. 아이들 물건이 떨어지면 예쁘게 걸어놔 주는 어른들이 여전히 있어서 참 좋습니다. 자기 소중한 물건(머리핀, 고무줄)을 잃어버리면 동네 주변을 돌아다니며 찾고 찾을 때까지 우는 우리 아이들을 생각해 보니 팔걸이에 걸려있는 머리띠가 이뻐 보였습니다.  



#2. 노랑자전거..

골목 구석에 놓인 노랑초록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를 타세요.'이기도 하고요. 한눈에 보여서 관리가 쉽기도 하고요. 모두의 눈에 선명히 보이니까 함부로 도난되지 않을 수도 있고요. 



그런 당연한 이유를 떠나서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알록달록한 시설물이나 장비들을 보면 일단 즐겁습니다. 도시는 기본적으로 수많은 건물과 검은 아스팔트 도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 도시구조물속에 알록달록한 '깨알'들은 상상력과 동심을 놓치지 않도록 해주는 매개체 같습니다. 

 


매개체로써 느껴지다 보니 길을 걷다 보이는 모든 알록달록 깨알들은 볼 때마다 모두 재밌습니다. 깜장 밤에 노란 보름달이 더 아름답듯이 회색빛 도시에서 드문드문 보이는 알록달록 '깨알'들이 엄청 이쁘고 재밌습니다.  



#3. 화분과 화분사이..

골목 모퉁이를 화분들로 꾸며놓은 것 자체가 아름답습니다. 크고 작은 화분들을 보호하시겠다고 '폴리스 라인'을 둘러놓은 것도 재밌고요. 

 


재밌는 광경을 보면서 저는 또 다른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파마를 이쁘게 하신 어르신이 30년 이상 사용한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는 얼굴같이 느껴졌습니다. 

 


저 화분들이 모두 꽃을 피우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아끼는 목걸이를 하고 자랑 중이신 어르신은 얼마나 기분 좋으실까라는 상상을 더더 하게 되었습니다. 날이 화창하고 좋아서인지 상상이 마구마구 샘솟는 오후였습니다. 



#4. 신문..

이른 시간에 아파트 현관을 나오다 보니 오랜만에 반가운 손님을 만났습니다. '신문'



아직도 신문을 배달하고 있고 배달받아서 보는 분이 있다는 것이 기분 좋게 했습니다.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으니까요. 아직은 '잊지잃 프로젝트- 잊히거나 사라지거나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프로젝트'에 쓸 정도는 아니라서요. 



신문에 얽힌 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릴 때 읽던 신문은 기사내용이 세로로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엎드려서 읽으며 잘못 문지르면 팔꿈치가 시커멓게 되는 신문을 꼭 어두운 데서 읽었습니다. 공부를 잘하기 위한 열정은 아니었고요. 읽으면서 얼른 눈이 나빠지기를 소원했었습니다. 안경을 껴서 '똘똘이'처럼 되고 싶어서요. 



그렇게 열정적으로 신문을 본 덕분에 저는 안경을 낄정도로 나쁜 시력을 가지게 되었고요. 외형적으로 '똘똘이'가 되었습니다. 소위 '공부 잘해 보이는 아이'로 이미지메이킹성공이었습니다. 다만 평생 안경을 놓지 못하는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평생을 쓰고 다니다 보니 안경을 벗으면 눈앞이 뿌옇게 보일 정도로 눈이 많이 나빠졌습니다. 신문은 그렇게 저의 열망을 실현시켜 준 귀한 물건이기도 합니다. 현관문 앞에 던져진 이웃집 신문을 보면서 잠시 추억을 떠올려보았습니다. 

 


#5. 주차금지..

어느 길가에 주차금지 표지판을 보았습니다. 주인분께서 알뜰히 사용하고 있으셨습니다. 분리된 것도 철사로 다시 묶고 받침대가 거의 부러지기 직전인 상황인데도 여전히 사용 중이셨습니다. 그런 주차금지 표지판을 보면서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혼자 웃었습니다. 


"중꺽마" 


중간에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단어가 한참 유행중일 때가 있었습니다. 표지판 다리가 구부러졌는데도 길거리에 세워서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무릎을 꿇었지만 주차금지는 알릴 것이다."  영화에서 무릎을 꿇고 위협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절대 비밀을 말하지 않고, 지쳐서 무릎을 꿇으며 패배직전인데도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서서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선수들처럼 말입니다. 사용감이 아주 많은 주차금지표지판을 보면서 즐거운 상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상상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일상의 감사가 앞서면서 이런 '깨알'들을 즐길 수 있는 일상도 큰 감사로 느껴지는 날이었습니다.  '깨알'들을 보면서 즐거운 '상상'도 추가로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다 보니 더 큰 감사, 생각지 못한 감사도 깨닫게 됩니다. 어느 날인가는 그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매일 등에 내리쬐는 햇살을 느끼는 것이 추울 때는 따스하고 더울 때는 불쾌감을 주는 땀방울을 만들어서 짜증도 냅니다. 그런 햇살이 작은 새싹들에게는 진짜 에너지원이 되어서 햇빛을 받은 만큼 성장하기도 합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제가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햇빛, 공기, 바람, 물이 아무렇지 않게 손바닥 안으로 또는 등짝에 와닿으니까 고마운지 모르고 하루하루 지내는 것 같다고 깨달았습니다. 감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입니다.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것들에 대해서 '감사'를 깨닫는 시간도 되어서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항상 길거리 '깨알'들은 공짜인데 인생, 사회 등등 모든 것에 대해서 깨달음도 얻게 해 줘서 귀합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깨알 프로젝트를 '푸훗'하고 저처럼 1초 웃으시고 읽어주실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늘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의 깨알프로젝트 #43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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