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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프로젝트 2 #28

깨알 감사 초심

길이 있다는 것은 걸을 수 있다는 것이고,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도 건강하며 일상을 즐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시간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재밌는 것은 똑같은 길을 걸어도 사계절 따라 한 번도 똑같은 것을 경험하지 못하도록 자연의 순리에 따라 변화하며 그 길에서 늘 새로운 깨알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때로는 키보다 큰 깨알이기도 하고 어쩔 때는 정말로 깨보다도 작은 깨알이면서 이미 누군가의 발에 밟혔을 수도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주는 재미가 쏠쏠해서 아직도 걸으면서 호주머니에 들어있는 휴대폰 카메라는 '찰칵찰칵'하면서 쉴틈이 없습니다. 그렇게 즐긴 재미를 오늘도 나눠보겠습니다.



#1. 길 위의 깨알들..


1. 배수구 뚜껑의 존재이유..

계단을 올라가다가 배수구 커버를 보고 드는 생각에 허리를 굽혀 찍었습니다.



계단을 시작할 때는 눈높이에서 보이더니 계단을 거의 다 올라가니까 발밑에 위치해서 더 이상 상상력이 동원되지 않긴 했습니다. 저 커버가 없다면 배수가 되는 것 외에 아무나 드나들어서 여차하면 막히겠지? 저 커버처럼 필요할 때만 배출되는 것처럼 나의 입에도 제대로 된 커버가 있어서 필요할 때만 말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한 시간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배수구 커버는 계단을 시작할 즈음에는 저를 쳐다보는 것 같기도 해서 웃었습니다. 마치 뱀이 계단 구석에 누워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쳐다보는 느낌이라면서 웃다가 지나갔습니다.



2. 길에 버려진 떡..

아이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수를 사기 위해 '무인가게'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길에 버려진 의자 엉덩이쿠션을 보면서 저는 혼자 키득거리고 웃기도 하고요. 아까워하기도 했습니다. 길에 버려진 것은 엉덩이쿠션인데 도톰하고 기름칠한 듯 반들거리는 것이 상상하게 만들었습니다.


'쑥떡'


아이고, 먹으면 얼마나 쫀득거리면서 맛있을까?라고 상상하게 만들 만큼 쑥떡처럼 생겨서 혼자서 웃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아이들은 의아해했지만 알려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너무 이상하게 느껴질까 봐서요. 어릴 때 먹던 다양한 떡이 생각나는 시간이었습니다.



3. 누구나 탈 수 있다..

거치대에 주차된 자전거에 시선이 끌려서 사진을 찍고는 아쉬워했습니다.



누구나 손쉽게 자전거를 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단, 스피드를 즐길 수 없고 맨날 자동차들의 매연이나 어른들 방귀를 코높이에서 맡아야 하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요. 저 자전거를 가지고 있었다면 아이들이 두 발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가르치느라 혹독하게 훈련시키지 않았을 거라는 상상도 해봤습니다.



한편으로는 '도쿄 시부야 마리오카트'가 생각났습니다. 카트 투어를 알고 나서는 도심에서 차들 사이에서 아이들과 함께 타면서 질주해보고 싶습니다. 아직 해보지 못해서 늘 생각나는 것 같고요. 마찬가지로 도심 속 자동차의 매연을 엄청 맡아야 한다는 후기를 보면서 '목이 매캐하더라도 아이들과 타보고 싶다!'만 생각합니다.



4. 풀 중의 풀..

나무와 그 곁의 다양한 화분들 사이에서 '돋보이는 핑키 화분'이 눈에 들어와서 얼른 찍었습니다.



돋보이는 것들을 보고 느끼는 것은 늘 한결같습니다. '저렇게 돋보이니까 눈에 안 들어올 수가 없지!'

그런 감상과 함께 시선을 끄는 그 자태에 다시 한번 눈을 두고 있다가 '나도 저랬네. 늘 언변으로 나를 돋보이기보다는 외모, 차림새, 매너로 은근히 돋보이고 싶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부질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것들로 돋보이는 것보다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진심의 말, 공감에서 나오는 위로, 삼 남매의 행동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돋보이는 것이 진정한 '돋보임'이라고요. 그렇지만 그것도 그리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돋보이는 것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자체가 중요하다고 느끼니까요.



#2. 마음에 감사 더하기..


1. 속 빈 프레임..

가족이 함께 나들이 겸 드라이브를 다녀온 날이었습니다. 비가 오고 화장실도 급하고 날씨 탓인지 따뜻한 커피가 생각나서 들어온 카페였습니다.



