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에서 케냐로 육로로 가기 위한 계획을 짰다. 약 3박 4일의 일정이 나왔다. 몸이 만신창이가 되는 죽음의 일정이란 걸 이 때는 모르고 히히덕거렸다. 에티오피아에선 야간 버스가 없었고, 새벽 5시에 출발하는 버스가 첫 버스였다. 고로, 새벽 4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이른 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버스 정류장은 숙소에서 20분을 걸어야 했다. 우리를 그곳까지 픽업하러 온 사람이 숙소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다. 어디 후미진 곳으로 데려가서 떼강도한테 팔아먹을 거 아니지..? 우리 장기 팔아봤자 돈도 얼마 안돼.. 다 그지들이라 튼튼하지도 않아..
새벽의 에티오피아는 무섭다. 아니, 어느 여행지든 위험한 사건이 일어난 때를 보면, 돌아다니면 안 되는 시간과 장소에 우리 몸뚱이를 가져다 놓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새벽의 시간은 위험한 시간이라고 생각진 않았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시간이었고, 이 곳 현지인들이 보기에 돈 많은 외국인이었고, 더군다나 아프리카라는 새로운 대륙에 완전히 적응을 하지 못했을 때였기에 두려움이 있었다. 일행들과 다 같이 핸드폰으로 길을 비추며 일부러 무섭지 않은 척 우스갯소리를 하며 걸었다.
아디스아바바 - 아와사(5시간)
아와사 - 딜라(3시간).
딜라 - 야벨로(6시간)
야벨로 - 모얄레(4시간 반)
모얄레(에티오피아와 케냐의 국경마을) - 나이로비(15시간)
에티오피아 수도(아디스아바바)에서 케냐의 수도(나이로비)로 가는 일정이다. 비행기를 타면 한 번에 쉽고 빠르게 갈 수 있지만 우린 주머니가 넉넉지 않다. 1000km에 달하는 거리를 걸어갈 순 없으니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행들끼리의 의견이 잘 맞았다. 시간에 쫓기는 사람이 있다면 제대로 쉬는 시간도 없이 바로바로 이동을 해야 했을 것이지만 우리 팀은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다. 느긋하게 가자~ 급할 게 뭐 있어~ 라며 지칠 때쯤이면 푹 쉬고 마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제일 힘들었던 건 버스를 타는 과정에서 받는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다.
버스 예약을 하기까지 우리를 유혹하는 수많은 사기꾼들과 씨름을 해야 했다. 이들은 틈만 나면 버스 가격으로 사기를 쳤다. 예를 들어 티켓을 구매할 때는 만원이라고 해서 예약을 하고 시간에 맞춰 올라 탔는데 정작 돈을 낼 때는(예약 할 때 돈을 내지 않고 출발 전 돈을 낸다) 3만 원을 달라고 한다거나, 가격 흥정을 잘하고 버스에 올라탄다 하더라도 인원이 꽉 찰 때까지 출발하지 않아 몇 시간이고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둥, 출발까지 걸리는 시간이 조금 과장 보태서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 마냥 오래 걸렸다. 이 과정에서 진이 다 빠지고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이런 사건들이 정신적 스트레스로 다가왔다면, 이제는 육체적 스트레스를 맞이 할 때다.
에티오피아의 버스 안
이 루트의 도로는 한국의 잘 포장되어 있는 고속도로처럼 완만한 도로가 많지 않았다. 거진 비포장 도로였고,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몸을 들썩거리게 해 주었다. 천장에 머리를 찧는 일은 다반사고, 앉았던 의자는 90도 직각 의자였다. 허리를 꼿꼿이 피고 앉아 버스 안으로 들어오는 흙먼지를 그대로 마시며, 2시간이고 3시간이고 아무리 가도 변화 없는 에티오피아의 풍경을 고통스럽게 바라봐야 했다. 길고 긴 버스에서의 이동 시간 동안은 쪽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버스가 잠시 조그마한 마을에 정차할 때면, 열린 창문으로 뜬금없이 노르스름한 옥수수가 들어왔다. 길거리에서 옥수수를 팔던 상인이 긴 막대에 옥수수를 꽂아 버스 창문 안으로 불쑥 집어넣는다. 창문 넘어 옥수수를 들이밀고 있는 그를 바라보면 활짝 웃는다. 내 또래나 되었을까. 당황스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옥수수를 사 먹는다. 짭쪼름한 옥수수가 맛있긴 하다. 앞에 있는 다른 창문들을 보면 다들 옥수수니 바나나니 하는 것들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있다. 아프리카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닐까.
