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각빠각
옥수수를 같이 먹은 추억은 알갱이 갯수만큼 추억이 쌓인다.
강원도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엄마의 시장나들이를 따라 다닐때마다 그 댓가로 떡 한봉지 또는 옥수수를 먹게 되었습니다. 김이 서린 봉지를 손을 넣어서 옥수수 묶음을 꺼내주는 아줌마 손에 붙잡혀 나오는 김이 모락모락나는 노랑 옥수수는 늘 가슴이 쿵쾅거리게 했습니다. 빨리 먹고 싶어서 들고가는내내 옥수수봉지를 눌러서 알갱이 촉감을 느끼곤 했고요. 집까지 가는 것을 기다리지 못해서 엄마 손을 잡고 시장을 걸어다니면서 꺼내 먹기도 했습니다.
빠각빠각
묘하게 달근달근하며 옥수수에서 알갱이를 뜯어 씹을때마다 딱딱할것같은 알갱이가 빠각빠각 터지면서 속살이 더 찝질하고 달근거리면서 입안 가득 채워지는 즐거움. 그 식감과 함께 옥수수에서 흘러내리는 국물을 음료수마시듯 쭉쭉 빨아먹곤 했습니다. 왜이리 맛있냐고 물었더니 사카린 맛이라고 했었고요. 그렇게 제게는 사카린의 풍미를 잔뜩 품은 알이 짱짱한 옥수수 추억이 남아 있습니다. 가끔 찰옥수수라고 찰지고 찐덕거리는 옥수수는 제게 2순위였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쭉 빨아먹으면 사카린맛은 사라지고 약간 짭짤한 옥수수가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옥수수를 아버지에게서 먹는 방법을 어릴때 아부지애게 배웠습니다.
이렇게 차근차근 알갱이를 먹는거야. 그래야 깔끔하게 먹을 수 있어!!
아버지의 그런 말과 알갱이 식감의 추억을 품은 강원도를 떠나 살고 있다보니 제대로 된 강원도 옥수수를 한동안 먹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강원도 바닷가로 아이들과 1박 2일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길가에 지나가다가 옥수수파는 집을 발견하고 금광을 발견하듯이 차를 끼이익~ 세웠습니다. 비가 부슬거리고 내리기에 둘째딸만 데리고 얼른 뛰어갔습니다. 여전히 봉지안에서 잘 삶기고 있는 노오랑 옥수수를 보면서 두봉지를 샀습니다.
"강원도에서 파는데 강원도 옥수수가 맞아요?"
"진짜 맞아요! 이그!! "
그 얘기를 듣고 확답을 받은 것처럼 기뻐했습니다. 둘째딸에게 "이거 진짜 맛있는거야! 진짜 강원도 옥수수라면! 아빠는 엄청 좋아해!!"라면서 길가의 옥수수가게를 나왔습니다. 비가 조금 더 굵어지길래 옥수수집에서 봉지 두개를 얻었습니다. 둘째딸은 어리둥절해했지만 제가 먼저 머리에 뒤집어쓰고 두 손잡이를 귀에다 걸었습니다. 둘째딸은 엄청 재밌어하면서 함께 뒤집어쓰고 얼른 차로 돌아왔습니다.
평상시 맛있지 않은 옥수수를 먹었던 아이들은 차에 타자마자 하나씩 집어들어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가로로 차곡차곡 알을 빼먹는 아이, 옆으로 눕혀서 아무데나 씹어서 먹는 아이, 끝에서부터 먹기는 하는데 질질 알갱히 찌꺼기를 흘리면서 먹는 아이들로 다양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야! 전부 옥수수를 너무 좋아하는구만!!"이라면서 저는 기분이 엄청 좋았습니다. "진짜 강원도 옥수수가 맞네! 알이 짱짱하고 씹으면 빠각거리는게 맞아! 진짜 맛있네!" 그런 말을 반복하면서 차를 운전해서 숙소를 향했습니다.
