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다 그렇지 뭐
케냐에서의 짧은 봉사활동 후 탄자니아의 아루샤로 넘어왔다. 에티오피아에서 케냐로 넘어올 때와는 달리 비교적 편하게 이동을 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아쉬웠던 건 일행들과 헤어지게 되었는데, 나와 다른 친구 한 명은 봉사활동을 하러 가고 싶어 했고 다른 이들은 해변으로 여행을 가고 싶어 했다. 결국 탄자니아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지만 일정이 틀어져 만나지 못하게 됐다.
아루샤에 도착하고 사파리 투어를 하기 위해 사파리 여행사를 돌아다녔다. 3박 4일 코스가 명 당 1100달러란다. 몇 주 전에 탄자니아의 다른 도시에서 사파리를 했던 내 친구는 400달러에 했다고 했다. 근데 1100달러라고? 장난하세요..?
그러나 다른 여행사들을 돌아다녀도 대부분 900달러에서 1100달러를 불렀다. 얼마나 배가 불렀기에 이렇게 세게 부르는 거지. 이 돈을 내고 3박 4일 투어를 감행하는 건 미친 짓이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방법을 구하는 법. 당당히 여행사를 들어가 10명을 모아 올 테니 나와 친구를 넣어달라고 했다. 삐끼질을 그렇게 싫어했는데 내가 삐기가 될 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10명이 적다고 했다. 30명을 모아 오라고 했다. 이런 미%^&놈을 봤나. 순 도둑놈 새끼 아냐? 밖으로 나와 다른 여행사로 가서 딜을 넣었다. 취급도 안 해줬다. 나 같은 애 없어도 손님은 많다고 한다. 잇몸이 부러졌다. 이런.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버렸다. 아루샤에 있는 여행사란 여행사는 모두 돌아다녔다. 잇몸이 모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오후 5시, 그래. 사파리는 포기하고 나중에 싼 곳 가서 해야지 뭐, 라는 마음을 먹을 때쯤 자기를 여행사 직원이라고 소개하는 남자를 만났다. 그는 내게 사파리 투어를 찾고 있냐고 물었다.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봤다. "응. 근데 왜?" 자기가 싼 곳을 알고 있으니 따라오라고 했다. 의심이 증폭됐다. 뭐지 이놈. 강도? 머릿속에서 수만 가지 상황이 시뮬레이션됐다. 이놈이 이렇게 행동하면 나는 이렇게 막고, 칼을 꺼내면 이렇게 막고 찌르고. 상상 속의 나는 영화 신세계의 황정민이었다. 건들면 죽여버릴 테야. 하지만 실제 싸움 레벨은 단소 살인마 정도?
경계의 눈빛으로 그를 따랐다. 그가 음침한 건물로 올라간다. 뭐야 뭐야. 더 떨리잖아. 들어가도 되나? 들어가지 마. 들어가지 마! 그러나 몸은 어느새 2층으로 향해 있었다. 문을 여니 여행사 같이 꾸며놓은 사무실이 나왔고 사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잘 왔다며 의자를 권했다. 진짜 여행사 맞나? 사기 아닌가? 내 장기 털어가는 거 아니겠지..? 사장은 내게 투어 가격이 어느 정도면 괜찮겠냐고 물었다. 나는 300달러라고 했다. 나도 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그렇지만 이렇게 가격을 후려쳐야 중간에서 만날 수 있다. 사장은 당연히 그건 안된다고 말했다. (그럼 왜 물어본 거야?) 나는 그에게 얼마를 원하냐고 물었다. 그가 600달러를 제시했다. 안된다. 사파리 투어에 그 정도의 돈을 낼 순 없다. 나는 350을 말했고 그는 550을 말했다. 안돼. 안 해. 그가 다시 500을 말했다.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왜 다른 곳보다 싸게 해 주는 거야?" 알고 봤더니 내일 투어를 하기로 했던 고객 4명 중 두 명이 갑자기 취소를 해버리는 바람에 두 자리가 비게 돼버린 것이다. 급하게 두 명을 구해서 투어에 끼워 넣어야 손해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구나. 그럼 더더욱 비싸게 할 순 없지. 나는, "오케이, 그럼 서로 양보해서 400으로 하자"라고 말했고 그는 그렇게 싼 값은 안 된다고 했다. "그럼 난 이만 가볼게. 400 이상은 낼 수가 없어"라고 말하며 일어났고, 가격 흥정에 진절머리가 나 사파리 투어를 안 하려고 했다. 그는 조금 생각해보더니 "알았어. 400에 하자"라고 말했다.
