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질치즈 치아바타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었습니다.
올해 벌써 초등6학년이 되는 둘째 딸이 수련회에 참석해야 하는 날이었습니다. 멀리 가야 해서 부모가 태워줘야 했습니다. 오후에 가면 되는 줄 알고 직장에 반차를 내고 기분 좋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아침 7:30까지 가야 한다는 말에 급하게 반차를 연차로 바꿔달라고 회사에 부탁드려서 변경했습니다.
혼자서 새벽에 대중교통을 타고 1시간 이상 갈 수밖에 없다는 말에 초등 6학년 둘째 딸은 무서워하며 걱정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아빠가 연차로 바꿔서 태워줄 수 있다는 말에 불안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날아갔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을 못 먹고 갈까 봐 냉동 바질치즈 치아바타를 레인지에 돌려서 같이 먹기로 했습니다. 둘째 딸은 아침을 잘 안 먹는데 그날따라 맛있게 먹는 것이었습니다. 맛이 있다 없다를 떠나서 포크로 푹 찍어서 맛있게 먹었고요. 그러다 보니 대화도 할 수 있었습니다.
"수련회 가면 눈썰매장 가고 그러니까 많이 먹어!"
"아잉... 별로인데."
"더 먹어봐.. 배 좀 채우고 가는 게 좋아!"
"알.. 겠.. 어... 요."
"근데 정말 다행 아니냐? 아빠 회사에서 연차로 바꿔줘서.."
"맞아! 걱정했는데.. 아빠. 고마워요. 아침 일찍인데..
데려다줘서요. 아빠 하루를 그렇게 사용해 줘서요."
"괜찮아! 하나도 안 힘들어! 왜 그럴까?"
"왜요? "
나는 너 아빠니까!
그렇게 말하니까 둘째 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제 눈을 2초 정도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저 또한 그 말을 하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둘째 딸의 눈을 보고 있는데 제 마음은 뭉클하며 감동했습니다.
행복하다
진짜 행복했습니다. 마음이 벅차오르듯 뿌듯했습니다. 둘째 딸의 아빠라서 행복했고 새벽에 데려다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먹는 치아바타 빵의 부드러움과 그 안에서 살짝 녹아서 길게 늘어지는 치즈들도 일품이었습니다. 새벽에 먹는데 하나도 느끼하지 않았습니다. 둘째딸은 새벽에 일어나서 먹으면 입이 텁텁하다며 먹는 것을 거부하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둘째 딸은 큰 치아바타빵을 반이상 먹었고요. 저는 조금 먹었지만 그 어떤 것보다 맛있었습니다.
둘째 딸은 아빠랑 둘이서만 새벽에 나간다고 흐뭇해했습니다.
둘이서 새벽에 나갈 일은 거의 없습니다. 있다면 차 안 막히는 새벽에 어딘가를 가기 위해서 온 가족이 나가거나 삼 남매가 배우러 가는 곳이 멀어서 새벽에 함께 나가는 날들이 전부였습니다. 둘째 딸은 아빠랑 둘만 새벽에 나왔지만 차에 타면 졸릴 거라서 자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던 둘째 딸은 기분이 좋았는지 잠을 자는 대신 새로 사귄 친구, 현재 마음상태, 새 학기 얘기, 왕따 당해서 힘든 상황, 자기 관심사들을 쉴 새 없이 "아빠!"하고 부르면서 말해줬습니다. 듣는 내내 둘째 딸이 초등 6학년인데 아빠에게 해줄 말이 많고 아빠와 둘이 있는 것을 행복해하는 것을 보면서 제 마음은 세상을 전부 가진 것처럼 행복했습니다.
제가 먹은 치아바타빵 중에 정말 최고였습니다.
하나를 데워서 둘이서 나눠먹었는데 엄청 맛있었고요. 빵이 엄청 보들거리고 따뜻했습니다. 추운 새벽에 나가야 해서 걱정했는데 하나도 춥지 않았습니다. 원래 큰아들이 좋아하는 치아바타빵이었는데 우리 둘은 그날부터 바질치즈가 들어간 치아바타빵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놀랬습니다.
원래 둘째 딸은 치아바타빵을 먹지 않습니다. 일어나자마자 아침을 먹이면 어떤 음식이던지 츄파춥스 1개 정도만 먹고 더 이상 먹지 않습니다. 그런 딸이 치아바타빵을 반 개나 먹고 아빠랑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는 것에 엄청 놀랬습니다. 혼내서 먹인 거 아니였 고요. 딸과 둘이서 먹고 대화한 내용을 듣고 아내가 놀랬습니다. 알콩달콩 얘기들이라서요.
그날 새벽에 먹은 치아바타빵과 바질치즈의 조화 덕분인지 둘째 딸과 대화가 엄청 훈훈했습니다. 부족한 아빠가 호사를 누리는 것 같았고요. 제 입으로 "나는 너 아빠니까!" "하나도 안 힘들어!"라고 부드럽고 멋있게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둘째 딸과 먹은 치아바타빵의 촉촉하고 부드러움도 나눠보았습니다. 훈훈한 말을 하면서 둘째 딸이 눈으로 말한 "아빠. 고마워요."라는 말 때문에 뭉클했던 제 마음도 나눠보았습니다. 이런 일상 속의 감사와 행복함을 나눌 수 있는 용기는 늘 제 글을 읽어주시는 작가님들 덕분입니다.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 unsplash의 brooke la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