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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Sep 07. 2020

#37. 말라위에서 치과의사 되기

인생이 다 그렇지 뭐


 말라위에 온 지 2주가 지나고 있었다. 그동안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도 들어보고, 말라위 호수인 은카타베이도 다녀오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자격증을 취득할 수 만 있다면 이곳에서 생활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학부시절 가난한 마을을 돌아다니며 봉사활동을 나갔을 때 막연히 생각했던 아프리카 봉사, 티비에서는 아프리카를 가난과 기아, 질병, 테러의 나라로 소개하곤 했다. 어릴 적부터 우리에게 아프리카는 프레임 안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는 나라였다. 그런 미지의 땅에 가서 봉사활동을 한다는 건 높은 수양을 쌓은 성직자, 즉 이태석 신부나 프란치스코 교황 정도는 돼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양은 커녕 빨빨거리며 세계 곳곳을 싸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26살의 혈기왕성한 내가, 이 땅에서 1년간 머무르며 봉사활동을 한다니. 


학창 시절 내 꿈은 반들반들하게 광이 나는 대리석이 깔린 캐나다의 병원에서 일을 하는 것이었다. 쉴 때는 밴쿠버의 스탠리 공원이나 로키산맥 같은 곳으로 여행을 다니며 워라밸을 누리는 삶을 꿈꿨었다. 그러니 맥도널드도 하나 없는 이 나라에서 1년을 보내라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한 주가 더 지나고, 서류 심사가 완료되었다. 자격은 충분했고, Written exam과 Practical exam을 보면 되었다. 시험은 약 두 달 후에 있었고, 그전까지 나는 임시자격증 같은 걸 가지고 국립병원에서 일을 익히고, 배우면 되었다. 고로, 두 달간 다시 공부 모드로 땅굴을 파야 한다는 얘기였다. 캐나다 시험을 위해 본과 2학년 때부터 같이 공부하고 준비했던 친구들이 원격으로 도와줬다. 그 친구들 또한 2차 미국 국시 시험을 앞두고 있어 공부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나와는 여러모로 상황이 잘 맞아떨어졌다. 비록 캐나다에선 시험을 보지도 못하고 쫓겨났지만 그때 매일 밤을 새 가며 준비했던 시험공부가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도움이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어쩌면 당연한 소리일 수 있지만 이곳의 시험 난이도는 캐나다나 미국의 그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캐나다 국시의 족보(?)(=기출문제)를 달달 외웠으니 이 나라의 국시 공부를 할 땐 훨씬 수월했다. 


Practical exam(임상시험)은 병원을 다니며 준비했고 필요한 스킬을 다시금 몸에 익혔다. 졸업한 지 1년이 지났지만 Senior dentist들이 옆에서 잘 도와주니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한국과 몽골을 오가며 치과 의료선교를 하시다가 말라위에 오신 강선교사님께서도 이때 국립병원에 오셔서 나를 지도해줬다. Scaling, Restoration, Extraction, Endodontic treatment, Prosthodontic treatment 등 학부 때 죽어라 배웠던 과정들을 다시금 반복하며 익혔고, 환자들을 치료했다. 한 가지 문제는 아프리카는 구강악안면외과(Oral and maxillofacial surgery) 환자들이 많았는데, 물론 나도 학부 때 이 과목을 배우고 실습도 어느 정도 했지만 환자의 케이스 자체가 레벨이 틀렸다. 내가 배웠던 구강악안면외과 실습수업에는 보통 발치 환자나(Extraction, Wisdom teeth extraction), 가끔 Maxillomandibular fixation을 했을 뿐이고, 나머지 severe worst case들은 책으로만 봤을 뿐이다. 그러나 이곳에선 책으로만 봤던 worst case의 환자들이 실제로 존재했고 수술비가 없어 민간병원으로 가지 못한 환자들이 모두 국립병원으로 모여들었다. 책으로만 봤던 구강악안면외과 환자의 케이스를 실제로 마주하니 내가 지금껏 치과 기술이라며 해왔던 진료들(스케일링, 충치치료, 신경치료, 발치, 잇몸치료, 보철치료 등)이 얼마나 가볍게 느껴지던지. 물론 이런 기술들도 당연히 중요하고, 사람마다 맞는 분야가 있기 때문에 어느 한 분야의 경중을 따질 순 없다. 단지 이곳의 환자들을 접하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치과 진료의 생각이 하나 더 트인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두 달간 다시 책 속에 파묻혔고 임상시험을 위해 열심히 기술을 익혔다. 시험을 봤을 때 임상실력은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다행히 합산 점수가 합격을 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세계를 반 바퀴 돌아 캐나다와는 정 반대인 말라위에서 의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다. 


'캐나다 치과의사'와 '말라위 치과의사' 사이에는 경제적인 면뿐만 아닌 말로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세상 사람 모두가 느끼는 그 간극을 어떤 경험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간극이 실재가 될지, 간극을 뛰어넘는 이상이 될지 정해진다. 나는 캐나다에서 치과의사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없다. 오히려 조금 고생은 했지만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미국 국시를 준비하고 있는 친구가 내게 말했다. 


본인 인생은 ------------ Dentist -------------->인데 반해, 

내 인생은 ↗ ↗ ↙ ↙↗ ↙↗ ↗ ↙↗(Earthquake, Europe, India, Dentist, Homeless, Full of experience)로 가득하다고.


우여곡절도 많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다음 일정을 정할 때마다 그냥 다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내 안에서 '조금만 더'와 '때려쳐'가 자꾸만 싸웠다. 그때마다 괴로웠다. 조금만 더 지났으면 정말 포기하고 끝을 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금 마음을 잡았다. 고단했던 이 여정에서 내가 가장 뿌듯했던 건 이거였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는 것. 실패와 좌절은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그 실패와 좌절 속에 무너져 내려앉아만 있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그냥 그런 사람이 된다. 주저앉아도 다시 한번 더 일어나서 묵묵히 자기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길이 보인다는 것. 이 사실을 몸소 깨달았고, 실질적인 경험을 한 것이 지금 나를 단단히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되어 또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해 준다. 나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이뤄낸 경험들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힘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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