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다 그렇지 뭐
네덜란드에서 2주간 여행을 한 후 프랑스로 넘어왔다. 여행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할 때면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가 나오곤 했는데, 다녀온 이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말하길 너-무 좋은 곳이기 때문에 꼭! 가볼 것을 추천한다고 했다. 시간도 넉넉히 있었고 해서 순례길을 걷기 전 파리에 잠시 머물기로 했다.
파리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가방을 열어보던 중 구렁이를 본 것 마냥 깜짝 놀랐는데, 내 가방에 대마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이게 왜 내 가방에 들어있는 거야..? 하고 잘 생각해보니 그 날, 일본인 친구가 뻗고 남은 대마를 '숙소에 들어가서 줘야지' 하고 챙겨 놓았다가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걸 그대로 가지고 네덜란드에서 프랑스로 넘어왔단 말이야....? 순간 내 머릿속에는 대마를 밀반입하려다 인천공항에서 걸린 전 국회의원 자식들의 모습이라던가, 연예인들의 대마 사건을 대서특필 하는 기삿거리 따위들이 생각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닌 일이긴 한데, 당시에는 어찌나 새가슴이었던지. 나는 얼른 이 흉물을 버려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은 채 숙소 라운지에 맥주를(읭?) 마시러 갔다. 라운지에 내려가 한잔 하고 있는데 미국인 커플이 내 앞에 앉아도 되겠냐며 묻는다. 그럼 물론이지! 나는 이런 즉석 모임을 좋아한다. 우리는 곧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왜 파리까지 오게 됐는지, 뭘 하던 사람들이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번뜩 대마 생각이 났다. 나는 조심스레 이들에게 물었다.
헤이, 엄 저기.. 음... 있잖아. 뭐 하나 물어봐도 돼?
응 뭔데?
내가 실수로 네덜란드에서 대마초를 가지고 왔거든. 나는 대마를 안 해서 너네 혹시 이거 필요하면 줄까?
WHAT?!?!??! A MARIJUANA?! OH MY GOD, PLEASE! THANK YOU BRO!!
응? 뭐야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거야....? 대마에 진짜 꿀이라도 들어갔나? 그 저녁에 바로 나는 나머지 대마가루를 이들에게 주었다. 그들의 기뻐하는 눈빛이 아직도 뇌리에 선하다. 대체 이게 뭐라고. ㅎ
파리는 두 번째 방문이라 처음 왔었을 때처럼 신기해서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닐 일은 없었다. 한가로이 에펠탑 주변을 거닐며 튈르리 공원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걸 반복했다. 당시 전자책 기기가 필요해서 한국에서 소포를 부쳤었는데 뭐든지 항상 과하게 퍼주는 우리 오마니께서 소포 안에 마이쮸 120개입 3박스와 가나 초콜릿 24팩짜리 3개를 보내주셨다. 하............ 마이쮸 360개와 초콜릿 72개 이 많은걸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곧 순례자의 길을 걸으면 짐도 줄여야 하는데. 나는 그 날부터 가방에 마이쮸와 초콜릿을 한 움큼씩 집어넣고 밖으로 나갔다. 에펠탑 주변 광장에는 에펠탑 키체인을 파는 길거리 상인들이 많은데, 대부분 아프리카계 프랑스인이다. 처음 프랑스에 갔을 때는 우르르 몰려다니며 키체인을 파는 모습이 다소 무서워 보이기도 했는데 이 날 이후로 이들은 그저 우리 또래 친구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이들이란 걸 알았다. 가방에 엄청나게 많은 마이쮸와 가나 초콜릿을 하나씩 꺼내 키체인을 파는 친구들에게 주기 시작했다.
이거 한국에서 가져온 건데 먹어볼래?
???
우리 엄마가 꼬레아에서 짐을 너무 많이 보내줬어. 먹어봐.
와우. 정말? 고마워.
조금 옆에 떨어진 곳에서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며 먹더니 내게 다시 다가온다.
우리도 너한테 선물을 주기로 했어, 라며 에펠탑 키체인을 종류별로 하나씩 가져가란다. 나는 물물교환이냐며 웃었다. 그날 밤에 앉아서 마이쮸를 나눠주다 보니 내 손에 에펠탑 키체인이 한가득 생겨버렸다. 받기만 할 수는 없다며 마음을 나눠주는 그들에게 따듯함을 느꼈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도 몰랐지만 어느새 웃고 떠드며 하이파이브를 쳐대고 있었다. 나도 그들처럼 빠리의 다른 여행자들에게 다가가 키체인 5개에 1유로라고 웃으며 말했더니 신기하게도 사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날 밤 7유로를 벌었다. 그 7유로로 저렴한 와인 한 병을 사서 이들과 나눠 마셨다. 총총 박힌 별들이 빠리를 비춰주던 밤, 에펠탑 잔디에 누워 키체인을 파는 친구들과 함께 어우러졌던 그 밤이 생각난다. 웃음과 춤, 흥이 끊이지 않던 밤, 다들 잘 살고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