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다 그렇지 뭐
암스테르담에 도착하니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네덜란드에 온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 목록을 나열하자면 이렇다.
1. 네덜란드 치대, Academic Centre for Dentistry Amsterdam(ACDA) 방문.
2. 마리화나가 어떻게 합법적으로 이뤄지고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
3. 홀로코스트 피해자 중 한 명인 안네 프랑크의 집 방문.
이제 교육부나 보건복지부를 방문하거나 학교와 병원으로 가서 치과의사, 치대생, 관련 공무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전 많은 나라에서 거절을 당했고, 나 같은 특별 케이스를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공무원 및 교수들에게 오히려 "이런 케이스도 있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이것이 될 것이고, 당신들이 나를 받아들인다면 이 기관과 이야기를 해야 할 수도 있다.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이곳저곳에 연락해서 알아봐 주길 부탁한다, 제발."이라는 의견을 제시할 만큼 대화가 잘 통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런 특별 케이스가 많지 않으니 대부분 당황하기 일수였으나 내가 경험한 것을 토대로 이야기할 때면 내 간절함을 보고 성심성의껏 알아봐 주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네덜란드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벨기에에서도 자격증을 딸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다만 그 나라의 언어를 일정 수준까지 해야 하고 시험을 봐서 통과해야 한다. 영어로는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이 있고, 한국어는 TOPIK(Test of Proficiency in Korean)이 있다. 이곳 또한 더치어 시험이 있었고(벨기에는 불어) 레벨 A(베이직), 레벨 B(독립적), 레벨 C(전문가)중 레벨 B2의 Upper Intermediate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인턴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 내가 이수한 학점에 따라 인턴을 1년만 할지, 2년만 할지 정해지는데, 나는 6년제 치대를 다녔고 유럽은 대부분 5년제이기 때문에 1년만 하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몰타는 영어를 쓰기 때문에 언어 시험이 따로 존재하지는 않았고 그래서 자격증을 따기가 훨씬 수월했다. 나는 지긋지긋한 이 자격증 문제를 빨리 떨쳐내버리고 싶었다. 어쨌거나 이곳은 루마니아나 리투아니아처럼 완전 막혀있는 곳은 아니었기에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막막하기만 했던 어떤 일이 하나하나 도전을 하는 과정에서 더디지만 일이 진행되고 정보를 얻는 것을 볼 때 지금 하는 이 경험들이 참 값지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어서 마리화나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숙소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함께 움직였다.
한국인에게 마리화나, 즉 대마초는 코카인이나 헤로인과도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연예인이 대마를 한번 하면 큰 이슈가 되기 일수고, 대마가 마치 헤로인의 주삿바늘을 꽂아 넣는 것 마냥 크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사실 대마 자체는 그렇게까지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대마보다 담배나 알코올의 성분이 더 나쁘다고 하기도 하고). 뭐든지 과하면 문제가 되는 것인데, 대마가 위험한 이유는 환각에 한번 취한 경험을 가지게 되면 더 큰 환각, 더 큰 쾌락을 찾을 위험이 크고 따라서 헤로인과 코카인 류의 마약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여행을 다니며 만나는 여행자들은 실제로 대마를 많이 한다. 대부분 이들은 이것에서 끝내긴 하지만 간혹 더 큰 환각을 느끼고 싶다고 하는 이들도 존재한다(이런 생각부터가 위험신호다). 한국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마약 관련 사건을 다루는 변호사가 대마에 대해 나눈 영상이 있다. 그들 또한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 부분적인 합법화를 진행해야 한다고 하는데, 나 또한 그 의견에 동의한다. 무조건적인 반대는 건강하지도 않을 뿐더러 납득하기 힘들 때가 많이 있다.