급한 화장실용무를 처리하기 위해서 비를 맞으며 들어가려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있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남녀 화장실 구분을 알리는 사인이 속이 투명한 스틸 프레임이었습니다. 디자인이 심플하면서도 본연의 목적에 충실해서 좋았던 것도 있지만 제게는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볼일을 보는 내내 떠오른 생각은 이랬습니다.


'내가 늘 아내와 또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불협화음이나 뭔가 안 맞는 느낌이 들 때마다 의문을 가진 이유를 알았다. 내게는 가끔 솔직함이 빠진 상태로 인간관계를 하고 있었다.'였습니다. 그런 깨달음을 얻고 나서는 늘 '솔직함'이 겸비된 말과 행동을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런 터닝포인트를 가지게 된 것도 아내가 늘 제게 '당신은 솔직하지 못해요. 늘 뭔가를 숨기는 것 같고요. 솔직하게 말하지 않아요. 눈에 뻔히 보이는대도요.'라는 말 덕분입니다. 늘 함께 사는 아내 말에 더 귀를 기울이려고 합니다. 아내만큼 저의 속을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아내의 말을 더 경청하는 것이 매일의 행복과 가정의 안녕을 유지하는 비결이 될 것 같습니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면서 머리 위의 사인을 한번 더 보았고요. 볼일이 해결되어 느끼는 편안함보다는 깨달았던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하면서 제 마음에는 '더 큰 감사'가 느껴졌습니다.





흔히들 돼지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모든 부위를 버리는 것 없이 사용하고 먹으니까요. 제가 걸으면서 만나는 길거리의 깨알들이 그렇습니다. 어떤 깨알들은 재밌고요. 어떤 것은 감동이나 깨달음을 주면서 제가 살고 있는 일상 속에서 저를 더 어른답고 인간답게 해주는 것 같아서 '길에서 만난 깨알들도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라고 말해보고 싶습니다.



늘 돋보이려고만 했던 시간을 또 돌아봤습니다.

대학생활하면서 리포트 파일을 낼 때마다 그 어떤 사람보다 예쁘게 꾸미고 독특한 글씨체로 프린트하고 패션일러스트를 그려도 항상 튀는 디자인, 색깔로 해내려고 애를 쓰느라 밤을 새워서 제출했었습니다.

사회생활하면서도 늘 돋보이려다 보니 물건이나 옷을 사도 늘 튀는 색깔, 튀면서 독특한 디자인을 찾았고요. 보통의 남들은 모르는 직업분야, 안 하려는 분야에 도전하겠다고 시간과 돈을 허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삶의 여정을 지나오면서 되는 것은 제대로 없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같이 사는 아내는 늘 몸과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그 여정동안 참아주느라고요. 그렇게 온전히 내 힘으로 뭔가를 하려고만 했던 시간이 후회도 됩니다. 조금 덜 돋보이고 덜 인정받더라도 함께 어우러져 사는 삶을 추구하기로 했습니다.



솔직함.. 그 가치에 대해서 알게 되다.

솔직하지 못하다는 것은 늘 뭔가를 숨기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저의 핸디캡을 숨기고 저의 속마음을 숨기고요. 저의 부끄러움을 들키고 싶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종종 거짓말도 하고요. 뭔가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말하지도 않고요. 그런 삶을 살다 보니 아내는 늘 반쪽이와 사는 것 같고 남편과 제대로 된 소통도 되지 않는다고 힘들어했습니다. 아내가 제게 늘 해주는 말이 "내 눈에는 보이는데 당신만 모르는 건지, 모르는척하는 건지 언제까지 그럴는지요."라면서 콕 집어서 말한 날들도 있었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놀랐지요. 솔직함을 겸비하고 살려고 노력하기 시작하니까 아내가 "이제 조금 낫네요. 후련하네요. 제발 다른 사람의 말 좀 듣고 살아요."라면서 한번 더 훈수를 뒀습니다. 그 말도 섬겨봐야죠.



이렇게 길에서 본 깨알들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작은 생각들을 가볍게 나누는 토요일이 늘 즐겁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깨알 프로젝트가 1탄, 2탄으로 이어지다 보니 POD출판이 가능하다는 브런치 알림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제 마음으로는 웃었습니다. '아이고! 글도 아닌 것, 대단한 것도 아닌 것을 누가 찾아서 본단 말인가!' 이렇게 나누는 자체만으로 그저 감사이다라면서 웃었습니다.



항상 함께 행복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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