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다 그렇지 뭐
카이로 공항에 도착했다. 블로그 글들을 보니 카이로 공항은 삐끼질로 악명이 높다고 한다. 공항만 그런 게 아니라 이집트 자체가 삐끼질로 유명하다고 한다. 인도를 여행할 때 지긋지긋한 삐끼들 때문에 고생을 한 적이 있다. 그 고생을 여기서도 하게 될 거라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떤 나라를 가던, 커다란 배낭을 메고 정돈되지 않은 긴 머리를 찰랑거리며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는 여행자의 모습으로 공항에서 택시를 탄다면 바가지 씌우기 딱 좋은 타깃이 된다. 그래서 난 공항에서 택시를 타지 않는다. 귀찮더라도 로컬 버스를 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 시내까지 가는 방법을 이용한다. 물론 엄청 귀찮지만 돈이 많지 않은 장기 여행자들은 이런저런 방법들로 숙박비, 교통비 등을 아끼곤 한다. 어느 순간 보면 흥정의 달인이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인도와 아프리카의 많은 상점들은 가격 정찰제가 아닌 부르는 게 값인지라 그 나라에서 몇 달이고 머무르려면 흥정은 필수다. 흥정하지 않는 자, 200원짜리 손톱깎이를 2만 원에 구입하기도 하고, 3000원이면 갈 거리를 5만 원을 내고 가기도 한다. 장기 여행자에겐 흥정의 기술은 필수다.
카이로의 시내에 도착했다. 이제 숙소를 찾아야 했다. 숙소는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을 이용했다. 카우치 서핑이란 쉽게 말하면 소파(Couch)를 서핑한다는 의미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집(소파)을 여행자들에게 무료로 내어주고 시간이 된다면 투어를 시켜주기도 하고 같이 hang out을 하기도 하는 그런 서비스다. 유럽에서도 많은 시간을 카우치 서핑으로 돌아다니곤 했는데, 나는 대부분이 좋은 경험이었지만 여성 여행자들에겐 호스트가 샤워실에 몰카를 설치한다던지 하는 불쾌한 경험도 있다고 했다. 카우치 서핑을 이용하는 여행자라면 경계를 늦추지 않고 계속해서 주의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다행히 좋은 호스트를 만나 숙소로 잘 들어갔다. 호스트는 굉장히 말이 많은 친구였다. 12시간 동안 수다를 떨어도 지치지 않을 것 같았다. 한 가지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다가 전혀 다른 주제로 휙휙 넘어가기도 하고 이야기가 끝날 듯하면서도 계속 이어서 말을 하는 그런 친구, 주변에 꼭 하나씩 있지 않나. 그런 친구를 한국도 아닌 이집트에서도 만났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얘기를 듣는 와중에도 머릿속에서는 그만, 그만, 그만, 제발 그만 얘기해ㅠㅠ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는 내게 피라미드를 보러 가자고 했다. 나는 고맙지만 카이로 대학에 가봐야 한다고 했다. 설명하기가 귀찮아 대충 둘러댔다. 설명하면 또 부연설명을 해야 하고 그 친구의 설교까지 또 들어야 할 판이었다. 피라미드는 혼자 보러 가겠다고 했다. 웬만하면 호스트에게 감사한 마음에 같이 가겠는데 말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같이 있다가 기 빨리는 건 시간문제일 것 같아 거절했다.
카이로 대학의 주소를 파악하고 Faculty of Dentistry를 요리조리 찾아내 학생들을 만났다. 몇몇 학생들은 한국에서 온 나를 신기해했다. 치대에 관해 묻긴 했는데 사실 이곳에선 자격증 취득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들의 수업은 아라빅(Arabic)과 영어로 이뤄졌고, 학교 내에도 온통 지렁이 같은 글자들이 써져있었다. 고대 유적지에 온 느낌(...). 이 나라에서 일을 하려고 해도 아라빅을 구사해야 했고, 여러 가지 뭐 무슨 이유가 많았지만 사실 이집트는 별로 마음에 가는 나라가 아니어서 귓등으로 흘려듣기도 했다. 내 마음은 벌써 남아공으로 가 있었지만 이왕 이렇게 온 거 학생들과 이야기라도 많이 해야겠다 라는 생각에 친구를 사귀었다. 한국의 케이팝이 유명해질 대로 유명해진 터라 많은 친구들이 한국을 좋아하고 있었고, 내게도 마음을 쉽게 열어 좋은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한 친구는 자기도 세계일주를 하고 싶은데, 부모님이 이집트 밖은 위험하다며 절대 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이집트에 간다고 했을 때 몇몇 친구들은 이집트는 위험한 나라기 때문에 절대 가면 안된다고 했다. 이집트에 살며 이집트 밖은 위험하다고 하는 이집션과 이집트 밖에 살며 이집트는 무조건 위험하다고 하는 친구들.
가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경험해보기 전에는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세상엔 이런 아이러니가 넘쳐난다. 본인이 직접 경험을 해보지도 않고 타인의 생각, 도전, 꿈을 비웃으며 그게 될 것 같냐고 말하는 좁은 사고를 가진 이들이 세상엔 넘쳐난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대부분 미디어에서 학습된 결과이거나 아는 사람의 누군가가 해봤는데 결과가 결국 이렇다더라, 하는 카더라 통신이다. 그 말인즉슨, 누군가도 그렇게 해봤는데 안됐어, 너라고 별반 다를 것 같아?라는 뉘앙스가 담겨있다. 그러면서 너는 이런 걸 해야 돼. 너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해 라고 강요 섞인 꼰대질을 하는 사람들이 안타깝게도 많이 있다.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과 나는 명백히 다른 존재이고, 다른 삶을 살아왔고, 다른 경험을 가진 존재다. 그 사람'들'이 할 수 없었던 걸 '나'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과는 명백히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경험만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들은 '남의 경험'이 팩트이며,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을 현명하고 깨어있다고 이야기하는 이들. 그런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그저 웃음만 난다. 자신의 생각만이 옳은 생각이고, 다른 의견을 수용할 자세를 갖지 못한 사람들만 모여있는 사회는 결국 좁은 사고에 갇힌 닫힌 사회를 만들어 낼 뿐이다. 반성적 사고로 나를 끊임없이 돌아보는 것, 병들어버린 이 사회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자세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