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르바 Sep 06. 2020

#36. 남느냐 떠나느냐

인생이 다 그렇지 뭐


 탄자니아의 국경을 넘어 말라위의 카롱가라는 도시로 들어왔다. 이 도시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수도인 릴롱궤로 간다. 어쩌다 페북에서 인연을 맺게 된 한인 선교사님께서 말라위에 온다면 한 번 들리라고 초청을 해주셨다. 말라위의 첫 느낌은 괜찮았다. 사람들도 착했고, 버스를 타러 가도 호객꾼들이 극성을 부리지 않았다. 타려면 타고 말라면 말아~ 이런 느낌. 이래서 따듯한 심장이라고 하는 건가? 다른 나라에서 호되게 당하고 와서 그런지 조금만 친절을 베풀어줘도 쉽게 감동을 먹었다.


릴롱궤에 도착해서 한인 선교사님을 만났다. 최선교사님 부부로, 말라위에서 오랜 시간 사역을 하고 계신 분들이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우리가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을 쭉 얘기했다. 특별히 나는 남아공에 치과 자격증을 알아보러 가는 김에 아프리카 종단을 하고 있다고 얘기를 했다. 선교사님은 이곳에서도 자격증을 딸 수 있을 거라고 말씀을 하셨다. 


읭?


선교사님이 사역하시는 곳에 콩고 출신 의사가 있는데 말라위 자격증을 취득해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원하면 그 의사를 만나게 해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정보라도 얻을 셈으로 만나보겠다고 얘기했고, 며칠 후 그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지나왔던 과정을 쭉 - 이야기했더니 대단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우고,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아마 남아공으로 갔다가,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면 그곳에서 머물거나 아니면 다시 몰타로 돌아갈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콩고 의사는 말라위에서도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고, 자기 또한 그렇게 취득을 했다고 얘기했다. 이곳에서 경험을 쌓는다면 어떤 나라를 가던 다음 스텝을 쌓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격증을 딸 수 있다고? 어떻게? 


이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고, 의료 인력이 부족한 나라였다. 영어권 국가이기에 노르웨이, 스웨덴, 미국, 캐나다, 브라질, 일본 등의 나라에서 많은 의료 인력들이 파견되어 같이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자격증을 따는 방법은 여타 다른 나라에 비해 수월했다.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를 보건복지부에 제출하고, 자격이 갖춰졌다는 것이 승인이 나면 시험을 준비하면 된다고 했다. Written exam과 Practical exam으로 나눠지는데, Kamuzu central hospital이라는 국립병원에서 시험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시험을 보고 합격이 된다면 1년간 국립병원에서 일을 해야 했다. 단, 국립병원에서 일을 하는 동안에 보수는 없다고 했다. 


보수가 없다고? 그럼 어떻게 생활을 하지? 


들어보니 나라가 너무 어려워 현지 의료진한테도 월급을 주기가 힘들다고 했다. 월급이 계속 밀리기도 하고 어떤 달에는 받지 못하는 달도 있다고 했으니, 외국인들한테는 오죽하겠나. 당연히 외국인들은 국립병원에서 일을 할 때 자기가 소속된 본국의 병원이나 회사(NGO)에서 지원금 내지는 후원금을 받으며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현지에서 자급자족을 하기 위해선 국립병원에서의 기간을 하루빨리 마쳐야 했다. 나 같은 케이스는 아무도 없었다. 혼자 단독으로 아프리카 오지의 땅에 찾아와 뒤에 받쳐주는 기관이나 병원도 없이 일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고로, 이곳에서 생활을 하려면 그 생활비 또한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아프리카에서의 치과 활동이라. 본과 4학년 시절, 캐나다에서 진료를 보고 있을 내 모습을 상상했다. 그 모습과 현재의 모습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캐나다와 말라위 사이에는 하나하나 설명하기 부족한 간극이 있었고, 이곳에서 자격증을 취득하고 1년을 머문다는 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 말라위라는 나라를 잘 알지도 못했을뿐더러, 상상 속의 아프리카와 그다지 다른 모습이 아니었기에 이 척박한 땅에서 1년이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더군다나 월급도 받지 못할 텐데 생활비는 어떻게 할 것이며, 숙식은 또 어디서 할 것이란 말인가. 갑작스러운 기회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여행을 잠시 멈추고 커리어를 쌓느냐,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는 나라로의 여행을 진행하느냐. 이 선택이 앞으로 남아있을 여정을 좌우할 터였다. 그러나 남아공에 가더라도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쉥겐 비자가 풀려 몰타로 다시 돌아가려면 몇 개월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돌아다니는 것에 조금 지쳐있기도 했다.


우선 정말로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 보건복지부에 서류라도 내보기로 했다. 콩고 의사와 보건복지부를 찾아가 상담을 하고, 자격증을 따기 위한 학점을 충분히 이수했고, 인정이 될 수 있는 학력인지 승인을 받기 위해 서류를 제출했다. 승인이 나기까지 3주간의 시간이 걸렸다. 그 긴 시간 동안 이곳에 있어야 하는 건데, 만약 이곳에 남아있을 생각이 없다면 3주나 되는 시간을 쓸 이유가 없었다. 결정을 빨리 해야 했다. 우선 수도 릴롱궤를 돌아보고, 여기서 일을 하고 있는 NGO 사람들을 만나서 말라위의 생활에 대해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말라위의 한인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체적으로 말라위는 여유롭고, 한적한 나라라고 했다. 좋게 말하면 여유지만 나쁘게 말하면 역시나 모든 것이 느리게 돌아간다는 것일 테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조금 하는 것 빼고는 그렇게 나쁘지 않고 순수한 면이 많다고 했다. (거짓말을 얼마나 많이 하길래...) 무튼, 말라위에 머무는 기간 동안 느꼈던 이곳 사람들의 모습은 다른 아프리카 국가 사람들보단 확실히 친절한 사람도 많았고, 순수한 면도 있는 것 같긴 했다. 문제는 이 나라에서 1년여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여가 활동이나 문화생활 같은 건 어떤 걸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수도 릴롱궤에는 그 흔한 맥도널드와 스타벅스도 없었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패스트푸드점은 Kfc밖에 없었고, 노래방도, 오락실도, 피시방도 없었다. 카페도 많지 않았고 저녁 6시면 날씨가 어두워지고 도로의 모든 불이 꺼지기 때문에 위험해서 돌아다니는 것도 불가능했다. 이런 나라에서 내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의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다. 이곳에서 일을 하는 NGO 단원들은 이런 '아무것도 없음'을 즐기는 듯했다. 빡빡한 일정이 짜여있는 한국과 다르게 자기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처음엔 당황했지만 그 시간이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라는 걸 깨닸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했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나라라 할지라도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을 찾았고 어느새 그 생활에 익숙해져 이곳이 너무 좋아졌다고 말을 하는 분도 만날 수 있었다. 이 나라가 생각한 것만큼 지루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곳에 머무는 것에 대한 생각이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35. 아프리카 여행 주의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