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깨알프로젝트 #42

큰사람

길을 걷다보면 다양한 날씨를 만나게 됩니다. 사계절이 있는 대한민국에서 다양한 날씨를 접하는 것도 감사입니다. 비가 심하게 오는 날은  운동화가 흠뻑 젖게 됩니다. 완전히 젖은 신발 속 발가락이 질척거리기 시작하면 양말을 벗어줘야 합니다. 양말을 벗고나면 발가락이 물에서 건진 낙지마냥 미끄덩거립니다. 그 상황에서 느끼는 찝찝함은 말할 수 없이 불쾌할 때도 있고요. 그렇게 걷다가 예정없이  '깨알'을 만나면 비가 어느새 그치고 화창한 해를 맞이하는 것처럼 기분도 금새 좋아집니다.  그런'깨알'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우산을 붙잡고 쪼그려 앉아서 사진을 찍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지나가는 분들이 갸우뚱하면서 멀리서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비가오나 바람이 부나 '깨알'들을 만나면 그때 그 재미를 함께 나누고 싶어서 꼭 찍곤 합니다. 그렇게 찍은 '깨알'들을 이제 나누어보겠습니다.


#1. 배수관..

비가 심각하게 많이 오는 날이었습니다. 육교밑 배수관을 통해서 세차게 내리는 빗물들이 콸콸콸 (?) 흘러내릴만큼 비가 많이 오는 중이었습니다.



생각과 달리 배수관앞으로 쫄쫄쫄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보도블럭위에 우산을 들고 서 있기만해도 세차게 내린 빗방울이 힘을 잃지 않고 바닥에서 튀어오릅니다.  강력한 빗줄기덕분에 운동화가 순식간에 젖었습니다. 그런 비를 모아서 배수하는 커다란 배수관에서 쫄쫄쫄 흘러내리는 물을 보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괜한 상상이기도 하지만 그저 재밌어서 찍는 동안 재밌었습니다. 사실 사진 찍는동안 조금 무서웠습니다. 종종 큰 시내버스가 지나가면서 물세례를 퍼붓는 지역이어서 긴장하면서 찍었습니다. 꼭 종군기자처럼, 르포지 기자처럼 뭔가 대단한 것을 포착해서 꼭 찍어야만되는 것같은 느낌으로 쪼그려 있었습니다. 비가 오는데 '깨알'덕분에 재밌어서 '찝찝함'은 진작에 잊어버린 날이었습니다.





#2. 노랑 크레인..

천변에서 공사하는동안 바쁘게 일하는 미니 포크레인과 노랑 대형 크레인을 보게 되었습니다. 노랑 크레인에 시선이 가길래 잠시 서서 구경했습니다. 그리고 상상했고요.



크레인에서 몇단에 걸쳐서 나온  붐대에서 메인 붐헤드에 걸려 있는 훅블록을 보면서 상상해봤습니다. 저 위에서 보는 작업현장은 어떤 느낌일까? 예전에 롯데월드 자이로드롭 상부에 올라가서 봤던 느낌도 떠올랐습니다. 함께 부대끼며 사는 사람들이 콩알만하게 보이는 느낌, 자동차들은 모조리 마우스처럼 보이는 세상이  차~암 신기했었습니다.



그런 느낌과 함께 한껏 올린 3단이상 붐대의 위용은 가히 최고였습니다. 그렇게 올리고도 차체가 멀쩡하니 버텨주는 것도 신기하고요. 롱다리를 자랑하는 모델같은 느낌도 들었고요. 푸른 잔디위의 노랑크레인이 계속 제 시선을 끌었습니다. 시간만 있다면 풀밭에 앉아서 한번 그려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아기일때 무조건 노랑, 주황, 빨강색깔의 대형건설작업차량만 보면 좋아서 손을 흔들던 기억도 났습니다. 잠시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치게 해준 크레인이 재밌었습니다.

 


#3. 징검다리..

천변위에서는 다리를 통해 자동차와 사람이 건너가지만  천변을 따라 걸을때는 건너기위해서는 징검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사진을 찍은 이유는 징검다리위로 사람들이 금새 지나갈 것만 같았습니다. 기다리면 곧 지나갈 것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누가요?

'비틀즈'

그들이 저 징검다리로 무표정하게 지나가다가 '싱긋'웃고 지나갈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횡단보도를 지나가던 비틀즈가 이제는 징검다리를 지나갈 타이밍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징검다리를 찍는 순간 저도 징검다리위에 서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징검다리를 하나하나 건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최근에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횡단보도위를 지나가는 비틀즈 앨범자켓에서 깜짝 놀랄 일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저만 그런 경험을 했겠지요. 몇십년을 아무렇지않게 보면서 '재밌네.기발하네'라는 생각만 하던 앨범 재킷 사진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나란히 걷는 멤버들중에 폴 매카트니'가 맨발이었던 것입니다. '아! 왜 이제서야 알아챘을까?' 저는 그것을 발견한 순간 혼자서 크게 웃었습니다. 엄청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비틀즈가 지나갈 것같다는 상상'을 조금 더 하다가 건너는 다른 분들을 마주하면서 상상을 접고 지나갔습니다.

  



#4. 마이쮸..

