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수많은 시작이 있었다. 시작이 있었으므로 당연히 성공도, 실패도 있었다. 나는 성공과 실패를 논하기에 앞서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시작'을 했다는 점에 나 자신에게 스스로 후한 점수를 주곤 한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도전 그 자체는 내게 새로운 경험과 시각을 안겨주었다. 이번 시작 이야기는 '아프리카에 도서관 선물하기'가 되시겠다.
때는 2016년 8월경, 나는 아프리카의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말라위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말라위는 심심한 나라였다. 말라위의 수도인 릴롱궤에선 노래방도, 피시방도, 영화관도 존재하지 않았다. 흔해 빠진 맥도널드도 없었고 우리가 아는 유명 체인점이란 Kfc가 유일했다. 이 심심한 나라에서 나는 자주 멍 때렸다. 그날도 나는 하나밖에 없는 Kfc에서 치킨을 먹고 밖에 앉아 평화로운 구름을 보며 멍을 때리고 있었다. 내 앞에는 평소 자주 보이던 Homeless 아이들이 빈 물통들을 들고 돌아다녔다. 나는 그중 한 아이에게 와보라고 했고, 그 빈 물통들로 뭘 할 거냐고 물었다. 아이는 하나의 물통을 팔면 100원을 벌 수 있다고 했다. 자기에게 3개가 있으니 300원을 번다고 했다. 나는 그 돈으로 뭘 하고 싶냐고 물었고, 그 아이는 오늘 먹을 시마(옥수수를 가루로 내어 만든 주식)를 사 먹는다고 했다. 아이는 오후 4시가 된 시점까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Kfc를 가리키며 너 저기 가본 적 있어?라고 물었다. 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나는 주변에 있던 아이 두 명을 데리고 Kfc 안으로 들어갔다.
Kfc 안에는 아이들의 또래가 많았다. 각자의 부모님과 함께 닭다리를 뜯고 있었다. 외국인이 Homeless인 아이들과 함께 앉아있으니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향했다. 치킨이 나왔고 아이들은 치킨을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다. 진짜 먹어도 되냐는 듯이. 나는 얼른 먹으라고 했고 아이들은 꼬질꼬질한 손으로 먹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이름은 조셉과 지악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매주 토요일이 되면 아이들을 불러 Kfc를 갔다. 아이들은 2명에서 5명으로, 5명에서 10명으로 늘어났다. 때로 더 많은 아이들이 몰려오기도 했지만 나이가 많은 아이들은 치킨파티에서 제외시켰다. 이 아이들은 영어를 할 줄 몰랐다. 그래서 나는 치킨을 먹인 후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소문이 퍼져 다른 한국 NGO 단원들도 조금씩 도와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 '우리가 떠나고 난 다음' 이 없었다. 나는 이 아이들이 기숙학교에 가길 원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말라위의 수도 릴롱궤에서 2~3시간 떨어진 곳에 기숙학교가 있었다. 총 세 곳을 돌아다녔고 교장선생님들을 만나 이 아이들의 입학 가능 여부를 물었다. 두 곳은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요구했다. 나머지 한 곳은 영국 선교사가 세운 학교로, 후원금을 받으며 운영되는 학교였다. 나는 내가 떠난 뒤에도 이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지 물었다. 교장선생님은 마을과 학교를 위해 도서관이 필요하다고 했다. 도서관을 설립해주면 성인이 될 때까지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지겠다고 했다. 나는 망설여졌다. 도서관 설립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생각해본 후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을 해봤지만 아무런 결정을 할 수 없었다. 건축이라는 단어는 내게 케페이드 변광성의 변광주기와도 같은 외계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럴만한 돈이 없었다. 나는 남미 볼리비아에서 학교를 짓고 운영하고 있던 형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형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우선 해. 한다고 하고 후원 모집해. 모집 못하면 나라도 도와줄 테니까 글 써서 올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렇게 해요? 아무것도 모르는데."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지금까지 네가 해 온 활동들이 있잖아. 조금 더 나아가는 것뿐이야."
나는 용기를 얻었지만 망설여지긴 매한가지였다. 내가 뭐라고 도서관을 건축해? 돈이 모이기나 할까? 괜히 후원 모집을 했다가 아무 일도 안 일어나면 어떡하지? 힘들게 번 남의 돈을 후원이라는 이름으로 받는다는 게 뭔가 죄스러웠다. 그래서 더 두렵고 떨리기도 했으리라. 3일 밤낮을 고민한 후 조심스레 글을 써서 올렸다. 똥줄 타는 마음을 잡고 있기 싫어 저녁에 올리고 잠들어버렸다. 다음 날 새벽 아침 일찍부터 눈이 떠지고 가슴은 쿵쾅대기 시작했다. 몇 명이나 후원금을 보내줬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계좌를 확인했다. 첫날, 65만 원이 들어와 있었다. 건축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총 400만 원이었다. 부족했지만 이 정도면 시작은 할 수 있었다.
