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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Sep 28. 2020

#53. 안녕 말라위

인생이 다 그렇지 뭐


 말라리아에서 완전히 회복하는 데는 1주일 정도가 걸렸다. 그렇게 아프던 몸이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으니 신기하게도 금방 나았다. 회복을 하고 마을 봉사를 더 다녀왔다. 기존 치료가 끝나지 않았던 환자들을 치료해야 했기에 몇 주의 시간을 더 써야 했다. 


어느덧 말라위에 머문 지 1년이 지났다. 계약기간이 만료된 친구들도 하나 둘 고국으로 돌아갔다. 누군가는 미국으로, 누군가는 네덜란드로, 누군가는 한국으로. 아직 말라위에 남아있어야 하는 친구도 있었다. 다들 떠나고 난 빈자리를 바라보며 느껴지는 헛헛함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  머나먼 아프리카 땅에서 만난 인연들이 참 많았다. 어떤 상황을 계속 겪게 되면 그 상황이 익숙해질 법도 한데 먼 이국 땅에서의 헤어짐은 항상 낯설게 다가왔다.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할 때 묵직하게 내려앉은 공기는 우리의 시선을 자꾸만 아래로 끌어당겼다. 다음을 기약하며 또 보자고 해도 발걸음은 쉽게 떼어지지 않았다. 친구들이 다 떠나고, 다음은 내 차례였다. 떠나는 시점에 맞춰 모든 활동을 마무리지었다.


먼 미래에 나이가 들면, '아프리카에 가서 봉사를 해야지'라고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 생각이 이렇게나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었다. 계획에도 없던 아프리카 종단이라는 목표가 생기고 이 대륙에 발을 디딘 15년 12월, 이집트를 통해 들어온 이곳에서 어느새 1년 2개월이란 시간을 보냈다. 언제 1년이란 시간이 흘러갈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외로움에 지치기도 했고, 외국인은 무조건 돈이 많기 때문에 더 내야 하고, 더 줘야 한다는 몇몇의 얼토당토않은 요구에 정이 뚝 떨어지기도 했었다. 기나긴 역사 속 인종차별의 아픔이 있는 사람들에게 역으로 인종차별을 당할 때면 화가 부글부글 끓기도 했다. 강도에게 당했을 때와 말라리아에 걸렸을 때는 죽음을 맛보았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트라우마가 생기고 더는 이 고생을 하기 싫어 당장에라도 한국에 돌아간다는 마음을 먹기도 했다.


한 마디로 이곳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지탱해줬던 힘은, 병원을 오지 못하는 이들을 찾아 치료를 해줬을 때 받았던 그들의 마음이었다. 우리에겐 아무것도 아닌 마음이 듬뿍 담겨있던 사탕수수, 손을 꼭 잡아주며 미소를 보내오는 감사가 담긴 눈빛, 축구공 하나에 마을 사람 전부가 나와 소리를 지르고 좋아하고 행복해하던 하나하나의 모습들이 나를 이곳에서 버틸 수 있게 한 원동력이지 않았나 싶다. 어차피 내가 치의학을 전공한 이유는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나중에 겪을 일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미리 겪어봤으니 다시 왔을 때는 조금 더 숙련된 모습으로 일을 진행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나를 버티게 했다. 


쉽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것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평화롭고 여유로운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은 우리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누구 하나 급하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나와 누군가를 비교하지도 않았으며 화려한 페르소나를 쓸 필요도 없었다. 일을 하지 않을 때면 여유롭게 책을 읽고 깊은 공상에 빠졌다. 울프가 말한 사고의 낚싯줄을 흐름 속에 깊이 담갔다. 온전한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마음을 썼다. 그렇게 바쁘게만 살던 현대인의 삶에 여유가 찾아왔고,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편하게 살고자 하면 한없이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이 땅이다. 나는 불편함을 끊임없이 가져왔던 것 같다. 일을 만들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들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내가 여기서 배운 것은 이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선의를 가지고 어떤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다 보면 꼭 문제가 생긴다. 그 문제를 잘 조율하고 풀어나가다 보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 어떤 일은 누군가에겐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누군가에겐 심적/육체적 아픔이 사라지는 일일 수 있다. 


이 생의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건 대다수의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다. 나도 편안함을 바란다. 걱정 없이 먹고 자고 놀고 화려하게 보여지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들 때면 세상을 돌아다닐 때 보았던 사람들이 눈에 밟힌다. 작은 것 하나에 감사해할 줄 아는 사람들, 보여지는 것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중히 여기는 사람들, 우리의 당연함이 그들의 당연함이 되지 않기에 고통받는 사람들, 아무런 연고 없이 세상에 던져져 희망을 품을 수조차 없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눈에 밟힌다. 