나는 합법화가 되건 안되건 상관없지만, 사람들이 어떤 이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오직 자신이 만들어 놓은 고정관념의 틀 안에서만 생각하고, 주장하고, 남의 의견을 무시한 채 "아몰랑, 아님 말고" 하는 식의 태도가 우리 사회의 더 나은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가 '왜' 그러한지, 누군가가 '왜' 그러했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없는 채로 '대마 = 마약 = 코카인, 헤로인 = 죽일 놈, 쓰레기, 사회악'으로 생각하는 구조는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하고 재단하기 쉽다. 대마라는 이슈에 대해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의 편협한 생각 구조는 언제 어디서고 문제를 만들어 낸다. 누군가의 상처를, 누군가의 죽음을, 누군가의 잘못을 깃털보다 가벼운 얄팍한 생각으로 판단하다 보니 말로써 누군가를 죽이기도 한다. '누가누가 그랬대, 이랬대, 이러쿵저러쿵' 남들 인생에 대해 가십을 일삼는 짓, 제일 쓸데없는 짓이다. 내가 만난 많은 친구들은 이러한 가십거리를 경멸했고,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내가 그런 성향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만 곁에 남은 것일 수도 있는데, 보통 이들과 제삼자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면 'David, who cares? Just do what you wanna do!"라는 말을 많이 듣곤 했다. 나도 이런 성향의 친구들과 같이 지내면서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어졌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 아니라면 남들의 사생활에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아무튼 다시 대마초로 돌아와서, 네덜란드에서는 쿠키라는 이름으로 대마를 팔곤 했는데 일반 카페나 가게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당시 나 또한 '대마 = 마약 = 코카인, 헤로인 = 절대악'이라는 멍청한 공식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일본에서 온 여행자 친구가 대마를 꼭 해보고 싶다며 같이 가자고 했을 때에도, 나는 절대로,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못 박은 상태였다. 나도 궁금증이 일긴 했었지만 대마를 하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팔뚝 곳곳에 주삿바늘이 있고 침 질질 흘리며 눈알이 뒤집혀 더, 더, 더를 외치는 장면이 연출될 것만 같아 강하게 부정했다. 친구는 혼자 가기에는 무섭다고 나에게 같이 가달라고 사정했다(지금 생각하면 별 것도 아닌 일인데). 우리는 결국 카페에 가서 10유로를 지불하고 짙은 녹색의 대마가루를 샀다. 친구와 나는 신기해하며 한참을 들여다봤다. 친구는 담배 종이를 사서 대마를 말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페에서(네덜란드에선 카페에서 대마 흡연 가능) 담배를 피우듯 대마를 피기 시작했다. 친구는 "별 느낌 없는데? 이거 뭐 아무것도 아니네!" 라며 뻑뻑 피워댔고, 나는 난생처음으로 마약을 하는 인간을 내 앞에 마주하고 있는 이 현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멀쩡히 이야기하던 친구가 테이블 앞으로 퍽 쓰러졌다.
"헤이, 헤이! 왜 그래?"
"아... 몰라.. 너무 어지러워... 뭐지....."
"정신 차려! 야! 왜 그래!"
나는 진심으로 이 친구가 죽는 줄만 알았다. 갑자기 대마를 피워대다가 이렇게 퍽 쓰러질 수가 있나. 친구는 머리가 팽팽 돈다고 했다. 세상도 빙빙 돌고, 시간도 천천히 흐른다고 했다. 어느 때는 정신이 또렷해지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면 주위에서 공룡들이 쿵쿵!! 하고 뛰어논다고 했다. 공룡들이 뛴다고 말하는 친구의 표정에 따라 내 심장도 쿵쿵 뛰기 시작했다. 앉아있는 의자와 책상이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그것들처럼 살아 움직이고, 카페에 걸려있는 초상화의 여자가 튀어나와 자신에게 말을 건다고 했다. 주변을 계속 뛰어다니던 공룡들이 자신을 죽일까 봐 움츠러든다고 했다(미친놈인 줄 알았다). 이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물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다시 주저앉아 책상 위에 엎드렸고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신기했다. 이 친구가 하는 헛소리는 말 그대로 헛소리였다! 뻗은 팔 옆에는 피다 남은 대마가루가 남아있었다. 궁금증에 못 이겨 나까지 이 가루에 손을 댔다간 우리 둘 다 환각의 공룡에게 짓밟혀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친구는 쿨쿨 잘도 잤다. 나는 친구가 깨어날 때까지 안네 프랭크의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친구는 3시간이나 지난 후에 잠에서 깼다. 여전히 머리가 어지럽고, 토할 것 같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미국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낄낄대며 설명을 해준다. 대마를 처음 하는 상황에서 뭣도 모르고 무작정 피워댔기에 이런 현상이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건강에 이상이 있거나 한 건 아니니 너무 걱정 말라고 했다. 일본인 친구는 계속 머리가 아프다며 징징댔고, 대마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대마 = 아주 엄청 대박 위험한 마약)은 더욱 굳건해졌다. 그렇다. 위에서 말한 편협한 사고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나 자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