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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Sep 29. 2020

#54. 4300km를 걷는다고?

인생이 다 그렇지 뭐


 봉사가 끝날 무렵 내가 세운 계획은 남아공으로 가서 자격증을 알아보고, 쿠바로 가는 것이었다. 쿠바를 거쳐 미국의 샌디에고로 간 후 멕시코 국경에서부터 캐나다까지 4300km를 걸어서 종단하는 Pacific crest trail(PCT)에 도전할 참이었다. 남아공에서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해도 프로세스를 밟기보단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사실 말라위에서도 치과 의료 선교를 담당하셨던 K선교사님께서 앞으로 같이 일할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을 주셨었다. 나는 감사하지만 1년간의 봉사를 마친 지금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다.


PCT는 멕시코 국경의 Campo라는 국경마을에서 시작해 남캘리포니아 - 시에라 - 북캘리포니아 - 오레곤 - 워싱턴을 거쳐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까지 걷는 트레일이다. 총 4300km에 달하고 보통 5~6개월이 소요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 엄청 빠르고 잘 걷던 체코인을 만났던 적이 있다. 어떻게 그리 빨리 걸을 수 있냐는 질문에 그는 PCT에 대해 설명을 해줬고, 그 길을 걸으면 순례길은 애들 장난이라고 말했다. 그 길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땐 웬 미친놈들이 4300km나 되는 길을 걷는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PCT에 대한 강렬한 느낌은 말라위에 있는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국내에도 이 길을 걷는 누군가가 있는지 찾아보았고, 마침 4명의 한국인들이 이 길을 걷고 있는 걸 발견했다. 그들의 블로그를 하나하나 읽는데 알 수 없이 북받쳐 오르는 감동과 떨림이 느껴졌다. 그러나 젊은 패기만으로 이런 어마 무시한 길에 도전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컸다. 히말라야 한 번, 산티아고 순례길 한 번 갔다 온 경험이 전부인 나로선 4300km를 걷는다는 것이 상상이 되질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PCT에 대한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고, 이 길을 생각할 때면 몹시 흥분되었다. 나는 결국 봉사가 끝나고 PCT라는 트레일에 오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나는 말라위를 떠나 잠비아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고 빠르게 남아공까지 내려갈 계획을 세웠다. 잠비아에선 빅토리아 폭포를 보기 위해 리빙스톤이라는 마을에 들렀다. 그러나 폭포를 보기도 전에 나는 다시 앓아누웠다. 게스트하우스 1층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머리가 띵- 해지더니 체온이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말라리아에 걸렸을 때와 같은 증상이었다. 1시간 만에 열이 올랐고, 숙소 침대에 누워 덜덜 떨게 됐다. 설마 한 달만에 또 말라리아에 걸린 건 아니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증상이 너무나 비슷했다. 운도 지지리 없지.


말라리아라고 생각하니 고통스러운 건 같았지만 이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았다. 당시 나와 같이 여행을 하던 친구들이 나를 간호해줬고 병원에 데려다주었다. 병원에서 진단을 하니 역시나 키트에 빨간 두 줄이 보였다. 말라리아가 맞았다. 주사를 세 방 맞는데 너무 아파 소리를 질렀다. 고개를 떨군 채로 병원 문을 나섰다. 온몸에 힘이 빠진 채 숙소로 돌아갔다. 오한이 다시 찾아왔지만 주사를 맞고 약을 먹으니 그나마 괜찮았다. 약빨이 떨어질 때면 다시 추워졌고, 그때마다 친구들이 땀을 닦아주고 죽을 만들어주었다. 친구들은 밤새 끙끙 앓는 나를 돌아가며 간호해주었고 4~5일이 지나자 점차 회복할 수 있었다. 말라위에서나 잠비아에서나 이런 고마운 사람들 덕택에 살 수 있었다.


몸이 회복하고 휴식을 취한 후에 빅토리아 폭포를 보러 갔다. 여행하며 너무 많은 대자연을 봐왔기에 아무 느낌 없을 줄 알았는데 폭포의 웅장함은 나를 압도시키기에 충분했다. 말로 할 수 없는 경이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쫙 찢어진 입을 가진 악마가 밑에서 물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빅토리아 폭포를 본 후에 보츠와나를 거쳐 남아공에 도착했다. 에티오피아와 케냐에 비해 남쪽으로 갈수록 여행하기가 수월했다. 포장도로도 깔려있고 윗 나라들처럼 호객행위를 심하게 한다던가 귀찮게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요하네스버그에 먼저 도착했는데, 워낙 악명이 높은 도시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긴장을 했다. 같이 버스를 타고 온 현지인들조차 요하네스버그에선 특히나 더 주의를 기울이라고 했다. 잔뜩 쫄았지만 케이프타운까지 버스를 타고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케이프타운의 테이블 마운틴을 오르고, 펭귄을 보러 바다에 갔다. 케이프타운은 흡사 유럽과 미국을 합친 도시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도시였다. 자연과 문명이 하나로 잘 어우러져 공존하는 느낌이었다.