세상을 보는 것만큼, 경험한 만큼 우리의 가치관은 형성된다. 돈에 대한 가치가 제일이라고 믿는 사람은 돈을 위해 살고 돈을 위해 죽는다. 그의 모든 세상은 돈으로 돌아간다. 사람을 돈으로 보고, 얼마를 버는지로 평가한다. 한 때 나도 그런 사람이 될 뻔한 적이 있다. 내가 가슴 깊이 느끼고 내 안의 무언가가 꿈틀거리게 만들어줬던 작가들이 하는 말에 비해 세상은 너무나 냉혹했다. 그런 가치는 온데간데없고 모든 게 돈으로 귀결되는 세상에 대해 나는 회의를 느꼈다. 회의는 곧 비관과 냉소로 이어졌다. 




그러나 먹고살려면 돈을 벌어야 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 돈이란 걸 먼저 알고 싶었다. 책장 깊숙이 먼지가 켜켜이 쌓여있던 로버트 기요사키의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 날부터 그의 책에 빠져들어 전부 읽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었고, 그 사회에서 살려면 돈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돈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는 학교와 정부는 우리가 부자가 되는 걸 막고 있었다. 기요사키는 책을 통해 우리가 금융지식을 쌓고 돈을 공부하다 보면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강조했다. 아, 내가 지금까지 잘못 살고 있었구나! 내가 가진 마인드는 부자가 될 수 없는 마인드였구나! 마인드가 바뀌기 시작했다.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 나도 부자가 될 수 있구나. 나도 화려하게 살 수 있구나! 그때부터 내 손에 들린 책은 카프카나, 소로우가 아닌 돈에 관련된 책이 되었다.


카프카나 소로우가 주장하는 내용은 돈이 되질 않았다. 이반 일리치가 '우리를 쓸모없게 만드는 것들'에 대해 아무리 설파하더라도 그건 돈이 되는 내용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래서 그게 밥 먹여주나?라는 걸 묻는 나를 발견했다. 누구를 소개받더라도, 그 사람은 뭘 하는 사람인데? 많이 벌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모든 정신 회로가 돈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이 회로를 가진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서울의 지리를 모두 꿰차고 있고, 어디 아파트가 얼마인지 바로바로 튀어나오는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이 사람들이 인생의 정답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 또한 이 정답을 가지고 살다 보면 언젠가 부유해질 것이고, 그 부유해진 돈으로 편안한 일생을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정답이 아니었다. 돈에 묶이다 보면 자유치 못하게 됐다. 돈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과정 중에서 놓치는 가치들이 너무 많았다. 돈이 모든 가치를 결정하게 했다. 100억을 벌고 싶다는 사람에게 돈을 벌어 뭘 하고 싶냐고 물었다. 세계여행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세계여행은 가능하다고 했다. 젊을 때 세계여행을 하며 얻는 깨달음과 가치관의 형성과 나이가 들어서 하는 깨달음은 차이가 있을 거라고 했다. 그는 지금은 당분간 돈에 미치고 싶다고 했다. 힘든 삶을 살아왔으니 돈 한번 왕창 벌어 떵떵거리며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그의 생각을 존중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편안하게 살고 싶어 하기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 것은 당연할 수 있기에. 


코로나의 여파로 묶인 2030의 돈들이 몇 달 전에는 부동산으로, 최근에는 주식시장으로 몰렸다. 미디어에서도 금융교육과 경제관념에 대해 다루기 시작한다. 주변 사람들은 너도나도 부동산과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누구 하나 빠짐없이 돈이 최고라고 외친다.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됐다. 이 모든 현상을 좋지 않다고만 말할 수는 없겠다. 극단적으로 치우치지만 않는다면, 돈 외의 가치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정신적인 가치를 알 수만 있다면 돈을 공부하는 것은 매우 건강한 일이라 생각된다. 돈에 묶이는 것이 아니라 돈을 관리하고, 돈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되기만 한다면. 그러나 슬프게도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돈 외의 가치는 사라지고 돈이 전부가 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말라위를 떠나는 글을 쓰며 당시에 썼던 글을 읽으니 그때의 나와 지금 나의 가치관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조금 더 현실적이 되었으며 조금 더 속물 같은 인간이 된 것 같았다. 부끄러웠다. 내가 소중하게 여겼던 가치, 세상에 버림 당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내고 있을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나는 충분히 부유한 환경에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있었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마음만 버리더라도 팍팍하기만 한 한국 사회에서 좀 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지 않을까. 말라위에서의 경험은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고, 자산이었다. 그 가치를 잊어버리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마지막 마을 진료


With Dylane and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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