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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조금씩이라도 먹여요. +6

손톱만큼의 치조 조각

큰아들이 태어나서 본격적으로 모유를 먹으면서 하루하루 커갈 때였습니다.


그러다가 주변 사람들이 모유만 먹으면 덩치가 크지 않는다면서 분유를 함께 먹이면 아이가 성장을 잘한다는 말에 분유를 사다가 먹여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모유 외에 먹다 보면 아이가 열이 나면서 갑자기 호흡곤란이 오고 얼굴이 퉁퉁 붓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을 갔더니 유당 불내증, 우유 알레르기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혹여 피치 못할 장소에서 아기와 머물러야 할 경우를 대비하여 유당 불내증에 맞는 특수 분유를 따로 사서 다니기도 했습니다. 실직을 해서 생활비가 부족한데 아이를 위해서는 기저귀와 분유가 필수이기에 우선순위로 했는데 그 가격이 감당하기 버거웠습니다.



그렇게 지내면서 '왜? 우리 아이만 이런 고통을 겪는 건가? 우리는 아무런 알레르기가 없는데 말이야!!'라면서 원망과 분노가 가득한 말을 토해낼 때도 있었습니다. 특히, 돈이 모자란 달에는 기저귀와 특수 분유를 비축해 놓고 지내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왜 이런 일을 내가 겪어야 하나!!!!'라면서 또 짜증을 냈습니다.



그런 시간을 겪는 상황에서 둘째가 생기니까 돈이 궁해지면서 마음이 더 강팍해졌습니다.

'세상에 알레르기가 어디 있어! 마음문제지! 뭐든지 적응하면 되는 거 아닌가? 제대로 못 먹고 못 사 입는 문제를 떠나서 기저귀 트러블이 없는 보드라운 기저귀와 유당불내증 분유를 항상 사는 것은 너무너무 힘들다! 버겁다! 아기가 조금이라도 적응할 수 있도록 깨알만큼 먹여서 적응시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아내에게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았습니다.



"여보! 아기가 우유나 유제품에 평생 알레르기를 달고 살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조금씩 먹여가면서 적응시켜 봅시다. 그러면 좋아질지 어떻게 알아요?"

"남편! 좋은 생각이 아닌 거 같아요! 그러다가 큰일 생기면 정말 큰 사고 날지도 몰라요!"

"걱정 말아요. 아주 쪼끔씩 먹이면서 적응시켜 봅시다. 너무 힘들기는 하잖아요. 앞으로 애가 어떻게 살아요!"



그런 대화를 하면서 아기를 적응시켜 보겠다고 우겼습니다. 아내와 대화를 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대화라기보다는 아내를 궤변으로 강제동조하도록 만든 셈입니다. 제대로 된 가설도 아니고요. 어떤 근거자료도 없고 그런 시도를 통해 알레르기가 극복되었다는 사례도 찾아보지 않았으니 순전히 '궤변'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조금씩 손톱보다 작은 크기로 모유를 먹은 아기에게 우리가 먹을 때마다 조금씩 치즈를 먹이기도 했습니다.


"이거 먹여봐요!"

"남편! 너무 크기 않아요!"

"에구! 손톱보다 작고 깨알 정도예요. 큰일 생길 일이 없어요!"

"아... 알... 알았어요.."


아내는 마지못해 대답을 했습니다. 마치 서로가 합의를 본 것처럼 아기에게 깨알 정도의 치즈를 제가 먹였습니다. 아무 일 없이 쎄근쎄근 자길래 역시 좋은 생각이었다면서 흐뭇해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아기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자고 있는 아기에게 달려가보니 기저귀불편이나 잠 또는 우유를 먹기 위한 울음이 아니었습니다. 뭔가 불편함에서 오는 울음소리였습니다. 아기를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우리 집 아기가 아니었습니다.


아기얼굴이 우리 아기가 아니었습니다. 깨알정도 치즈를 먹였는데 그것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서 얼굴이 퉁퉁 부어서 눈, 코, 입이 자리는 남아있지만 거의 평평할 정도로 부어 있었습니다. 열이 오르고 있었고요. 아내는 울려고 하고요. 저는 괜찮을 거라면서 근처 응급실로 아기를 데리고 갔습니다. 응급실은 역시 응급실이었습니다. 모든 의사와 간호사분들이 분주하게 일처리를 하는 중이라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저는 아기를 안고 응급실 입구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아내에게 아기와 함께 조금 기다렸다가 진료를 받고 집에 가야 할 거 같다고 말하고 아기 얼굴을 사진 찍어서 보냈습니다. 아직은 진정이 안 되었지만 진료를 받으면 곧 나아질 거라면서 안심을 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퉁퉁 부운 아기 얼굴 사진을 받은 아내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미안해요!"


아무런 근거나 사례가 없는데도 시도한 것에 대한 결과가 너무 참혹해서 무릎 꿇는 심정으로 아내에게 사과했습니다.


"아가야! 정말 미안하다!"


