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리 투어가 끝나고 다시 아루샤로 돌아왔다. 탄자니아의 수도인 다르에스살람으로 넘어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 가서 표를 예약했다. 표값은 숙소 주인이 말한 것과 같았다. 혹시 모르니 창구에 있는 사람에게도, 버스 앞에 서있던 기사에게도 가격을 물었다. 동일한 대답을 했다. 사기는 당한 것 같지 않았다. 여타 다른 국가들과 다르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 '음, 탄자니아는 좀 낫군' 하며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라고 해피엔딩으로 아루샤를 벗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일은 다음 날 터졌다. 새벽에 버스를 타러 갔을 때 우리가 당한 상황은 내 지난 여행을 통틀어 제일 화가 나는 날이었다. 우선 우리가 배정받은 버스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는데 기사가 티켓을 확인하더니 돈을 무려 2만 원이나 더 내라고 했다.
"뭔 소리야, 어제 내가 몇 명한테 확인을 했는데. 이 가격 맞잖아. 다른 버스 기사도 그렇게 말했거든? (어디서 또 수작이야ㅡㅡ)"
그러나 이 인간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 가격이 어제 가격이었고 우리 회사 버스는 하루 걸러 가격을 다르게 받는다고 했다. 그러니 돈을 더 내라. 그리고 넌 외국인이기 때문에 돈을 더 내야 한다(....). 그래 뭐.. 여기 버스는 비행기 처럼 하루마다 가격이 다르고 뭐 그런거야? ... 그럼 표를 싸게 사려면 2달 전에 예약하고 뭐 그래야 하는거야?
두피의 구멍 사이 사이로 스팀이 치솟아 오르는 게 느껴졌다. 안에서 부터 끓어 오르는 깊은 빡침이었다. 당장 그 버스에서 내리고 다른 버스를 타기 위해 창구 앞으로 갔다. 앞에는 호객꾼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어디 가냐고, 싸게 해 주겠다고, 내 팔을 붙잡는다. 그중 한 명을 골라 따라갔고 안내해준 버스에 올라 타 앉았다. 기사가 와서 돈을 내라고 했다. 나는 아까 호객꾼에게 들었던 값을 줬다. 기사의 손이 그대로 남아있다.
"뭐? 어떡하라고?"
돈을 더 내라고 한다. 심지어 처음 버스보다 비싸다 (....)
"아까 저 사람이 이 돈이면 된다 그랬는데?"
"아니야. 걔는 잘 몰라. 더 내야 해."
이쯤이면 그냥 더러워서라도 돈을 얼굴에 집어던지고 버스에 남아 있을 법도 한데 도저히 이런 저급한 사기꾼 놈들에게 지는 게 싫었다. 다시 한번 깊은 빡침이 느껴졌지만 참을 인, 참을 인, 참을 인을 그리며 정말 살인충동이 일어나는 걸 억제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아까 모여있던 호객꾼 6명이 다시금 내게 우르르 달려든다. 그러더니 누구는 내 옷을, 누구는 내 팔을, 누구는 내 몸을, 누구는 내 어깨를 잡고 서로 자기가 데려가겠다고 싸우기 시작한다. 급기야는 한 팔로 나를 잡고 한 팔로는 옆에 있는 애를 때리는 놈도 있다. 얼굴에까지 주먹을 가격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내 앞에서, 내 온몸을 하나씩 붙잡은 그들이 서로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며 폭력을 행사했다.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이런 일이 눈 앞에서 벌어졌다. 다들 먹고살기 위해 이러는 걸 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측은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당시에는 아프리카라는 대륙에 정이 떨어질 대로 떨어졌었고 이런 망할 인간들이 있는 땅에 내가 다시 오나 봐라 라는 말을 수도 없이 외쳤던 때였다. 나는, SHUT UP! HEY! SHUT UP! LISTEN! 을 힘껏 외치며 내 말을 들으라고 했다. 나도 감정적이었고 그들도 감정적이었다.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상태였고, 그들은 나름대로의 밥그릇 싸움을 하느라 분을 내고 있었다.
거의 소리를 지르다시피 외쳤던 것 같다.