길을 건너려고 노랑 점자블럭을 지나 보도블럭 경계석을 밟았다가 뒤로 물러섰습니다. 다가오는 차가 무서워서가 아니고 급한 일이 생겨서도 아닙니다.  신호가 바뀌어서 모두들 건너가기 시작했는데 뒤로 후진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재밌는 '깨알'을 만났기때문입니다. 바로! 바로 !먹으려고 포장지를 벗기다가 떨어뜨려서 통채로 버리고 간 '마이쮸 한 통'이었습니다. 사진을 찍고 잠시 서 있었던 이유는 마이쮸 한 통을 먹어보지도 못하고 울면서 자리를 떠났을  어느 '아기 또는 아이'의 마음이 생각나서였습니다.


"아...잉...떨어뜨렸어!"

"버려. 또 사줄께. 가자..."

"잉...잉...주을래..."


이런 실랑이를 하면서 갔을 아기와 엄마가 떠올라서 잠시 웃으면서 서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신호가 바뀌었는대도 길을 못 건넜습니다.  저희 세 아이들이 어릴때도 매번 저런 일은 생겼습니다. '5초룰'이라면서 포장지도 안 벗겨졌으니 얼른 주워서 먹겠다는 아이에게 코로나 상황이니 절대 안된다고 설명하던 때도 생각납니다. 먹어보지도 못한 '마이쮸 한 통'은 아이의 꿈과 재미가 날아간 찰나였을 겁니다. 감사한 것은 아이들과 살다보니 겪어본 상황이라서 땅에 떨어진 '마이쮸 한 통'을 보면서 웃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5. 타이어..

골목길을 돌면서 타이어를 만났습니다. 절묘한 자리선정에 웃으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토바이 타이어가 전봇대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버려진 것이 재밌는 것이 아니라, 마침 황색 점선위에 올려져있어서 재밌었습니다. 주인 잃은 오토바이 타이어가 가야할 곳을 향해 놓여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주인과 떨어져서 이제 달리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달리고 싶어서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을 바라보면서 전봇대에 기대 서 있는 것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열심히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지만 중간중간에 변수가 생기고 고민거리가 생겨서 멈춰서야만 하는 우리 인생 모습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전봇대에 기대 있는 오토바이 타이어. 며칠후에 없어진 것을 보고 새 주인을 만났거나 폐기물로 어딘가로 버려졌겠다는 상상에 은근히 씁쓸했습니다. 다음번에는 꼭 주인과 함께 여행을 이어가도록..




#6. 나이키..

이런...이런...


보는 순간 그 자리에 서서 잠시 감상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될 문구였습니다.


'오늘 먹을 고기를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고깃집 캐치프레이즈와 맞먹는 수준의 문구였습니다. 'Just Do Eat' 아....당장 먹어야하는구나....이 고깃집에 발을 들이는 고객들은 모두 저 문구에 발길을 멈추고 웃을 것입니다. 지나가다가 저 문구를 보고 '푸훗'하고 웃는 순간, 발가락은 고깃집 문턱을 향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장님의 덫에 걸린 것이지요.



최선을 다해서 위트를 활용하면서 사업하시는 사장님의 센스를 꼭 알아줘야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고깃집에 첫 발을 디디고 싶은 욕망을 누르고 저 멘트를 보면서 서 있었습니다.  길거리에 재밌는 문구로 승부하는 가게들도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나가는 모두에게 방문여부를 떠나서  '깨알같은 웃음'을 주기 때문입니다. 즐거운 문구였습니다.




여전히 길을 걷다보면 수많은 '깨알'들을 만납니다.  여전히 그 '깨알'들을 '재밌다'라고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돈과 시간에 쫓겨서, 계산적인 사람들에 인간적인 매력을 못 느낀다며 툴툴거리며 헉헉대는 상황을 살아내고 있지만 '깨알'들을 만나면 그저 '웃음'을 터트리고 시작하게 되어서 감사하고요.



혼자 식사후 걷다가 또는 업무로 걷다가 '깨알'들을 만나면 나누려고 노력했는데 요즘은 아이들과 걷다가도 만나게 됩니다. 그럴때마다 잠시 양해를 구하고 멈춰서서 찍곤 합니다. 그럴때마다 뒤가 서늘한게 느껴져서 흠칫 놀라면서 뒤를 돌아보면 큰아들이 서 있습니다.

"야! 뭐야! 놀랬잖아.""

"아빠 가 뭘 보고 웃고 찍는지 보고 싶었어요."

라고 말하면서 빙긋이 웃어줍니다.

"별거 아니야. 쓰레기나 그런것들이야. 작품도 아닌데 멀.."

"아빠가 찍은 거 보면 다 새롭기도 하고 재밌더라고요. "

그런 대화를 하면서 다시 길을 걷기도 합니다. 큰아들이 아빠가 소소하게 즐기는 '무료 취미'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도 감사하고요. 아이가 어느새 이런 아빠 행동을 눈여겨보면서 함께 즐길 정도가 되었다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마냥 즐겁지는 않습니다. 이 아이가 엘리베이터 버튼보다 작은 키로 아장거리며 제 손을 잡는 높이가 높아서 팔이 아프다고 '찡찡'했던 귀여웠던 순간이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가끔 생각나서입니다. 이제 무럭무럭 세상을 향해 나아갈 아이를 보면서 부모의 '미련 욕심'이겠지요?



여기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저의 아무것도 아닌것같은 '깨알 프로젝트'를 즐겨주신다는 것에도 감사합니다.


큰사람의 깨알프로젝트 #42 -- 끝 --

매거진의 이전글 깨알프로젝트 #4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