아기에게도 사과했습니다.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주는 우유를 먹고 잠을 자고 똥, 오줌 싸면 기저귀 갈아주는 손길에 의지해서 한참을 지내야 하는 아기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아프고 얼굴이 퉁퉁 부어서 눈, 코, 입이 위치만 남아있고 단차가 없을 정도로 망가진채로 퉁퉁 부운 얼굴로 안겨있는 것에 너무 미안했습니다. 너무 미안해서 아기를 보고 말로 사과하면서 울었습니다.


"정말 미안하다! 미안!! 아가야!!"


그렇게 말하고 참회하면서 한참을 기다리다 보니 의사 선생님의 진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유제품 알레르기로 인한 것이 맞으며 아기가 내성을 가지기 전에는 절대로 인위적으로 먹이거나 하지 않도록 당부의 말도 들었습니다. 주사를 맞고 약간의 약을 처방받고 나서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내내 죄책감과 미안함만이 제 마음을 꽉 채우고 있었습니다. 얼른 집에 가서 맘 아파하고 우는 아내에게도 사죄하고 위로해주고 싶었습니다.



집에 가자마자 진정이 되어가고 얼굴의 부기가 빠져가는 아기를 아기침대에 눕혔습니다. 그러자마자 아내에게 다시 말했습니다.


"여보! 다시는 그런 무모한 일은 하지 않을게요! 생각도 하지 않을게요! 이번 일은 진짜 미안해요! "

"흑흑..... 아기가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렇게 깨알만한 치즈를 먹이면서 유당불내증, 우유 알레르기에 대한 내성을 길러주자는 어이없는 저의 무모한 시도는 비참한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결혼하고 신혼도 끝나지 않은 시점에 아내에게 진심으로 무릎 꿇는 마음으로 했던 첫 번째 사과였습니다.



그 이후, 아기가 커서 큰아들이 되고 중학교 2학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아이가 내키지 않거나 먹고 나서 애매한 느낌이 들거나 몸에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는 음식들은 절대로 억지로 먹이지 않고 있습니다. 단, 본인이 너무 유별난 삶이 싫어서 과감하게 도전해보고자 할 때는 여차하면 병원에 가거나 집에 준비된 알레르기약을 지원해주기도 합니다.


"절대 억지로 시키거나 먹이지 말자!"


다짐하는 날이었습니다. 손톱보다 작은 깨알만한 치즈 조각.. 정말 무서웠습니다. 아기에게 진짜 미안했고요.



결혼하고 처음으로 아기에게 사과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아기에게 어쩌면 너무 가혹하게 시도한 손길이었습니다. 그때 그렇게 반성하고 사과했으면서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차하면 고집 피우고 궤변을 늘어놓는 저의 모습이 미울 때도 있습니다. 항상 그때 일을 잊지 말고 함부로 고집부리지 말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날, 응급실 복도에 앉아서 아기를 안고서 엉엉 울면서 엄청 사과했습니다.



몸의 핸디캡을 불평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이는 여전히 몇 가지 식품에 대해서 알레르기 반응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알아서 음식 조절을 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스스로 자기를 보호하고 지냅니다. 그런 삶에 대해서 불평하기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지내는 모습에서 아빠인 제가 배웁니다. 저는 거꾸로 태어나며 부러진 왼쪽 팔 때문에 몸의 왼쪽이 미세하게 저만 느끼는 정도의 불편감이 있습니다. 키가 작습니다. 남들보다 유약해 보이고 곱상해 보인다는 것이 제 나름대로의 핸디캡입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엄청 불만을 가지고 평생 불평하면서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큰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배웠습니다. 불평하지 말자!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는 것에 큰 감사 하자.

아들의 알레르기반응과 음식조절을 보면서 저는 감사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특이반응을 일으키는 음식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웬만한 음식은 잘 먹습니다. 공항에 일할 때는 전 세계 승객들이 건네주는 자기들 나라 음식을 맛있게 먹어줘서 대부분 승객들이 '엄지 척'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모습으로 호감을 사다 보니 다른 나라 승객들과 함께 일하는 동안 특별한 트러블이 없었습니다. 그런 것이 저에게 축복인지는 몰랐습니다. 그저 그렇게 지내다가 가끔씩 아들 음식 알레르기가 생각날 때면 '그래! 나는 감사하자! 특출 난 재능을 가지지 못했다고 불평만 하지 말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살자!'라면서 다짐해 봅니다.



아이들과 살면서 느낀 것들을 잘 생각해 보면 제가 어른으로써 제대로 성숙해지도록 돕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것들을 잊지 않고 산다면 자연스럽게 트레이닝되어 제대로 된 어른이 될 것이고요. 그런 모습으로 아이들을 양육하다 보면 성품 좋은 자녀들이 되어 사회에서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일들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신혼 초에 겪었던 음식과 관련된 정말 큰 실수에 대해서 용기 있게 꺼내고 돌아볼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은 제 글을 읽어주시는 많은 분들 덕분입니다. 그래서, 잊지 않고 늘 미리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항상 함께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의 Andra C Taylor 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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