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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Sep 09. 2020

#38. 아프리카의 치과 환자들

인생이 다 그렇지 뭐


 말라위에서 생활한 지 3개월 차, 이틀에 한 번씩 물과 전기가 끊긴다. 보통 4~5시간씩 끊기고 심하면 일주일씩 끊기기도 한다. 정작 전기와 물이 가장 필요한 활동시간엔 들어오지 않다가 전혀 필요하지 않은 시간 - 새벽 2시부터 5시 정도 - 에 물과 전기님이 살짝쿵 들어왔다 곧바로 다시 나가신다. 따라서 오후 6시만 되면 집안에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온다. 


보통 촛불을 켜고 생활을 하는데 이미 문명세계의 편리함에 찌들어버린 나로선 전기 하나 없는 것이 이리도 고통을 안겨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컴퓨터도 안되고, 핸드폰도 배터리를 아껴야 하니 할 수 없고, 한석봉 마냥 눈을 감고 글을 쓸 수도 없고, 촛불을 켜고 책을 읽자니 눈이 침침하고. 할 수 있는 것이 도무지 없단 말이지. 어둠 속에서 촛불을 하나 둘 켜놓고 같이 살던 사람들과 밥을 먹다 보면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귀로 들어가는지 잘 보이진 않다만 촛불이 주는 조선 갬성과 잔잔- 하게 틀어놓은 째즈가 나름의 낭만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전기가 일주일 간 끊기면 집 안에도 대참사가 일어난다.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이 상하고, 녹고, 냄새나고, 다 버려야 하고. 발전기를 쓰면 되지 않아?라고 물을 수 있지만 이곳은 말라위다. 발전기가 없어서 못 쓰는 게 아니라 있어도 안 먹히는 게 문제. 정말 쉽지 않은 곳이었다.


그렇다고 또 맘 놓고 씻을 수 있느냐 물으신다면, 그 또한 미리 받아놓은 물로 여럿이 나눠가며 씻어야 하기 때문에 쉽지만은 않다. 받아놓은 물이 차갑게 식어버릴 때 샤워를 한다면 그것 또한 엄청난 고행. 말라위는 참고로 일 년이 건기(4-12월)와 우기(1-4월)로 나뉘는데 건기, 특히 6-8월에는 아프리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춥다. 말라위에 처음 와서 패딩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더워 죽겠는데 패딩을 입는다고..? 그로부터 정확히 두 달 후 패딩을 구하러 다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튼 그렇게 추운 날씨에 전기와 물이 쌍으로 끊겨 이미 식어버린 찬 물로 샤워를 한다면... 그래서 잘 안 했다.


말라리아는 또 왜들 그렇게 많이 걸리는지. 에이즈에 감염된 국민들도 10%가 넘을 정도고, 총과 칼을 든 떼강도들이 가끔 한인들을 상대로 출몰해 총구를 머리와 입 구녕에 집어넣고 돈을 내놓으라고 한단다. 이곳에 계신 선교사님 몇몇 분들은 그런 경험이 실제로 있으셨고, 머리도 깨지고, 팔도 반쯤 잘려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시기도 했다. 아니 이런 이야기들을 왜 처음에 해주시지 않고....


그렇게 당하고 나서도 계속 같은 자리에 머무르시며 본인의 역할을 꿋꿋이 감당하시길 5년, 10년째. 그분들을 통해 고아인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으며,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가는 모습을 보니 존경이 우러러 나왔다. 





나는 병원으로 출근을 했고 환자들을 돌봤다. 처음에는 발치(Extraction) 환자 위주로 했으며 시간이 지나자 수복치료(Restorative treatment)와 근관치료(Endodontic treatment)를 주로 맡게 됐다. 보철치료(Prosthetic treatment) 환자는 많지 않았다. 크라운이나 금을 씌우기에는 환자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부족했고, 조금만 문제가 있어도 발치를 해달라고 찾아왔다.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치아를 뽑아버린다는 게 안타까워 병원장의 협조를 구하고 살릴 수 있는 치아를 최대한 살렸다.



oral squamous cell carcinoma

몸이 어느 정도 적응을 했을 때 구강악안면외과(Oral and maxillofacial surgery) 환자를 치료하는 시니어를 어시스트 하기 시작했다. 일전에 썼다시피 내가 배운 구강악안면외과의 케이스들은 주로 책과 영상으로 본 것들이다. 이곳은 책과 영상에서만 존재하던 환자들이 실재하는 곳이었다. Abcess, Tumor를 가진 환자들은 기본이었고,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당시 기록을 해두었던 환자들의 케이스는 Squamous cell carcinoma, Cancrum oris(noma), Necrotizing gingivostomatitis 등의 환자들이 있었다. 



내가 잘 아는 분야도 아닐뿐더러 실습을 해본 적도 거의 없다. 우리나라든 필리핀이든 캐나다든 미국이든 이런 환자들은 치과의 주된 케이스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치과진료는 끽해봐야 레진, 인레이, 신경치료, 크라운, 임플란트, 교정 등이지만 아프리카는 구강악안면외과의 케이스가 주를 이루는 메인이라고 한다. 물론 개인병원과 국립병원은 차이가 있다. 어느 나라던 특별한 사명감이 있지 않은 이상 이런 환자들을 메인으로 보려 하는 치의는 많지 않다. 미국 국시를 준비하는 친구에게 우리가 책으로만 봤던 환자들이 이곳에 있다고 하니 미국에서 절대 볼 수 없는 환자들이라며 나를 부러워했다. 


잘 사는 나라인만큼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고, 치료를 즉각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된다. 말라위의 상황이 아프리카의 모든 나라를 대변할 순 없지만 많은 아프리카의 나라들이 이런 환경을 가지고 있지 않다. 병원을 가려면 7시간을 차로 달려야 하는 환자, 심지어 나귀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병원 한번 가는데 7시간이 걸리니 차라리 안 가게 된다. 일을 하루라도 하지 않으면 먹고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지고 있는 병이 초기라고 하더라도 그대로 방치하는 사람들이 많고, 10년, 20년, 30년 치료를 받지 않고 통증과 함께 살기에 얼굴의 반이 종양으로 땡땡 붓는 환자들까지 생긴다.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서든 올 텐데 그것조차 쉽사리 알지 못한다. 핸드폰은커녕 와이파이도 없고, 전기도 통하지 않는 외딴 마을에서 7시간이 넘게 걸리는 병원까지 찾아오기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은 얼굴에 천을 두르고 병원에서 대기를 하고 있다. 악화된 바이러스가 자신의 얼굴과 몸을 망가뜨렸다는 걸 가리기 위해 천을 두른다. 가만있어도 흘러나오는 노란 고름 사이로 이들의 눈물이 떨어지는 걸 나는 자주 봤다. 이들 앞에 내가 감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들의 공허한 눈은 이미 놓아버린 희망을 말하고 있었다. 말로 할 수 없는 무력감이 자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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