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다 그렇지 뭐
인생은 선택의 연속일까 뻘짓의 연속일까. 인생이 선택의 연속이든 뻘짓의 연속이든, 어쨌든 그 결과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 길을 가면 갈수록 내 첫 선택은 잘못된 단춧구멍에 끼워졌다는 생각이 짙어졌다. 첫 단춧구멍을 잘못 끼웠다면, 나머지 단춧구멍들에서도 불협화음이 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그 불협화음이 날 때, 첫 단춧구멍을 끼웠을 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 그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첫 단춧구멍을 잘못 끼운 나, 그 선택을 제안한 주변 사람, 그리고 당시 그렇게 흘러갔던 환경들을 탓해야 할까? 설령 첫 단춧구멍이 잘못 끼워졌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삐걱대는 불협화음을 최소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은 할 수 있다. 아니, 아예 불협화음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도록 새로운 길을 창조해낼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뻘짓이 필요하다. 나는 지금 잘못 끼웠다고 생각되는 첫 단추 위의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기 위해 뻘짓을 하며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다. 이 결과가 어떻게 끝날지 알 수는 없지만, 그 과정 안에서 배우고 깨닫고 겪는 모든 일들이 나를 더욱 단단하게 해 주고 성장시켜준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 과정은 때로 고통스럽고, 멍청하고, 미련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 과정을 통해 얻는 것은 어마무시하다는 걸 깨닫는 요즘이다.
남아공을 간다는 건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유럽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아프리카 땅으로 들어갈지, 다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가 시간이 지나고 다시 돌아올지 결정해야 했다. 친구들과 부모님, 멘토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결국 가보는 걸로 결정을 내렸는데 뜻밖의 소식이 들렸다. 한국 병원에서 일하던 멘토의 의사 지인이 에티오피아의 병원에 파견되어 진료를 보고 있다고 했다. 그분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눠보면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몰타 - 에티오피아 - 남아공이라. 그럼 그냥 이집트로 들어가서 육로로 내려가 버리자. 어차피 나중에 치과를 한다면 아프리카 봉사는 당연히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육로로 내려가며 아프리카의 나라들을 경험도 할 겸, 중간에 봉사활동이라도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계획은 계획일 뿐이었고, 모아 온 돈이 거의 다 떨어진 상황이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가, 캐나다에서부터 지금까지의 내 상황과 도전, 이집트에서부터 남아공까지의 종단 계획을 잘 정리해 쓰기 시작했다. 결국 돈이 없으니 도와달라는 내용이었고, 쓴 글을 어느 회사 대표 두 분께 보내드렸다. 며칠 동안 답장이 없었다. 낙담이 됐다. 그러면 그렇지, 결국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구나 생각이 들 때쯤 학부시절 내가 의지하곤 하던 간사님에게서 잘 지내냐고 연락이 왔다. 나는 이러이러한 상황을 겪고 있고, 대표분들께 이런 메일을 보냈는데 아직 답장이 없어서 한국에 가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라고 말을 했다. 그분은 그 메일 내용을 보여달라고 했다. 나는 내용을 보여주었고, 그분은 이 내용을 자기 페이지에 포스팅해도 괜찮냐고 물었다. 캐나다에서 추방당했다는 게 조금 창피하기도 하고 꼴이 우스워보여 망설여졌지만 간사님은 내게 한번 올려나 보자고 했다. 다음 날 포스팅을 올렸고, 신기하게도 올리자마자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 메시지와 후원이 들어왔다. 하루가 더 지나고 두 분 중 한 분의 대표님 또한 멋진 도전을 응원한다며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셨다.
브라이언에게 혹여나 나중에 교육부에서 메일이 오면 연락할 테니 그때 이 서류를 제출해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그 또한 흔쾌히 도와주겠다며 나를 응원해주었다. 이집트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출국 날을 기다렸다. 이집트의 치대는 카이로 대학에 있었다. 솔직한 마음으로 시간을 두고 몰타에 다시 돌아와 프로세스를 여유롭게 준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학교를 가고 교수들을 만나고, 교육부 직원들을 만나는 이런 과정들에 너무 지쳐있었다.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도 컸다. 뭐 하고 있는 짓인지 싶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내 인생은 왜 이따구라는 질문이 튀어나왔다. 나처럼 국제적으로 뻘짓하고 있는 인간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쩌다 아프리카 땅에 있는 아랍권 대학까지 찾아갈 생각을 했을까. 카이로 대학은 영어를 쓰는지, 아랍어를 쓰는지도 몰랐다. 알아보기도 귀찮았다. 그냥 가보기로 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인생이 다 그렇지 뭐. 계획대로 되는 게 있나. 되면 되는대로, 안되면 안 되는대로, 그냥 그렇게 살기로 했나 보다. 이집트의 며칠 전 기사를 봤다. 수도인 카이로 한복판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고 했다. 이번엔 폭탄 맞는 거 아냐? 한 70퍼센트의 확률로 진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님 내 주변 100m 반경에서 터지던가.
새로운 땅, 미지의 땅으로 들어가는 건 언제나 용기가 필요하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혹여라도 좋지 않은 상황이 생긴다면, 음. 에베레스트와 캐나다에서의 일을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위로가 됐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몰타 교육부에 가서 담당자를 다시 만났다. 빨간색 초록색 크리스마스트리를 준비하는 직원들이 보였다. 트리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그저 내 상황을 설명하고 앞으로의 일이 진행된다면 이메일과 친구를 통해 최대한 협조할 테니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고 나왔다. 이제 모든 준비를 끝냈다. 며칠 후 이집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3000여 년의 역사가 깃든, 스핑크스와 피라미드가 세워지고 람세스와 클레오파트라가 머물던 땅에 발을 디뎠다. 신기함 반, 설렘 반, 두려움 반, 긴장 반. 여기도 다 사람 사는데야. 다 똑같은 인간들이 사는 곳이지. 미라가 살진 안잖아. 아, 미라는 저 밑에 있긴 하겠지만. 아무튼 떨지 마. 떨 필요 없어, 자연스럽게 하면 돼. 자연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