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와 밥
아이들이 어렸을때는 사실 먹는 것을 권할 수는 없었습니다. 함부로 먹다가 알러지가 났던 큰아들을 생각하면 쉽게 감행할 수 없는 일입니다. 조금씩 커가면서 그제서야 편의점에서 출시한 기획상품들을 같이 먹으면서 깔깔거리고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막내까지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제가 그 나이에 먹었던 음식이나 먹어도 될만한 음식을 소개하면서 점점 재밌는 시간이 되어 갑니다.
그럴때마다 감격스러운 것은 제가 아이들 나이일때 먹고 즐겼던 간식들이 아직도 'since 19xx'라면서 여전히 사서 먹을 수 있는 것도 신기하고요. 제가 먹고 재밌어했던 음식들을 아이들이 먹어보더니 너무 좋아하는 것도 흐뭇합니다.
그중에 제가 제일 재밌게 느끼는 것은,
스프와 밥
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스프를 끓여서 밥을 말아먹는 것입니다. 또는, 끓는 물을 넣으면 바로 스프가 되는 것에 밥을 말아 먹는 것입니다. 빈 속에 술자리 시작할때 된장찌개 뚝배기에 밥 한공기 넣어서 자글자글 끓여서 떠먹으면서 소주를 마시는 것과 비슷합니다. 끓인 스프에 밥을 넣고 말아먹으면 리조또처럼 부드러워서 먹기에 좋습니다. 술 먹고 다음날 다른 해장음식보다 편안해서 한동안 즐겼습니다. 혼자 자취하면서 직장생활할때 이른 아침 저의 공복을 달래주는 초스피드 아침식사였습니다.
이 음식을 아이들이 재밌어할까봐 제안해봤는데 아이들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
"재밌어요. 아빠!"
"이렇게도 먹을 수 있네요. 오우!"
"엄청 부드럽네요. 아빠. 재밌네!"
그렇게 말하더니 다음부터는 짜파게티 다음으로 좋아하는 음식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재밌는 것은 아이들이 급식으로 스프가 나오면 밥을 말아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친구들이 "뭐하는거야?"라면서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보곤해서 당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내가 하고 싶으면 하는거지모. 남한테 피해주는 것도 아닌데.."라면서 "즐기라~"라고 말해주기도 합니다.
가끔 제대로 준비안된 여행에 한끼는 스프밥입니다. 때로는 “뭐 먹지?”라고 던지면 아이들이 먼저 제안하기도 합니다.
"스프밥? 아빠?"
그렇게 아이들이 먼저 제안하면 저는 무조건 "오케이"입니다. 그저 '감사'하면서 함께 합니다. 아이들과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위해 우선순위를 두다보면 돈을 많이 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이거 아빠랑 했는데.." "이거 아빠가 알려준 건데.."라면서 재밌어하고 함께 하고 싶어할때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자기 자녀들과 분명히 '아빠랑 먹었던건데 내가 얘네들이랑 스프밥을 먹네!!하하하'할 날도 올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아이들과 '스프와 밥' 정확히는 '스프밥'으로 소통하면서 함께 지내고 있어서 행복합니다.
아빠와 놀아본 기억이 없어서 우리 애랑 노는게 난감해요.
후배, 동생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어릴때 저는 아빠가 저와 축구, 야구하고 같이 먹고 놀고 그랬던 것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공 찰까? 먹을까? 놀까? 만들어볼까?"가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기는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빠가 저에게 물려준 선물박스같습니다. 그 박스를 지금 제가 열어서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것같아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저에게 맞춰주는 것에 감동하고 삽니다.
스프에 밥 말아먹는 것이 김치찌개, 스파게티, 볶음밥처럼 익숙하고 자연스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아빠가 즐기는 음식이라고 같이 먹으려고 노력하는 삼남매에 늘 감동합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아이들이 몸집만 작을 뿐이지 저보다 훨씬 때 묻지 않고 마음도 넓은 좋은 사람들입니다.
스프밥을 생각하면 아내에게 큰 감사하게 됩니다.
"왜 그렇게 먹어! 하지마!"라면서 못 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거부감가지면서 강하게 '반대'했다면 즐기지 못했을 재미입니다. 아내는 그렇게 아이들과 놀때마다 '묵묵히 바라봐 줬습니다.' 그런 아내 덕분에 아이들도 신기한 아빠의 도전을 거부하기보다는 '함께 해 볼까요?"라며 늘 용기내고 색다른 재미를 얻곤 합니다.
스프밥으로 삼남매와 여전히 소통하고 있어서 감사하고요. 그런 소소한 재미를 나눌 수 있는 이 시간이 감사합니다. 이럴 수 있는 것은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덕분입니다.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없이 연 날리는 남자Dd)
출처:사진: Unsplash의Julia Kico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