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호 Dec 11. 2023

<서양철학사 상권>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상) 고대와 중세 >, 요한네스 힐쉬베르거 저/강성위 역  이문출판사

  최근 비합리주의 철학이 많이 퍼지고 있다. 특히 비합리주의 철학이 가진 궁극적인 의미와 목적을 잃어버린 채, 현실도피의 수단으로써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일반적인 철학에 대한 인상도 실상과는 매우 동떨어져 있다. 특히 고대와 중세 철학은 형이상학이 가진 이미지 때문에 고리타분하다고 낡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리고 중세는 문명의 발전을 막은 암흑기라는 생각이 퍼져있고, 중세철학은 중세가 가진 총체적인 인식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다. 근대철학에서는 비합리주의 철학이 가진 직관적이고 자극적인 면만을 소비하면서 철학자가 아닌 중개자들과 그들의 사상을 숭상하고 있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또한 우리 사회 전체에 퍼진 기계론적인 사고와 유물론적인 사고도 고대와 중세철학에 대한 가치를 떨어뜨리는 데 일조한다. 과학이 곧 진리라고 믿고 기계론적 인과관계와 유물론을 진지하게 신봉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아무런 반성과 성찰, 심지어는 회의도 없이 그것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그에 반대되는 사상들은 구시대적인 산물로 간주하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도 고대철학에 대해서는 몇 권의 원전들을 읽어본 것이 다이며 중세철학에 대해서도 거의 알지 못하고 있었고, 이러한 일반적인 생각에 반박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하였다. 특히 중세철학에 대한 통찰을 얻기 위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나의 무지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단순히 철학자들이 생각했던 사상들을 나열해 놓은 책이 아니다. 애초에 철학 자체를 단순하고 일관되게 서술하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어떤 철학자의 생각과 사상은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피상적인 관점에 의해서 그 사상이 오해받은 대표적인 철학자는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는 그가 플라톤과 정반대의 사상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저서에 주해를 단 고대, 중세, 근대의 철학자들도 그렇게 생각하곤 했으며 현대에도 그 경향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 그 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직접적으로 자신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반대한다고 자신의 저서에 명시하였으며, 이데아론 외에도 플라톤의 여러 사상을 반대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종합적으로 드러내는 책 중 하나인 <형이상학>에서 그는 수많은 저서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플라톤의 사상에 반대했으며, 플라톤의 핵심 사상인 이데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분명히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인을 긍정하고, 그것이 본질적인 원인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개인적으로도 형이상학을 읽으면서 의아했던 부분이었다. 그리고 힐쉬베르거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비유적으로만 그의 스승에 반기를 들었을 뿐, 그는 분명한 플라톤주의자라고 이야기한다. 그 근거로 형상인을 비롯한 보편자의 우위와 신 증명 등을 든다. 또한 그는 이데아를 거부하기는 했지만, 의미론적으로 그의 주장을 파고들어가 보면 이데아를 드러내지만 않았을 뿐 분명한 플라톤주의자라고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도 이 부분에서 충격을 받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원전들을 상기했을 때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주장이라 생각하였다. 결론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과 동일시되는 사상을 주장했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으나, 분명히 플라톤의 사상이 그의 사상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며, 두 사상은 반대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사람들이 하는 많은 오해 중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세에 저평가되었다는 생각이 있는데,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세기에도 끊임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었으며, 교부철학에 이은 스콜라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없이 생각되기 어려운 학문이었다. 스콜라철학의 핵심 인물인 토마스 아퀴나스조차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였다.

  그렇다면 고대철학은 플라톤 한 사람의 사상에 대한 주해서에 불과한가? 나는 처음에 그렇게 보지 않았으나, 지금은 이 말에 동의한다. 중세철학도 그렇게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이유는 플라톤의 사상이 그 자신에서부터 중세의 끝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단순히 논제로 삼아지는 차원의 영향이 아닌, 수많은 철학자의 핵심적인 사상의 바탕으로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대철학을 들여다보면 플라톤에 버금가는 위대한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조차 플라톤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그 뒤의 유물론을 지지한 스토아철학자들과 쾌락주의로 알려진 에피쿠로스주의자들 역시 외면적으로는 플라톤과 큰 차이를 가지고 있으나, 모두 그 핵심 사상에 대해서 플라톤의 영향을 받았다. 신플라톤주의는 말할 것도 없다. 중세철학은 크게 교부철학과 스콜라학파로 나누어지며, 모두 아리스토텔레스와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고대철학의 성과들을 종합하고 재해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사상을 창조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는 플라톤의 그림자가 없는 곳이 없다. 이처럼 플라톤은 단순히 한 철학자로 생각될 사람이 아니다. 플라톤의 사상에 찬성하는 사람은 물론, 반대하는 자들에게도 반드시 플라톤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사상이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같은 플라톤의 막대한 영향력을 파악했던 위대한 철학자로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있다. 그는 위대한 지성의 소유자로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공통분모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들을 종합하여 자신의 사상을 전개한다. 이는 당시는 물론 근대에 이르기까지도 왜곡된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세태를 고려한다면 참으로 놀라운 통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스콜라철학의 왕자라고 불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며, 단순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이 사실에서 기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중세는 암흑기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특히 철학의 측면을 통해 보았을 때는 더더욱 그렇지 않다. 중세는 인식론과 존재론을 비롯한 형이상학의 독자적인 분야에서 뛰어난 발전을 이룩했다. 그리고 중세철학은 형이상학에만 기여한 것이 아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랬던 것처럼 윤리학과 국가, 법철학에도 기여하였다. 또한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중세는 근대와 매우 유연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미 후기 스콜라주의에서 옥캄과 스코투스는 신을 인정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근대와 매우 밀접한 사상적인 관계가 있다. 이미 경험주의적인 사상의 그림자가 보일 정도이다. 또한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의 과학혁명이 가진 사상적 배경도 이미 스콜라철학에서 어느 정도 형성되었다. 물론 이것이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하였으나, 근대의 배경은 어느 정도 중세에서 형성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론적으로 중세철학은 고대철학을 집대성하고 재해석하여 근대에 넘겨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비록 근대는 중세에서 지속되어 온 패러다임을 바꾸었다는 점에서 구별되지만, 적어도 중세와 근대가 절단되어 있으며, 중세는 사고와 지성의 암흑기라는 오명은 완전한 거짓이다.

  많은 사람이 철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상이 좋지 않다. 특히나 실증주의와 실용주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에 철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은 뜬구름 잡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또한 기계론적 사고와 유물론적 사고가 많은 사람들의 생각에 자리 잡은 만큼 고대철학과 중세철학은 철학에 관심이 조금이나마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무시당하며, 낡고 구시대적이라는 잘못된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고대철학과 중세철학은 잊혀서는 안 될 내용을 너무나도 많이 담고 있다. 또한 우리들은 그 철학들에 크고 작은 영향을 받았고, 그것에 기반하여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있기에, 그 철학들을 더더욱 무시해서는 안 된다. 물론 내가 고대철학과 중세철학에 담긴 내용이 진리이고, 근대, 현대의 철학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재의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균형을 회복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소피스트적 논박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