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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Sep 04. 2020

#34. 동물에게 호구잡힌 인간

인생이 다 그렇지 뭐


 사파리 투어를 하는 관광객들은 비슷한 코스를 돌게 된다. 무전기를 통해 어느 곳에 어떤 동물이 있는지 서로 알려주기 때문에 사자가 많이 모여 있다거나, 보기 힘든 동물이 있다거나 하면 금세 투어 차량이 몰려든다. 하루의 투어 일정이 끝난 후에는 같은 야영지에서 비슷한 음식들을 먹는다. 널따란 공간에 각종 여행사에서 모집해 온 관광객들로 꽉 차게 되는데 이때 재밌는 광경이 펼쳐진다. 이 투어에 과연 얼마를 지불했는가가 여행객들 간에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다. 비슷한 코스에, 비슷한 음식에, 비슷한 숙박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는 600불, 900불, 1100불을 냈다. 우리와 같이 투어를 했던 커플도 700불을 냈다. 똑같은 투어에 누구는 700불, 누구는 400불인 셈이었다. 모인 이들 중에 우리가 지불한 가격이 제일 저렴했는데, 400불을 냈다고 하자 많은 이들이 찾아와 어떻게 그렇게 싸게 했냐고 물었다. 이빨이 충분치 않아서 잇몸으로 때우느라 고생 좀 했다고 했다. 부러우면 너도 잇몸으로 여행해... 

아프리카 투어 여행사에서 제시하는 금액은 거품이 낀 경우가 많다. 조사를 충분히 하고, 시간을 들여 발품을 팔다 보면 충분히 저렴한 가격에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에티오피아의 다나킬(화산) 투어도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처음 불렀던 값은 600불이었지만 우리는 300불을 내고 할 수 있었다.


 




투어 이틀 째, 점심을 먹으러 한적한 곳으로 갔다. 널찍한 평원에 커다란 나무가 있는 곳이었는데, 각자 점심을 받아 들고 차에서 내리니 가이드가 음식을 잘 잡고 있으라고 말했다. 왜? 사자라도 갑자기 튀어나오나?라고 묻는 우리에게 가이드는 하늘을 보라고 했다. 높은 하늘에는 독수리들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누군가 방심할 때 독수리들이 빠르게 내려와 음식을 낚아챌 것이라고 했다. 우린 모두,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저 높이 있는 애들이 내려오는 데 우리가 모를까 봐? 라며 웃었다. 가이드는 아무튼 조심해,라고 일렀다.


일행들은 나무 밑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었고 나는 허리가 아파 일어서서 점심 포장을 뜯었다. 닭다리 두 개와 고로케, 감자튀김이 들어 있었다. 닭다리 한 입을 베어 물었다. 그리고 일행들과 떠들고 있는데 순간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손에 들고 있던 닭다리가 없어졌다. 어?! 뭐지??? 분명 닭다리를 들고 있었는데, 허공만 잡고 있는 손가락이 보였다. 내 앞에 앉아있던 일행들은 독수리가 직속 하강을 하며 내 닭다리를 채가는 모습을 똑바로 쳐다보며 자리에서 모두 일어났다. 이런 광경을 처음 본 우리는 그저 신기하기도 하고,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어안이 벙벙해지기도 했다. 가이드가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 "거 봐, 내가 뭐랬어". 아니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진짜로 독수리가 음식을 채간다고? 너무 어이없는 일이 벌어져서 너털웃음만 흘러나왔다.


닭다리 한 개를 다시 꺼내 들고 일행들 옆에 앉았다. 오른손에 닭다리를, 왼 손에 고로케를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일행들하고 같이 앉아있으니 설마 또 뺏기진 않겠지, 라며 한 입을 또 베어 먹었다. 자리에 앉은 순서는 A, B, C, D 였고 내가 A였다. 우리 뒤에는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그러나 한 입을 베어 먹고 나자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일행인 D, C, B 앞을 차례로 지나 내가 들고 있던 닭다리를 다시 또!!! 채갔다. 닭다리를 빼앗길 때 놀란 나는 왼 손에 들고 있던 고로케를 땅바닥에 떨어트렸다. 나무 위에서 눈치를 살살 보던 원숭이가 밑으로 재빠르게 내려와 내 고로케를 들고 우리를 빙 돌아 나무 위로 다시 올라갔다. 순식간에 닭다리 두 조각과 고로케를 빼앗겼다. ㅋㅋㅋㅋㅋ 야이 새&^#$%^들아!!!! 내 점심 내놔!!!!라고 외쳤는데 그러면서도 너무 어이가 없어 웃겼다. 아니 이런 일이 진짜 일어난다고??! 독수리가 A 방면에서 와서 내 닭다리를 채갔다면 그나마 이해를 하겠다. 근데 내 방향도 아니고 D의 방향에서 와서 C와 B를 거쳐 '굳이' 내 닭다리를 채 간다고? 이건 분명 이 새*가 나를 호구로 생각하고 있다는 거다. 이런 어이없는 조류*끼를 봤나. 그리고 나무 위에서 눈치 살살 보다 이 때다 싶어 내 소중한 고로케 가지고 튄 원숭이*끼,,, 하 ㅠㅠ 삐끼한테도 호구 잡히지 않는데 동물들한테 호구를 잡히다니. 분했다. 아프리카는 삐끼 뿐만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털릴 수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가이드가 크게 웃으며 자기 음식을 나눠줬다. 


친구들에게 이 스토리를 말하면 아무도 믿질 않는다. 그런 영화 같은 말도 안 되는 일이 다 있냐며. 그러나 이건 레알 팩트다. 몇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생생한 기억. 독수리가 닭다리를 재빠르게 채가던 그 순간의 느낌. 닭다리를 빼앗기던 찰나의 느낌. 뭔가 루저의 느낌 같지만,, 세렝게티에서의 색다른 추억을 쌓았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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