"아까 사기 친 놈 누구야!!! 어디 갔어?!"
그러나 누가 누군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다시 말했다.
"너네 계속 우리한테 사기 치는데,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기만 해 봐!(사실 딱히 어쩔 방안도 없음). 제발 거짓말 좀 하지 말고 제대로 된 값 내고 탈 수 있는 버스를 가져오라고!!!"
이 말이 끝나니 자기들끼리 더 싸우기 시작한다.
하...... 아루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탄자니아는 왜 더 심할까.
아프리카 여행을 하며 느낀 점 몇 가지.
새벽부터 이런 일을 겪으면 하루가 너무 고통스럽다.
아프리카 여행을 하며 화 내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
성격 파탄자가 된다.
인간성을 잃어버린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
다행히 호객꾼들에게 둘러싸여 고문을 당하고 있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 준 어느 현지인이 버스표를 사는데 도움을 줬고, 사기를 당하지 않고 탈 수 있었다. 버스 기사가 사기를 치는 건지, 삐끼가 사기를 치는 건지, 둘 다 짜고 사기를 치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아프리카 육로 여행은 다른 어떤 여행보다 힘들었다. 인도도 힘들긴 했지만 아프리카에 비하면 애기 수준이다.
버스에 오르기 전에는 힘들었지만 버스를 타고 나자 평화가 찾아왔다. 에티오피아와 케냐에서 타던 버스보다 상태가 나은 버스였고 깔려있는 도로도 안정적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앞자리에 앉은 애기가 계속 시끄럽게 울었다. 왜 그러지? 어디 아픈가? 하며 가지고 있던 아이패드로 동영상을 틀어 보여줬다. 아이는 울음을 그쳤고, 엄마에게 내 자리로 아이를 데려가서 놀아줘도 되겠냐고 물었다. 엄마는 흔쾌히 허락했다. 자리로 돌아와 놀아주다가 같이 잠이 들었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품에 안겨 잠든 아이와 함께 나도 같이 잠이 들었다. 아이는 버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깨서 울었다. 덕분에 나도 깼고, 조금 달래주면 아이는 금방 다시 웃었다. 아이 엄마도 내게 아이를 맡겨버리고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3시간 여를 아이와 함께했다.
다르에스 살람에 도착 후 일정을 짰다. 탄자니아에서 타자라 기차를 타고 잠비아로 갈지, 버스를 타고 또 다른 도시로 이동해 말라위로 내려갈지 정해야 했다. 버스를 탈 때마다 개고생을 해서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커져 있던 터라 한 번에 잠비아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다르에스 살람에서 바로 잠비아를 가게 되면 1860km에 달하는 거리를 40km로 주행하는 기차를 타고 가야 한다. 타자라 기차가 그런 기차였다.
말라위는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나라는 아니다. 나라의 절반이 호수로 메워져 있을 만큼 큰 호수를 제외하고는 여행지로서의 매력이 있는 나라는 아니었다. '아프리카의 따듯한 심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나라로, 말라위 국민이 따듯해서 붙여진 별명이라던데,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아프리카에 대한 신뢰가 바닥이 난 상태였으므로 결국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앞서 종단을 마쳤던 친구가 말라위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으며 꼭 가보라고 하기에, 이왕 비슷한 고생을 하는 거, 말라위를 가기로 정했다. 다르에스 살람에서 잔지바르 섬을 들렸다가 모로고로 - 이링가 - 음베야를 통해 말라위로 들어갔다.
탄자니아 지도
잔지바르, 핑궤 섬
잔지바르
해가 질 때면 잔지바르의 항구에는 항상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 다이빙을 한다. 외국 여행자들도 같이 어울려 다이빙을 한다. 저녁에는 이 항구 앞에서 야시장이 펼쳐지는데, 피자를 팔다 말고 더우면 그대로 달려가 물속으로 다이빙을 하는 주인도 있었다. 자유로운 영혼들. 인터넷에 알아보니 잔지바르 코로나 확진자는 60명이 채 안되던데, 지금 같은 코로나 시기에도 이들은 다이빙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