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골대 용접을 마무리하고 운동장에 설치를 하고 있는데 비가 슬금슬금 내리기 시작했다. 그물까지 골대에 씌워야 해서 옮긴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그물은 의외로 씌우기가 힘들었고 인부들과 한참을 낑낑댔다. 그 사이 비는 점점 더 많이 왔다. 계속하다간 몸이 쫄딱 젖을 것 같았다. 비가 많이 올 때는 잠시 쉬고, 비가 그치면 다시 나와 그물을 씌웠다. 그렇게 운동장에 설치하고 그물까지 씌우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프로젝트 하나가 정말로 끝난 것이다. 이젠 집에 가서 휴식을 취하면 됐다. 그간 고생한 나에게 상이라도 주고 싶었다. 날은 벌써 어둑어둑해졌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집에 돌아오니 밤 9시가 되었다.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뻗었다.
다음 날 일어났는데 머리가 띵- 한 느낌이 있었다. 뭐지 이거. 대학생 때 뎅기열에 걸린 적이 있다. 그때 조금 심한 감기가 걸린 듯 아닌 듯 쎄-했던 느낌이 생각났다. 비에 맞아서 감기에 걸렸나? 별 것 아니겠지 하고 다시 잠을 잤다. 3시간 정도를 잤을까, 일어났는데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팠다. 왜 이래 이거? 뭐지?
머리를 조금만 옆으로 흔들어도 높은 망루에서 뎅뎅거리는 종처럼 두개골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진 것 같았다. 팔과 다리에는 소름이 돋아있었다. 날이 춥나? 하고 커튼을 열어보니 햇빛이 쨍하게 내리고 있다. 전혀 추운 날씨가 아닌데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갑자기 오한이 찾아왔다.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고 치아가 덜덜덜 부딪혔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오한이 나를 둘러쌌다. 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들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 같았다. 추락하다가도 다시 위로 솟구쳐 올랐고 좌 우 양 옆으로 뛰어다녔다. 눈동자는 이를 따라갈 수 없었다. 따라갈라치면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당장 그 자리에서 쓰러질 것 같았다. 오한과 어지러움을 느끼는 동시에 구토가 나왔다.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통에 머리를 처박고 어제 먹은 음식물을 모조리 쏟아냈다. 그럼에도 속이 완전히 개워지지 않았다. 손을 목구멍에 집어넣어 다시 쏟아내기를 반복했다. 그 후에는 설사가 나왔다. 위와 밑으로 모든 것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구토와 설사는 반복됐고 소변을 볼 때 빨간색 소변이 흘러나왔다. 피였다. 변기 물이 빨간 피로 물들었다. 알 수 없는 고통이 나를 끌고 갔다. 어디로 끌려가는지 모르는 채 몸을 두고 정신이 붕 떠올랐다. 육체와 정신은 합쳐지지 못했다. 저 멀리 어딘가로 끌려가는 정신은 침대에 나자빠져있던 육체를 보았다. 껍데기밖에 남지 않은 육체는 정신을 잃고 있었다.
옆 방에는 네덜란드에서 온 소아과 의사 폴라인이 살고 있었다. 마침 그 날이 본국으로 출국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내게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방 문을 두드렸다. 내가 답이 없자 문을 살포시 열었고 쓰러져있는 나를 발견했다. 조르바 무슨 일이야? 어디 아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을 할 수 있는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폴라인은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알아챘다. 잠시 기다리라고 말을 하더니 몇 분 후 말라리아 진단키트를 사 왔다. 그녀는 진단키트의 사용법을 읽고 내 피를 뽑았다. 느낌으로 말라리아라는 걸 알아채고 진단을 했다. 곧 키트에 빨간 두 줄이 나왔다. 나는 이게 말로만 듣던 말라리아라는 거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아, 이게 말라리아였어? 아.. 말라리아.. 아프다. 너무 아프네.
말라리아 확진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머리칼과 몸통은 온통 식은땀으로 젖어있었다. 나는 오들오들 떨며 이거 뭐야..? 왜 이렇게 아파..?라고 물었다. 폴라인은 내가 말라리아에 걸린 것 같다며 옷을 벗기고 적신 손수건을 가져와 몸을 닦아줬다. 그러나 그녀는 곧 비행시간이 다 되어 떠나야 했다. 나는 친했던 폴라인과의 마지막 헤어짐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에 짜증이 났다. 그러나 짜증도 낼 수 없었다. 온몸에 힘이 빠졌을 뿐이다. 나는 혼자 알아서 해보겠다며 그냥 가라고 했다. 공항까지는 먼 거리였다. 그녀는 그냥 갈 수 없다며 캐나다에서 놀러 온 내 친구 제니를 불렀고, 결국 아픈 상태에서 폴라인과 작별인사를 했다. 눈물 없이는 차마 볼 수 없는 드라마도 아니고 이게 뭐야, 친한 친구의 마지막을 이렇게 보내다니. 폴라인은 골골대고 있는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안아주고 공항으로 갔다. 폴라인에게 잘 가라고 했다. 돌봐줘서 고맙다고, 괜찮아지면 연락을 하겠다고.