운전하는내내 제 어깨가 차지붕을 뚫고 나갈만큼 의기양양했습니다. 그러면서 "바닥에 질질 흘리지 말고 먹어라!"라고 말하면서 "아빠처럼 이렇게 차근차근 옥수수 알 빼먹으면 깔끔하고 맛있는데..."라면서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아이! 아빠! 알아서 먹을께요!"라고 말하는 걸 들으면서 "으이그"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서 순간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차근차근 알갱이를 먹는거야. 그래야 깔끔하게 먹을 수 있어!!
어디선가 들은 말을 내가 하는 것같다고 느껴서 어어어....했는데 운전하면서 생각해보니 아부지가 늘 내게 차곡차곡 알을 빼먹으면서 깔끔하게 먹는 것을 자랑하시듯 알려주는 것이 몸에 베어있었던 것입니다. 그걸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의기양양하게 대단한 기술처럼 그대로 말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뭉클하기도 했습니다. 아부지는 자기 아부지에게 보고 들은 것들을 당신도 모르게 제게 전해주고 저는 생활하면서 늘 보고 듣는 것을 저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아부지와 제가 옥수수를 들고 앉아서 식탁에서 먹던 그림이 이제는 제가 아이들을 앞에 두고 먹고 있는 그림과 오버랩되면서 감개무량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이런 날도 오는구나!
저도 모르게 옥수수 알갱이를 차곡차곡 빼먹는 기술을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은근히 몸에 벤 습관이 무섭습니다. 생각해보면 무려 아부지와 20여년 함께 마주보고 옥수수 알갱이를 뽑아먹었으니 구력이 상당한 것입니다. 강원도 옥수수, 찰옥수수들을 신나게 즐겼으니 생각할 겨를없이 눈이 보자마자 몸이 반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구력에서 나온 옥수수 알갱이 깨끗이 빼먹는 방법이 또 대물림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젤리먹기를 함께 즐기듯이, 저도 옥수수먹기를 함께 즐기고 있습니다.
제게는 감동입니다. 아이들과 옥수수라는 것을 젤리처럼 함께 즐기고 있는 현실이요. 마트에서 아내와 장을 보고나서도 옥수수가 보이면, 길을 걷다가 옥수수가 보이면, 관광지를 갔다가 옥수수가 보이면, 휴게소에서 옥수수가 보이면 일단 눈의 조리개를 열어서 다시한번 바라봅니다. 아이들과 먹으려면 기본 5개인데 가격이 얼마이며 제대로 즐길만한 옥수수인가라면서 점검합니다. 물론 삼남매 모두 거부하기보다는 모두 즐겨주고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옥수수 먹기 기술을 통해 대물림을 생각해보다.
아이들이 옥수수 먹을때 점점 덜 흘리면서 먹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이들은 무르거나 손에 찐득거리게 알이 터지는 옥수수는 싫어합니다. 근래에 초당옥수수를 사다가 삶아먹어봤더니 그냥 먹어도 달아서 너무 좋아하는 것도 봤고요. 정 먹고 싶으면 편의점에서 이미 삶아놓은 옥수수를 전자렌지에 데워서 먹기도 합니다. 그런 과정을 함께 하면서 '대물림'을 생각해봤습니다. 이렇게 좋은 추억과 경험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은 좋은데 이런 것처럼'나쁜 습관과 경험'이 대물림된다면 엄청 무섭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러면서 제게 쓴뿌리같은 말과 행동들이 은연중에 전달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언제부터인가 즐기게 된 옥수수 ,특히 강원도 옥수수에 대해서 나누어 보았습니다. 여전히 별거 아닌 것이고 소울푸드라고 할만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통해 느꼈던 아이들과의 행복, 대물림에 대한 경각심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상속 경험과 생각을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항상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바람없이 연 날리는 남자Dd)
출처:사진: 사진: Unsplash의Michael Parula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