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요청에는 가능하면 동행한다. 충분히 돌아보면서 살 수 있도록 참견하기도 하며 따라다닌다. 함께하는 동안 나는 다른 부부들의모습을 보기도 하는데 함께 알콩달콩 쇼핑하는 부부도 있고, 무심히 걸어 다니는 부부도 있고, 정말 억지로 다니는 부부들도 있다. 나는 새로운 장소나 특이한 것들은 꼭 사진 찍어둔다. 다음에 가족이 함께 오거나 아이들에게 사주면 좋을 것 같은 것들도 메모하듯이 사진 찍는 것이다. 수시로 주변을 보면서 뭔가를 하기 때문에 아내는 내가 금붕어 눈 같다고 한다. 아내는 앞과 양 옆 정도만 보면서 걷는데, 나는 앞, 뒤, 옆, 위까지 보면서 다니는 것처럼안 보는 게 없다는 것이다.
필요한 물건이었지만 아내는가격 또는 스타일 때문에 최종결정하는 것을 망설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얼른 제안한다.
"여보. 커피 한 잔 하고 최종 결정해요."
"그럴까요? 다리도 아프네."
아내는 맘에 드는데 가격이 고민되면 그냥 포기한다. 매월 밀려오는 재정압박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아내는 마음의 결정을 했다. 그래도 사기로 결정한 물건 앞에 가면 또 망설인다.
"여보, 사요. 당신은 그 가격 뽑을 때까지 사용하니까요"
"아니에요. 안 살래요."
"그냥 사요. 여보. "
머뭇거리는 사이 나는 계산대로 가져간다.
"남편. 나 안 살 거예요."
"계산해 주세요."
쇼핑 후 나오는 길에 아내는 기분이 좋지만 미안하다고 한다.
"남편도 꼭 사야 할 게 있는데 나만 샀네요 "
"그러지 마요. 당신 맘 알아요."
"남편도 필요한 거 사요."
"아뇨. 그냥 오늘은 갑시다." -나는 필요한 것이 있지만 오늘 계획에 없었다며 포기한다. 아내는 그런 것에도 맘이 힘들다고 했다. 여전히 나는 타이밍을 못 맞추는 노력을 하기도 한다.
신혼 때 '제로섬 게임'처럼 살았던 것에 대한 상처일 수도 있다. 누가 돈을 많이 쓰면 누군가는 쓸 돈이 적어진다.
5년 동안 아내는 묵묵히 견디며 힘든 내색을 안 했다. 그저 남편이 현실을 직시해 주길 기다렸다고 했다. 그래서 아내는 여차하면 포기했다. 그때는 그냥 포기하는 줄 알았다. 꼭 필요한 것을 못 사면 아내는 온라인 최저가 쇼핑을 한다. 아내가 사려고 하는 것은 보통 정말 필요해서 참다가 사는 것이므로 가능하면 사도록 밀어붙인다. 최종결정까지 2시간 이상 걸어 다녀도 불평하지 않는다. 함께 해줄 수 있다는 것과 내가 불평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종종 아내가 다음 달 결제 때문에 포기한 것을 아내 생각한다고 덜컥 사버리면 아내가 매우 힘들다고 했다. '그건 배려보다는 무대책이라서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요즘 쇼핑 동행 때는 아내가 고심 끝에 결정을 미루는 이유가 '다음 달 결제 걱정'이라면 '무대책 밀어붙이기'는 하지 않는다. 이제 그렇게 변해간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건 무한만랩처럼 동행요청에는 '항상 콜'하며 따라나선다.
2. 장보기 동행
아내는 장을 보러 간다. 아주 급한 것은 온라인 초특급 주문처리한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짐이 많으면 배달을 요청하거나 내가 가능할 때면 직접 사 오는 걸 택한다. 근거리는 가능하면 걸어서 간다. 근거리이지만 양이 많을 땐 차로 이동한다.
"이것저것 사야 하는데 함께 가 줄 수 있어요?"
"그럼요."