제니는 폴라인이 사 온 말라리아 약을 먹여주고, 나를 돌봐줬다. 약을 먹은 후 잠에 깊이 빠져들었다. 다시 일어나니 어두컴컴한 저녁이었다. 몸은 한결 괜찮아진 듯했다. 아까처럼 깨질 듯이 머리가 어지럽거나 춥지는 않았다. 띵한 느낌만 있을 뿐. 제니는 안보였다. 내가 잠들어있으니 볼 일을 보러 간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가 고팠지만 뭘 해먹을 힘이 없었다. 옆에 보니 제니가 죽을 만들어 놓은 게 보였다. 고마웠다. 죽을 먹었지만, 먹자마자 설사를 했다. 다시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속이 더부룩하고 매스꺼움이 자꾸 일었다. 구토가 나올 것만 같았다. 침대에 누운 채로 바닥에 구토를 했다.
다시 추워지기 시작했다. 약빨이 떨어진 것 같았다. 주위가 급속도로 추워졌다. 몸이 다시 덜덜덜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가지고 있는 옷을 모두 껴입었다. 반팔, 반바지, 긴팔, 긴바지, 잠바, 패딩 껴입을 수 있는 모든 걸 껴입고 이불을 덮었다. 그럼에도 오한은 여전히 내 몸을 감쌌다. 이불속에서 다시 덜덜 떨었고,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아플 때는 절대 이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 체온을 떨어트려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옷을 벗으면 추위에 떨다 죽을 것 같아 그러질 못했다. 그저 이불 밑에 웅크리고 누워 덜덜덜덜 떨고 있을 뿐이었다. 숨이 가빠졌고 호흡이 짧아졌다. 나중에는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
이렇게 죽는 건가? 사람이 이렇게 아플 수가 있을까? 뎅기열에 걸렸을 때도 죽을 것 같이 아팠는데, 말라리아는 상상을 초월했다. 정신과 육체가 각각 분리된 것 같았다. 정신이 정신이 아니었고 육체가 육체가 아니었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있는 곳은 어디인가, 죽는다면 어디로 가게 되는가, 나는 어디로 가게 되는가. 죽음이 눈 앞에 있는 느낌이었다. 죽음, 죽음이란 무엇일까.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정말 죽겠지. 죽으면 어떻게 될까. 죽으면 어디로 갈까. 이런 생각들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한참을 그렇게 이불 밑을 파고 들어가 떨고 있는데 제니가 들어왔다. 제니는 들어오자마자 이불을 치웠고, 이런 상태로 있으면 안 된다며 잠바를 벗겼다. 나는 너무 춥다며 도저히 벗을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다. 벗으면 죽을 것 같았다. 체온을 재니 열이 40도까지 올랐다. 제니는 당황했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누군가 부를 사람이 없냐고 물었다. 나는 최선교사님에게 전화를 걸라고 말했다. 최선교사님은 한달음에 달려와주셨고 방에 들어오자마자 내 옷을 하나씩 강제로 벗기셨다. 나는 오한에 떨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말을 따랐다. 제니와 선교사님은 땀에 온통 젖은 내 몸을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시며 돌봐주셨다. 시간이 좀 지난 후 병원으로 데려가 다시 검사를 했다. 이상하게도 첫 번째 병원에서는 말라리아가 아니라고 나왔다. 우리는 다른 병원으로 갔다. 그제야 말라리아라고 확정을 받고 입원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말라리아로 죽는 경우 초기에 대처를 잘하지 못해 죽는 경우가 많다. 24시간 이내에 대처를 잘해야 하는데 그 시간을 넘겨버리면 위험해지는 것이다. 나도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심각한 상황으로 빠졌을 수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어떤 엔지오 단원 중 한 명은 초기 대응을 잘 못해 부분 기억상실증에 걸렸고 부모님까지 아프리카에 오셔서 마지막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까지 들었다. 이분은 병원에서 바로 진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진이 두 번이나 났었다. 때문에 말라리아가 아닌 그냥 감기라고 착각을 해 감기약을 먹으며 3일을 버텼지만 열이 점점 오르고 오한이 심해져 단순 감기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사람들은 이분을 데리고 다른 병원을 갔고 그제야 말라리아라고 판명이 났다. 그 후 이분은 헬기를 타고 말라위가 아닌 더 큰 병원이 있는 남아공으로 이송되어야 했으며 그곳에서 치료를 받았다. 치료를 받고 나서도 부분 기억상실증과 트라우마로 힘들어하셨다고 들었다. 자칫 잘못하면 목숨까지 잃을 정도로 초기대응이 중요하다. 다행히 지금은 건강을 되찾으셨다고 한다.
나 또한 5일간 병원에 입원했었지만 주사를 맞고 약을 먹으니 차츰 건강을 회복해갔다. 끔찍한 시간이었다. 사람이 그렇게 아플 수가 있을까. 정말로 죽음을 보는 것 같았다. 강도의 칼이 떨어지는 순간의 죽음과는 또 다른 차원의 죽음이었다. 오한이 사라지고, 구토와 설사가 멎고,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병원 밖의 일상적인풍경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다. 건강이 이렇게나 중요한 것이었다니. 새 생명을 되찾은 느낌이었다. 도서관 완공을 잘하고이렇게 아플 줄 누가 알았겠나. 아프리카는 마지막까지 정말 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