다음 날 사파리 투어를 진행했다. 원래 투어를 하기로 했던 고객 두 명은 신기하게도 우리 또래의 한국인 커플이었다. 아랍 에미리트에서 일을 하다가 휴가를 얻어 사파리 투어를 하러 왔다고 했다. 나와 친구는 당시에도 레게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맨 처음 그들에게 영어를 쓰며 우리는 콜롬비아에서 왔다고 장난을 쳤다. 둘 다 선글라스를 끼고 레게머리를 하고, 영어를 구사하며 그들에게 영어로 말을 거니 그대로 믿는 눈치였다. 몇 분 간을 영어로 대화하며 콜롬비아에서 무엇을 했고, 어쩌다 아프리카에 왔는지에 대한 설명을 지어내다가 웃음이 터져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장난이에요.(웃음) 우리 한국 사람이에요!!라고 하니 웃으며 어이없어했다. "콜롬비아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생긴 건 완전 아시안이잖아. 복잡한 사연이 얽혀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세렝게티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니 톰슨가젤이 우리를 맞이한다. 우오ㅇㅇㅇㅇㅇ오!!!! 눈이 휘둥그레지며 처음 마주한 야생 동물의 자태에 빠져들었다. 이윽고 조신하게 풀을 뜯어먹고 있는 기린이 나왔고, 옆으로는 (성질이 그렇게 더럽다는) 얼룩말들이 뛰어다녔다. 진짜 '야생'에 살고 있는 동물들을 실제로 보니 너무나 신기했다. 그 후로도 티몬(미어캣)과 품바가 나왔고, 하이에나와 버팔로가 차례대로 모습을 보였다. 세렝게티에는 빅 5라 불리는(사자, 버팔로, 표범, 코뿔소, 코끼리) 동물들이 있는데, 그 동물들만 다 봐도 성공한 사파리 투어라고 했다. 그만큼 보기 어려운 동물이라고 했는... 데 여기를 봐도 코끼리, 저기를 봐도 버팔로가 보이는데? 빅 파이브 중에 빅 투는 너무나 쉽게 보이는 군?
우리는 사자를 찾았다. 늠름하고 풍성한 갈기를 휘날리고 있는 무파사를 보고 싶었다. 가이드는 열심히 운전을 하며 사자를 찾는데 힘썼다.
사자다!!! 동행이 외쳤다. 진짜!? 어디 어디 어디!?!?!! 난리가 났다. 몹시 흥분한 우리와는 달리 사자는 길거리에서 졸고 있었다. 무파사..라고 하기엔 조금 초라하지만 그래도 뭐;; 무파사도 졸 수는 있지.
리얼 사자를 처음 본 우리는 몹시 흥분 상태였지만 감히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살금살금 문에서 내려 사자 옆으로 가서 셀피.. 를 찍는 건 자살 행위고(절대 그러면 안됨) 차 안에서 고개만 빠끔 내밀고 자는 사자의 모습을 지켜봤다. 너무 곤히 자는 거 아냐? 너무 귀엽다 어떡해 ㅎㅎㅎ 와우! 사자의 자태란 졸고 있어도 넘나 귀여운 것. 그 후로도 우리는 세렝게티를 돌고 돌아 사자와 표범, 코뿔소를 찾았다.
첫 번째 사진의 사자 두 마리는 많은 투어객들이 두 눈 크게 뜨고 보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랑을 나눴는데.. 몹시 지쳐 보이는 저 표정이 보이는가? 사진만 보면 정말 열정적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데 음.. 3초 정도.... 하고 끝나더라. 토끼인 줄.
한참을 돌아다닌 결과 드디어 표범과 코뿔소도 찾았다. 아쉽게도 표범은 늘어져라 잠만 잤고, 코뿔소는 저-멀리서 전설의 포켓몬 마냥 형태만 보여주었다. 가까이서 보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이 정도의 모습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동물들에게 고마웠다.
다음 썰에는 독수리에게 치킨 두 조각을, 나무 위의 몽키에게 감자 고로케를 빼앗긴 썰을 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