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다 그렇지 뭐
6명이 모이던 아이들을 몇 주가 지나자 금세 10명으로 늘어났지만 서로 대화를 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아이들은 영어를 배우지 못했다. 나는 치킨을 먹은 후 영어를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매주 현지인 친구를 불러 통역을 부탁하고 영어를 가르쳤다. 활동을 시작하니 이 아이들에 관심 있는 한국 엔지오 친구들도 같이 와서 도움을 주었다. 한 주에 한 번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힘들었다. 단어를 외우게 시키고, 간단한 문법을 알려줘도 아이들 스스로가 복습하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으니 효과가 나질 않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이들은 배운걸 금세 까먹었고, 다음 주면 같은 내용을 다시 알려줘야 했다. 그러나 효과는 없을지언정 아이들이 토요일을 기대하는 모습, 그 시간에 모여 치킨을 뜯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영어 공부까지 마친 후 아이들은 각자 집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돌아갔다. 나는 아이들의 저녁 시간이 궁금했다. 아이들은 쌀쌀한 이 밤을 어떻게 보낼까. kfc 앞에는 널따란 공용주차장이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사람들은 kfc 외에 있는 다른 음식점에 들르거나, 커다란 슈퍼마켓을 들렸다. 아이들은 사람들이 볼 일을 다 본 후 차를 몰고 나가는 길목에 서있었다. 차가 신호에 걸려 잠시 멈춰있을 때 창문을 똑똑- 두드리고 9살 아이에게 업힌 2살 아이를 보여주며 구걸했다. 어떤 차는 무시했고, 어떤 차는 창문을 열어 물병 같은걸 땅바닥에 던졌다. 아이들은 물병을 주웠고 다시 또 손을 내밀어 더 줄게 없는지 눈으로 물었다. 돈을 내주는 사람들은 적었다. 이런 아이들을 어디서든 볼 수 있다 보니 사람들의 마음이 무뎌진 게 아닐까 생각했다.
몇 시간을 그렇게 구걸하던 아이들은 차가 없을 때면 도로 옆에 펼쳐진 잡초 더미에서 덤블링을 하며 놀았다. 어떤 아이는 불을 피우기도 했고, 어떤 아이는 2살 애기의 코를 닦아주었으며, 어떤 아이는 가만히 앉아 밝은 불빛의 가게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또래 아이를 바라보고 있기도 했다. 좀 더 쌀쌀해지면 아이들은 모닥불 주위로 몰려들었다. 우리가 캠프파이어를 하듯 아이들도 모여 앉아 불을 쨌다. 타오르는 불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간혹 웃었으며 등에 맨 아기가 울먹이면 포대기로 감쌌다. 시간이 늦어져 나는 집으로 들어갔다. 저녁 10시가 되고, 새벽이 되었을 때 아이들의 모습이 신경 쓰였다. 한국의 겨울만큼은 아니지만 두꺼운 잠바를 입어야 할 만큼 추운 밤에 아이들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나는 '조소'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멀리서 내 뒷모습을 보고 달려와 손을 꼭 잡았던 날을 기억한다. 고사리 같았던 작은 손이 내 손을 비집고 들어와 따듯하게 잡아주었던 손은 어떤 깊은 감동보다 진했다. 페이스북을 켜 오랜만에 조소의 사진을 봤는데 그때 그 아이의 손을 생각하며 썼던 편지가 있었다. 아이는 잘 살고 있을까.
이름은 조소(Joso), 10살의 여자아이.
네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니. 환하게 웃는 너의 그 미소 뒤엔 나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눈물과 아픔, 쓰라림이 가슴 깊숙이 차 있다는 걸 안다. 꼼지락대는 동생의 두 손에 큼지막한 빵을 먼저 쥐어주는 너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니. 하루 종일 똑같이 못 먹었음에도, 빵을 보고 허겁지겁 달려드는 네 오빠들과는 달리 너보다 더 어린 동생을 먼저 챙기는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이니. 아직 엄마 품에 안겨 이것저것 사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간들거리는 눈웃음을 치며 애교를 부릴 나이에 너는 너보다 더 어린 동생을 감당하느라 벌써 어른이 다 되었구나. 네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등에는 아이를 업고 두 손은 남들에게 내밀고 있는 너의 모습을 힐끗 쳐다보며 웃고 지나갈 때 너는 어떤 마음이니. 세상을 원망하니. 너를 버리고 떠난 아비를 원망하니. 아님 옆에 있는 네 어머니를 원망하니.
그럼에도 용기 잃지 않고, 내게 몰래 다가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손을 조심스레 잡아주는 너의 마음이 고마워 나는 목젖이 묵직해진다. 가슴 한켠이 또 따듯해진다. 혹시 더러운 것이 손에 묻지는 않았을까, 하고 네 손을 잠깐이지만, 꽉 잡아주지 못한 것이 부끄럽더라. 부끄러운 마음에 다시 네 손을 잡았을 땐 더 꽉 잡아주었지. 달도 별도 없는 밤이었다. 그 밤에 나는 너의 회색 먼지로 얼룩진 볼에 흰 눈물자국이 오솔길처럼 나 있는 걸 보았다. 어떤 일이 있었니. 너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기에, 행복할 때도 있고, 화가 나기도 하고, 창피함과 부끄러움을 아는 같은 사람이건만, 아니 어쩌면 더 감수성 깊은 소녀 이건만, 다른 이들은 너의 감정 따위는 마치 무시해도 좋다는 듯 너에게 함부로 대하더구나. 그래서 그날 밤은 그렇게 서글픈 눈을 하고 나를 바라봤던 거니. 내 손을 잡아주었던 거니.
미안하구나.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돼서. 너의 감정을 전부 이해하고 공감할 순 없을지라도, 네가 내 손을 잡아줄 때면 함께 해주고 싶다. 옆에 같이 있어주고 싶다. 순수한 네 눈빛을, 어려운 상황 속에도 자신보다 동생을 먼저 챙기는 그 착한 마음을, 잃지 않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