얼른 준비하고 주저함 없이 출동한다. 카트를 밀고 다니며 물건 담는 걸 돕고, 사야 하는 것들을 놓치면 말해주곤 한다. 카트를 밀면서 한 번도 불평하거나 얼른 끝내기를 독촉하지않는다. 그저 묵묵히 카트 밀고 다니면서 나름대로 즐긴다. 가끔 어른들과 함께 먹고 싶은 걸 사자고 할 때도 있다.때로는 아내가 장보기가 일찍 끝났다며 나에게 살게 있냐며 물어본다.
"먹고 싶은 거 있어요? 남편? 살 거 다 샀어요. 당신 먹고 싶은 것은요?"
"나는 없어요." 얼른 대답한다.
"말해요. 한번 사 가기로 해요."
"없어요. 그냥 가요. 여보"
"사도 돼요. 아까 슬쩍 만지던 거 있던대요?"
"알겠어. 알았어요. '짜파게티'요."
" ㅎㅎ. 그래요. 한 묶음 사요."
나는 아직 짜파게티를 즐긴다. 그런 영향인지 아이들 모두 짜파게티를 아주 좋아한다.
장보기를 마치고 계산이 끝나면 빛의 속도로 물건들을 박스에 담는다. 항상 내 머리를 시험당하는듯한 압박을 받으며 물건들을 계산 속도에 떠밀려 담곤 한다. 스캔마감과 함께 계산을 하는 동안 박스테이프로 마무리하고는 흐뭇해하며 아내 앞에 들고 선다.
"가요. 여보"
"잘 담았네요. 뭘 또 테이프로 칭칭 감쌌어요."
"집에 가다가 박스 밑도 터지고 그래서요."
의류회사 일하며 물류창고 방문할 때마다 배운 박스테이프 사용법을 잘 활용한다. 세상에서 배운 것들은 다 써먹을 때가 있다는 말이 이것일까? 맨손으로 박스테이프 자를 수 있는 것도 여전히 자랑이기도 하다.
장보기를 동행하며 열심히 카트를 밀고 다니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아내사랑이다. 힘들다거나 귀찮다고 한 적은 없다. 아내장보기 동행은 내 마음속에 항상 뿌듯함을 준다.
"휴~~~ 오늘도 완수!!"
쇼핑동행과 장보기 동행할 때 만나는 동네 분들이 종종 놀라며 부러워한다고 한다.
"늘 남편이함께 해주네요. 부럽네요."
내 대답은 이렇다.
"부러워하지 말라 해요. 남편이 돈 많이 벌어와서 원하는 거 맘껏 사고 배달하시는데. 뭘"
" 나야 못 버니까 내가 자처해서 동행하는 건데요."
"장보기 빼고는 남편분들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아내를 잘 사랑하고 있으실걸요."라고 마음속으로만 말한다.
요즘에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혹, 동네 엄마들과 겸사겸사 장 보러 가야 하거나 쇼핑하려면 가요." "나랑 해야 한다고 얽매이지 말고요." 아내는 내가 하고 싶어 해서 동행해 달라고 그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못 하게 되면 내가 삐질 거고 그러면 또 힘들다는 생각에 그런다고도 했었기때문이다. 여러모로 사람 피곤하게 하는 것 같다.
"아니에요. 그런 상황 생기면 말할게요. 남편"이란다.
아이들이 각자 생각으로 행동하기 시작하는 초등 고학년을 배려하듯이, 부부관계도 회복과 사랑을 위해 함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편과 매번 하고 싶지는 않을 수 있다. 아내 생각을 잘 헤아려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아직은 다행이다.
쇼핑과 장보기 동행을 싫어하지 않는 내가 다행이다.
나름 필살기이고 자랑스럽다. 한편으로는 참 별거 아닌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웬만한 가정들 다 그렇게 살고 있는데 말이다.
나는일상생활의 내 실수와 그에 따른 아내와 아이들의 아픔을 나누고 있다. 하나하나 적으면서 느끼는 것은 '겸손해야 하고 감사해야 하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잘 지내시는 가정도 많고 다른 사람을 적절하게 잘 배려하는 가정도 많다. 오늘은 필살기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나만 뿌듯한' 필살기를 자랑한 것 같아서 민망함이 동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