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다 그렇지 뭐
강도에게 당한 트라우마는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어두운 곳은 가지 못했다.
컴컴한 곳에 들어가면 갑자기 칼이 튀어나오고 누가 허리를 잡을 것만 같았다. 그날 밤을 생각하면 등골에서 소름이 올라왔다. 일부러 그런 시간 때와 장소를 피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면 아무것도 없는 평지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날이 어둑해지기 시작하면 집으로 들어갔다. 두 달 간을 아무 생각 없이 지냈다.
그날도 나는 일과를 마친 후 밖으로 나와 평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몽실몽실 피어오르던 구름, 파란 하늘. 배가 고파졌다. 앞에 보이는 Kfc를 들어갔다. 치킨을 먹고 밖으로 나오니 평소 자주 보이던 Homeless 아이들이 빈 물통들을 들고 돌아다녔다. 그중 한 아이에게 와보라고 했다. 그 빈 물통들로 뭘 할 거냐고 물었다. 아이는 하나의 물통을 팔면 100원을 벌 수 있다고 했다. 자기에게 3개가 있으니 300원을 번다고 했다. 나는 그 돈으로 뭘 하고 싶냐고 물었다. 아이는 오늘 먹을 시마(옥수수를 가루로 내어 만든 주식)를 사 먹는다고 했다. 오후 4시가 된 시점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Kfc를 가리키며 저곳에 가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아이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100미터 앞에 신호 대기를 하고 있는 차에 구걸하고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아이를 불렀고, 이리 와보라고 했다. 아이는 달려왔다. 밥을 먹었냐고 물으니 안 먹었다고 했다. 이 아이 두 명을 데리고 Kfc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 낯선 시선은 아이들에게 여긴 니들이 올 곳이 아닌데,라고 말하는 듯했다. 내가 위축되면 아이들 또한 위축될 터였다. 아이들에게 어깨를 쫙 피고, 당당하게 들어가라고 했다.
일전에 병원에 온 어떤 환자에게 레진 치료를 덤으로 해준 적이 있다. 환자는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본인이 kfc에서 매니저로 있으니 언제든 오면 잘해주겠다고 했다. 그 사람이 생각났다. 나는 사람들의 낯선 시선을 뒤로하고 직원에게 매니저를 불러줄 수 있냐고 물었다. 매니저가 바로 나왔다. 나를 기억했고 잘 왔다며 반겨줬다. 아이들에 대한 설명을 하고 이곳에 아이들을 데려와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혹여나 손님들에게 컴플레인이 나오는 것에 대한 대비책이었다. 매니저는 매장의 눈치를 조금 보더니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뭘 먹고 싶냐고 물었다. 치킨을 골랐다. 잠시 후 노릇노릇 튀겨진 가슴살과 닭다리가 나왔다. 아이들은 치킨을 보고 멀뚱멀뚱 앉아있었다. 진짜 먹어도 되냐는 듯이. 나는 얼른 먹으라고 했고 아이들은 꼬질꼬질한 손으로 닭다리를 집어 케첩에 찍어먹었다. 아이들의 이름은 조셉과 지악이었다. Kfc 안에는 이들 또래가 많았다. 각자 부모님과 함께 닭다리를 뜯고 있었다. 외국인이 Homeless인 아이들과 함께 앉아있으니 들어올 때부터 따라왔던 사람들의 시선이 고정됐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가 궁금했나 보다. 아이들은 영어를 못했다. 대충 눈짓 발짓으로 대화했다.
밥을 먹고 밖으로 나왔다. 지악이 오늘 번 돈은 200원이었다. 나는 그걸 밥값으로 달라고 했다. 아이는 망설였다. 안 줄 거야? 아이는 고민했지만 밥을 얻어먹었으니 줘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꼬깃꼬깃 구겨져있는 200원을 내 손에 쥐어줬다. 웃음이 났다. 다시 돈을 돌려주며 괜찮다고 했다. 장난이었다고. 조셉과 지악은 따라 웃었다. 아이들은 12살, 13살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매주 토요일이 되면 아이들을 만났다. 난지리에 가서 진료도 못하니 남는 시간에 아이들 맛있는 거나 사주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더 많은 아이들이 보였다. 조셉과 지악 두 명의 아이들을 kfc로 데려갈 때면 멀리서 이 아이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지켜보는 다른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그 시선을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다며 모른 척했다. 모든 아이들을 감당할 순 없었다. 그러나 그다음 주가 됐을 땐 조셉과 지악 옆으로 다른 아이들이 삐쭉거리며 서있었다. 아이들은 눈빛으로 공격했다. 나는 그 공격을 감당할 내공이 부족했다. 결국 삐쭉거리며 서 있던 아이들 6명을 데리고 kfc로 들어갔다. 우르르 몰려들어가니 사람들이 또 쳐다봤다. 이제 그런 시선에는 익숙했다. 아이들을 자리에 앉히고 한 두 명씩 손을 씻고 오게 했다. 비누를 묻혀 깨끗이 씻고 오라고 일러줬다. 남자아이들이 손을 씻을 땐 땟국물이 뚝뚝 떨어졌다. 마음이 아렸다. 흙먼지를 가득 뒤집어쓴 아이들은 얼굴에도, 손과 다리에도 거뭇거뭇한 때가 가득했다.
손을 깨끗이 씻기고 자리에 앉았다. 한 명 한 명 이름을 물었다. 아이들은 쭈뼛거렸지만 옆에 친구들이 있으니 크게 낯설어하지 않았다. 치킨을 버켓으로 시켰다. 명당 두 개씩 나눠주니 소리를 지른다. 아이들 중 누구도 kfc를 와본 적이 없었다. 아이들은 치킨을 먹고 나면 다시 물통을 주웠고, 팔러 다녔다. 추운 날이면 길거리 풀 숲에서 모닥불을 피워 그 옆에서 잠을 잤고, 9살인 아이가 2살짜리 아이를 업어 키우기도 했다. 한 무리의 아이들은 서로 똘똘 뭉쳤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했다. 세상 사람 누구도 이 아이들을 거들떠보지도, 신경 쓰지도 않았다. 이 땅에서 그렇게 하기엔 그 수가 너무나 많았다. 별 것 아니지만 나라도 이곳에 있는 동안 아이들에게 치킨을 사주자고 생각했다. 매주 토요일을 기대 가득한 날로 만들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