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벨로에서 다시 4시간 반을 타고 국경 도시 모얄레에 도착했다. 에티오피아 쪽 모얄레에 내려서 입국심사를 마치고 케냐 모얄레로 넘어간다. 이곳에서도 역시 버스 값을 사기 치는 놈들 때문에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15시간을 이동해야 하기에 버스 값이 꽤 나갔는데 외국인인 우리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어 사기를 몇 번이고 쳐댔다. 우리는 이 버스 저 버스로 옮겨 다녀야 했다. 호객꾼과 버스 기사가 말하는 버스 값이 현저히 달랐기 때문이다. 뿌얀 황토색 먼지가 마을 가득히 쌓인 것처럼 우리의 정신적 스트레스도 점점 쌓여만 갔다.
그나마 괜찮은 조건으로 버스를 예약했다. 겉으로 보기엔 나름 고급 버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출발을 했는데, 저녁이 되자 쎄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몇 개의 창문이 고장나 문이 닫히지 않았는데 그 사이로 세찬 바람이 들이닥쳤다. 아프리카라고 무조건 더운 게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 저녁 바람은 새벽 내내 이어졌고 우리 모두를 얼어 죽이려고 했다. 흡사 겨울왕국이 이런 느낌일까(는 에바고요..) 무튼 가지고 있는 옷을 모조리 꺼내 입어봤지만 아프리카 여행을 위해 얼마나 따듯한 옷을 가지고 왔겠는가, 나시 쪼가리와 늘어난 티셔츠 몇 개를 더 껴입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덜덜 떨면서 케냐의 새벽을 통과했다.
나름 괜찮아 보이자나..
나이로비에 도착하니 온 몸이 구석구석 쑤신다. 잘 때 누군가 내 몸에 난타질을 한 것 같다. 장시간의 버스는 언제 타더라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몸이 삐걱댔다.
나이로비는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와 마찬가지로 강도질과 테러로 악명이 높다. 인터넷 기사를 봐도, 가이드북을 봐도, 다른 sns 친구들이 써놓은 글을 보더라도 나이로비는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나이로비에 도착하기 몇 달 전 가리사 대학에서 이슬람 원리주의자 알샤바브 조직원들에 의한 테러가 일어났다. 교내에 있던 학생과 교직원들에게 무슬림이냐고 물은 뒤 기독교인이라고 답하면 총질을 해댔다고 한다. 총 148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집트에서 만난 여행자는 나이로비에서 자기가 당한 사례를 말해줬다. 오후 7시쯤 나이로비 시내 식당을 찾다가 소매치기를 당했다. 소매치기범을 잡으려 쫓아갔고, 뛰다 보니 이상한 골목이 나왔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돌아보니 앞 뒤로 떼강도가 있었다고 한다. 가지고 있던 여권, 지갑, 스마트폰, 카메라, 가방 등 모조리 빼앗겼다고 한다. 목숨은 건져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례들을 듣고 나이로비에 도착 하니 두려움이 엄습했다. 지나가는 모든 이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고 누가 말을 걸기만 해도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다. 하루 이틀 지나고 도시에 적응을 하다 보니 괜찮아졌다. 이 곳 역시 사람 사는 곳이라고 느껴졌다. 테러가 매일 일어나진 않겠지. (소매치기는 자주 일어난다..)
우리는 주로 대도시에 있기보다는 외곽에 머물기를 좋아했다. 조그마한 동네에 사는 로컬 사람들과 어울렸고 동네 미용실에서 만원을 내고 레게 머리를 했다. 잔뜩 무거워진 머리로 익숙해진 동네를 활보했다. 우리를 만나는 대부분의 현지 주민들은 우리를 신기해했고, 말을 걸어왔다. 인기가 아주 좋았다.
ㅇㅡㅇ? 인기가 좋았..?
한국에서 드레드(레게머리)를 하게 되면 10~20만 원의 값을 내야 한다. 이곳은 너도 나도 드레드를 하기 때문에 값이 싸다. 원래의 내 머리에 머리를 조금 붙여 기장이 길어졌는데, 여자들의 똥머리가 그렇게 편한 것임을 이때 알았다. 레게 머리는 가벼운 체인들을 머리에 달랑달랑 걸고 다니는 느낌이었다. (어렸을 때 카고바지나 청바지에 체인 걸고 다녔던 것 마냥 - feat.옛날 사람)
자꾸 치렁 대는 머리를 위로 올리면 그나마 가벼워졌다. 머리를 올리면 뒷목을 휘감는 바람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머리를 감을 때도 한쪽 방향으로 전부 넘겨서 감아야 했다. 한밤 중 호수에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목욕을 개재하는 뮬란이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레게 머리를 하고 다녔던 약 2개월의 시간 동안 가는 도시마다 좋든 싫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나이로비에서 서쪽으로 더 들어가면 있는 조그마한 도시에 한인 선교사님이 운영하시는 고아원과 학교가 있었다. 그 학교에 가서 일주일 간 봉사활동을 했다.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케냐 아이들과 교실에서 놀아주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아이들은 외국인이 낯설지 않은 듯 내게 잘 다가왔고, 수줍어하며 장난을 치는 아이들도 많이 있었다. 악명이 높은 나이로비의 명성과는 다르게 귀염뽀짝한 미소를 가진 아이들. 부디 그 미소를 잃지 말고 잘 살아가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