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차게 떨어지는 비가 땅바닥을 마구 내려치고 있었다. 나는 편의점에 가는 길이었다. 그때 90도로 허리를 구부리며 지나가시던 할머니가 갑자기 앞으로 고꾸라지셨다. 당황한 마음에 어이쿠 할머니! 만 외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애석하게도 어찌할 바 모르던 그 짧은 순간에 자동적으로 든 생각은 코로나였다. '혹여나 코로나 때문에 쓰러지신 거라면 어떡하지?', '부축하다 내가 옮으면 어쩌지?'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고개를 쳐들었다. 누구 없어요?! 를 외쳤지만 아무도 없었다. 할머니의 가녀린 팔은 자신의 몸을 일으켜 세우지 못했고 그대로 비를 맞으며 얼굴을 땅바닥에 대고 엎드려 계셨다.
119를 불러야 하나, 어째야 하나. 당황하면 할수록 머릿속이 점점 더 코로나로 가득 찼다. 코로나, 코로나, 코로나.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뇌가 그대로 정지되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쓰러지신 할머니를 방치할 수는 없었다. 짧은 혼란의 순간을 벗어나 우산을 내팽개치고 할머니의 팔을 잡았다. 그 와중에도 마스크를 제대로 고쳐 쓰고 있었다.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이 무의식적으로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할머니는 잘 일어나지 못하셨다. 두 손으로 부축을 해도 정신이 없으신 듯 계속 바닥에 누우셨다. 비는 더 세차게 나와 할머니의 얼굴을 때렸고 온 몸을 적셨다. 다시 우산을 집어 들고 할머니를 부축했다. 할머니는 신음을 내뱉었다. 광대에 빨갛게 까진 상처가 보였다. 온몸으로 할머니를 부축해 집이 어디신지 물었다. 할머니는 말을 잘 못하셨다. 어떻게 해야 하나. 비를 피할 수 있는 관리사무소로 이동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집이 어디시냐고 재차 물었다. 겨우 대답을 들을 수 있었고, 다행히 할머니는 집을 기억하셨다. 100m 앞에 있는 아파트였다. 양 팔을 부축하여 13층의 댁까지 모셔다 드렸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할머니는 상처가 난 얼굴이 쓰라리신 듯, 신음을 내뱉으셨다.
"할머니! 댁에 아무도 안 계세요?"
며느리가 어딘가에 있다고 하셨다. 다치신 할머니를 두고 가기가 뭐해 집을 둘러보았고, 포스트잇에 붙어있는 전화번호를 찾았다. 전화를 거니 며느리가 받는다. 할머니께서 다치셨다고, 길을 걸으시다가 앞으로 고꾸라지셨다고 하니 당장 오시겠다고 한다. 10분 후 며느리 분이 오셨다.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셨고 뻘건 상처가 쓰라린 듯 광대를 자꾸만 만지셨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고 밖으로 나왔다. 그 와중에도 코로나에 대한 걱정이 떠나질 않았다.
코로나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 노쇠한 할머니가 바로 앞에서 쓰러지셨다면 비가 오던 눈이 오던 거두절미하고 달려가 부축을 했을 테다. 내가 나 자신에게 놀랐던 건 쓰러지는 할머니를 바로 앞에서 보고도 코로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즉시'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거다. 때문에 할머니는 몇 초간 비를 맞으며 바닥에 엎드려 계셨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마음의 사회적 거리두기까지 만들어 낸 것일까. 코로나 앞에서 타인을 향한 우리의 마음은 어디까지 거리를 두어야 할까.
지하철과 버스 정류장에서 마스크로 인한 싸움이 벌어진다. 뉴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재난재해와 기후 이상 변화, 코로나, 자살, 살인, 강간, 인종차별, 혐오에 관한 기삿거리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 기사들을 볼 때마다 한없이 연약한 인간의 존재에 대해 생각한다. 인간이 만들어 낸 문명세계가 하늘에 닿을 듯 높고 우러러 보인다 한들, 몰아치는 대자연의 입김 앞에선 오글오글 떨 수밖에 없는 존재가 인간이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더 함께 연대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몸은 거리를 둘지라도, 타인과 이웃을 향한 마음만큼은 열어둬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로 인해 꽁꽁 얼어붙은 우리의 마음이, 시간이 지나 따듯한 빛을 받게 되었을 때 온전히 녹아내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