다음날부터 무척이나 바빠졌다. 교장선생님을 만나고 계약서를 작성했다. 2시간 걸리는 학교를 매일 갔고, 필요한 건축 자재들과 관리감독, 인부들을 고용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람을 고용하고 관리하는 것이었다. 감사히 받은 돈을 쓸데없는 곳에 나가지 않게 하려면 사람을 잘 만나야 했고, 내가 이 분야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야 했다. 밤낮 시간이 나는 대로 공부하고 현장으로 갔다. 잘 모르는 풋내기가 와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일하시는 분들에겐 조금 불편할 수 있었겠지만 감사하게도 좋은 분들을 만나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후원자분들이 보실 수 있게 공사 진행 사항을 계속 업로드했다. 감사하게도 후원금은 9일 만에 582만 원이 채워졌다. 당초 필요했던 400만 원 보다 무려 182만 원이 더 채워졌고, 초과된 비용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몇몇 후원자 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 돈은 도서관에 채워 넣을 책들과, 축구 골대, 축구공, 축구 유니폼 등을 학교에 선물하기로 했다. 도서관을 설립하는 약 한 달 동안 왕복 4시간의 거리를 일주일에 세 번, 네 번씩 왔다 갔다 하는 건 정말 힘들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아프리카에서의 편도 2시간은 한국에서의 2시간과 다르다는 점이다. 우선 나는 차가 없었기에 말라위 국민 버스(봉고차)를 타야만 했는데, 이 버스는 정원 12명이 꽉 차지 않으면 도무지 출발을 하지 않는 버스다. 30도가 넘는 뜨거운 봉고차 안에서 인원이 다 차길 기다리려면 적어도 1~2시간 기다리는 건 기본이었고, 가끔은 12명 정원인 이 봉고차에 20명까지 탄 적이 있었다.(....) 어쩔 때는 어떤 남자가 갑자기 내 무릎 위에 떡하니 앉는 경우도 있었다(할말하않). 설상가상으로 도서관이 완공되기 전 주에는 말라리아에 걸려 정말 죽을 뻔하기도 했다.
아무튼 그러다 보니 학교에 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힘이 들었고, 말라리아 덕분에 생사를 오가기도 했지만 결국 도서관은 완공되었다. 도서관을 설립하는 날 마을 사람들 모두가 나와 축제를 열었다. 축구 골대와 축구공, 유니폼을 받는 학교와 마을 아이들은 무척이나 기뻐했고 후원자분들과 내가 학교에 보낸 조셉과, 루카스, 파이손, 렉손 4명은 기숙사에 필요한 매트리스, 이불, 세면도구, 옷, 신발 등을 가지고 학교에 들어갔다.
두려움에 빠져 있었다면 결코 하지 못했을 일을 우선 '시작' 하고 보니 일이 이뤄졌다. 그 일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인내와 고통, 혼란은 본인이 온전히 감내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걸 감내하고 났을 때 나 자신은 한층 더 성장한다. 그 성취에서 오는 기쁨과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누군가는 여전히 말한다. 네가 그걸 한다고? 네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누군가가 아니라면 자신이 자신에게 말하고 있을 수도 있다. 나 따위가 그걸 한다고? 내가 감히 도전한다고?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너무나도 많은 세상의 기준을 생각한다.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무엇도 시작할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묶어놓을 때가 많다. 하지만 기준이 정해져 있다고 해서 그 기준이 항상 맞다는 법은 없다. 세상의 기준은 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길일뿐 밖으로 눈을 조금만 돌려보면 수많은 다양한 길과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내는 방법이 있다. 그 여정을 만들어내는 첫 번째 행동은 바로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시작' 하고, '도전' 하는 것. 도전하면 결과는 항상 있고, 그 결과는 성공 아니면 실패다. 그러나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실패에서 나오는 경험은 우리가 다음 스텝을 밟는데 충분한 자양분이 되어준다. 우리는 그 자양분으로 살아가게 된다. 자양분이 쌓이고 쌓여 더 큰 도전을, 더 큰 성취를 이뤄낼 수 있다. 지나가다 본 SNS의 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가슴 뚫릴 만큼 넓은 세상을 등지고 앉아 왜 손바닥만 한 네모 안의 작은 세상을 보는 거야?"
나도, 이 글을 읽는 그대도, 우리 다 같이 가슴 뚫릴 만큼 넓은 세상을 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