Cape Town



남아공의 치대는 프리토리아 대학에 있었다. 케이프타운에서 다시 프리토리아로 올라왔다.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며칠에 걸쳐 학교를 들락날락거렸다. 다시 학생들과 교수들을 만나고 학과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정리를 하자면 미국이나 캐나다, 영국 등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의 자격증이 있는 의사들은 이곳에서 면허를 바꿔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외 국가의 자격증을 가진 나라들은 편입을 해서 본과로 다시 들어가야 했다. 그런 후에야 시험을 볼 수 있었고,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아예 처음부터 이곳에서 공부를 했었다면 자격증을 쉽게 취득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일었다. 본과 1학년 때 남아공으로 편입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아쉬웠다.


프리토리아에서 일을 본 후 다음 할 일은 미국 비자를 얻는 일이었다. PCT를 걷기 위해서는 3개월을 머물 수 있는 일반 ESTA비자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6개월간 머물 수 있는 B1/B2 비자를 발급받아야 했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갈 뻔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비자를 취득하기 위해 인터뷰도 보고 이것저것 서류 준비했던 것이 생각났다. 물론 인터뷰 빼고는 부모님이 다 하셨지만 지금은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야 했다. 인터넷 후기를 보니 비자 발급에 떨어진 사람들의 후기가 많았다. 한 번 인터뷰를 보는데 160불을 내야 하니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한 번 떨어지면 그때 무슨 문제가 있어서 떨어졌는지 묻는 질문부터 시작해 더 까다로워지기 때문에 단번에 붙는 게 제일 좋았다. 며칠에 걸쳐 온라인으로 서류 작성을 했고, 인터뷰 날짜를 기다렸다. 남아공의 미 대사관은 요하네스버그에 있었기 때문에 프리토리아에서 다시 요하네스버그로 돌아왔다.


인터뷰 날짜가 다가올수록 긴장이 됐다. 혹여나 말실수를 해 떨어지게 되면 돈과 시간만 날리는 셈이니 무엇을 질문할지, 어떻게 대답을 할 것인지에 대한 준비를 해야 했다. 미국에 가는 이유와, 통장에 얼마가 들어 있으며, 며칠 일정으로 가고, 언제 귀국을 할 것인지 등. 이 사람들이 PCT를 알고 있을까? 알기만 하면 통과하기가 수월할 텐데. 한국에선 이미 PCT에 도전하는 사람들 중 비자받기에 실패한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3번이나 떨어진 사람도 있었다. 이 길을 걷는다고 해도 명확한 직업이 없거나, 일정한 수입이 없으면 인터뷰에서 떨어트렸다. 그들은 인터뷰이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고 6개월을 걷는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인터뷰 당일, 긴장된 마음으로 미 대사관을 찾았다. 자리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그때 누군가가 울면서 인터뷰어와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열심히 설명했지만 인터뷰를 보던 대사관 직원은 딱 잘라 거절하며 안된다고 했다. 결국 그녀는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들을 정도로 크게 울며 밖을 나갔다. 저 모습이 내 모습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곧 내 이름이 불렸고 인터뷰를 보는 직원 앞에 긴장된 모습으로 섰다. 왜 미국에 가려고 하니? 나는 미리 준비해 온 서류들을 꺼냈다. PCT라는 길에 대한 정보가 담긴 서류였다. 서류를 건네주며 말을 이어나갔다. 어떤 루트를 걷게 되며, 며칠이 소요되는지, 얼마가 드는지, 왜 걸으려고 하는지, 이 길을 걷기 전에 산티아고 순례길과 히말라야를 다녀온 경험이 있다는 걸 어필했다. 그녀는 산티아고 순례길도 알고 있었고, PCT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자신도 순례길을 걷는 게 소원이지만 PCT는 엄두도 못 내겠다고 했다. 곰을 조심해야 한다며 잘 다녀오라고 웃으며 비자를 내주었다. 잔뜩 긴장한 것이 무색하게도 너무나 쉽게 끝나버린 기분 좋은 인터뷰였다.


PCT는 보통 4월에 시작하는 것이 적기다. 일반 성인의 속도로 3월에 시작하면 남캘리포니아를 지나 시에라 산맥을 통과할 때 녹지 않은 눈 때문에 위험하다. 5월에 시작하면 10월 초가 돼서야 캐나다에 도착할 수 있는데 그땐 마지막 구간인 워싱턴에 눈이 많이 쌓여 완주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때문에 많은 하이커들이 4월 중순에 시작을 하고, 9월 중순~말에 하이킹을 끝낸다. 내가 비자를 받았을 때는 2월 말이었고, 한 달여의 시간을 보낼 장소가 필요했다. 남아공에 계속 있기에는 물가도 비쌌고 요하네스버그가 주는 느낌이 안전하지 않았다. 게스트하우스 여행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디가 좋았고 어떤 게 재밌었고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길거리를 지나는데 누가 목을 내리쳐서 가진 걸 모두 빼앗겼고, Atm에서 돈을 뽑는데 총을 든 강도가 나타나 돈을 모두 빼앗겼고, 길거리에서 총을 들이밀어 가방을 빼앗겼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온통 빼앗긴 얘기뿐이었다. 아무래도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그간 가보고 싶었던 쿠바로 목적지를 정했다. 다녀온 모든 이들이 사랑에 빠졌던 나라 쿠바, 그 기대감을 안고 하루하루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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