대량 이런 풍경.
야벨로의 마을에 도착해서 숙소를 구할 때였다. 저렴한 숙소를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다행히 다른 게하보다 훨씬 저렴한 곳을 찾을 수 있었는데 뭔가 느낌이 싸했다. 왜 이렇게 싸지? 세상엔 공짜가 없고, 싼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렇게 싸다면 의심을 한번쯤 해볼 법도 한데, 산전수전 다 겪어 본 세계 여행자들에겐 비 막아줄 수 있고 몸 누일 곳만 있다면 웬만하면 다 좋은 숙소다. 길바닥에서 텐트 치며 여행할 때도 많은데 이런 곳은 뭐. 그에 비해 천국이지,
라는 마음이었다. 방에 들어갔을 때 침대도 있고 나름 괜찮았다. 라운지 같은 곳도 있어서 라이브 카페를 하나 차려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저녁 시간이 됐는데, 분위기가 살짝 미묘해졌다. 야시꾸리한 옷차림을 한 여성들이 라운지로 한 무더기 들어와 자리를 잡았고, 빨간색 파란색 조명이 켜졌다. 응? 뭐지? 건장한 다른 남성들이 들어오더니 야시꾸리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지며 허리를 잡는다. 노래도 끈적끈적. 남녀의 눈빛도 끈적끈적.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싶었다. 알고 봤더니 이곳은 매춘부들이 몸을 파는 곳이었다. 우리가 자게 될 숙소는 끈적끈적하고 혈기왕성한 남녀들이 구석에서 서로의 격렬한 입김을 실컷 섞다가 들어와 거사를 치르는 공간이었다. 나름 순수한(?) 우리의 세계 여행자 무리는 라운지에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어떤 소리들이 들렸다. 왼쪽에서도, 오른쪽에서도, 저 구석에서도 쪽쪽대는 소리와 추파를 던지는 눈빛의 소리가 들려 그곳을 바라보면 어김없이 에로영화의 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음. 이 나라는 원래 이렇게 대놓고 이런 걸 하나? 이 장소가 특별히 그런 곳인가? 여러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몹시 당황해서 배정받은 우리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니까 이곳이, 음. 그렇게 그런 거 하는 그런 곳이란 거잖아. 아니 뭐, 사실 호텔도 그렇고, 모텔도 그렇고.... 그렇다고 하지만 이곳은 뭔가 모르게 너무나 찜찜했다. 이 밤에 새로운 숙소를 찾으러 나갈 수도 없었다.
건장한 에티오피아의 형 누나들에게 보쌈이라도 당할까 싶어 잔뜩 쪼그라들었던 우리는 방 안에서 우리끼리의 파티를 열기로 했다. 같이 여행을 하며 이것저것 살아온 얘기, 힘들었던 얘기, 좋았던 얘기 전부 나눴던 것 같은데 아직도 할 말이 그렇게나 남아있다니. 밖에는 둥둥둥둥 클럽 음악이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한참을 울려대던 음악이 꺼지고 조용해질 무렵 우리는 밖으로 나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찜찜한 마음으로 자려고 누웠는데 옆 방에서 또 다른 소리가 들렸다. 방음이 참 열악한 곳이었다. 그날 밤 우리 일행은 아마 모두가 잠을 설쳤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