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vid Dec 05. 2020

창살없는 감옥

창살없는 감옥

스스로를 죄인이라며 우울함 속에 지내는 날들이 많아졌다. 가족들을 볼 때 마다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아픔이 보였다.


아내는 24시간 아픈 남편을 돌보며, 팔자에도 없는 시어머니를 모시며 어디 잘 나가지도 못하는 생활이 불편해 보였다. 어머니는 연고도 없는 이 곳에서 아들 밥상을 차려주기 위해서 힘쓰시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둘 다 가고싶은 곳도 가지 못하고 먹고싶은 것도 마음대로 먹지 못했다. 나는 그들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내에게는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나가서 마음 껏 친구들을 만나고 오라고도 했다. 낯선 곳에서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어머니에게도 잠시 내려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바람도 좀 쐬고 오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그들은 아픈 나를 남겨놓고 즐겁지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고 오라고 했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어머니와 아내였지만, 내가 집에서 보고있는 건 그 둘 뿐이다. 내 눈에 그들의 지쳐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걸 바라보는 내 자신이 얼마나 한없이 초라하고 미안한 존재인지 떠오른다. 우울증이 또 다시 나를 저 아래 어딘가로 끌고 내려간다.


 아내는 아주 가끔 친구들을 만나러 다녀오거나 친정에 다녀왔다. 집에서 속 시원하게 하지 못할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조금 하고 나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실제로 아내가 바깥바람을 조금 쐬고 오면 내 마음이 좀 편하다. 아내도 뭔가 스트레스가 조금 풀린 느낌이다. 어머니도 가끔씩 여수에 내려가서 볼일을 보고 다시 올라오셨다. 어머니는 여수에 가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 하는 것이 즐겁지 않다고는 하셨지만, 다시 서울에 올라오셨을때의 표정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의 마음이 편해지고 나면 나도 한결 마음이 편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것은 참으로 간사하다. 실제로 처음 몇 번은 이들의 표정이 밝아진 것에 나도 만족을 하며 지냈다. 하지만 곧 내 처지를 그들 옆에 놓고 비교를 하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번 이라도 다른 사람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부러웠다. 하루 종일 집안에서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화장실만 들락날락하는 이 생활이 너무 답답했다. 가족들에게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다는 사실에 숨이 막혔다. 누군가를 만나서 이 모든 이야기들을 하고 싶지만, 내 몸상태가 좋지 않아 어디 나갈 수도 없다.


내 집은 마치 감옥같았다.


정해진 시간에 기상을 해서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하고 정해진 시간에 운동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잠든다. 벌써 두 달이 넘게 이 생활을 하고 있다. 앞으로 얼마가 더 지나야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을지 아직 기약이 없다. 언제쯤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


 "운동은 좀 했어? 얼마나 했어? 밥은 잘 먹었고? 뭐 먹었는데?......"


 아내와 어머니는 집을 벗어나 바깥 바람을 쐬고 오면 항상 잔소리가 심해졌다. 아마도 집을 잠시 벗어나 있는 동안, 아픈 남편과 아들을 두고 왔던 시간 동안, 자신들이 챙겨주지 못한 시간에 대한 미안함 때문었으리라. 그리고 바깥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항상 뭔가를 체크했다. 밥은 제 때 먹었는지, 운동은 제 때 했는지,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지는 않았는지, 자세는 올바르게 하고 있었는지. 그들의 숙제검사는 철저했다. 그리고 이내 자신들이 바깥에서 얻어온 정보들을 내 앞에 나열해 놓기 시작했다. 밀가루 음식은 안돼. 종합비타민제는 좋지 않대. 거친 음식은 좋지 않대. 찬 음식이 장에 좋지 않아서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이 말에 진절머리가 났다.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고, 내가 그렇게 행동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노파심은 끝이 없었다. 나는 그만하라며 또 짜증을 부렸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아.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이렇게 너희들 눈치보며 있고 싶지 않다고...흐흑...!"


 어머니는 또 눈물을 흘리신다. 어머니의 눈물을 보니 정신이 든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뭐가 잘나서 어머니께 소리를 쳤을까. 다시 내 상황을 인지하고 한 없이 작아진다. 어깨가 내려가고 고개도 바닥으로 푹 떨궜다. 그래. 누구때문에 어머니가 이렇게 고생을 하고 계시는데......


 "그렇게 하고 있지마...... 풀 죽어 있지 말라고...!!!"


 내가 무슨 가족들 볼 낯이 있어서 또 짜증을 냈을까 하는 마음에 풀이 죽어있으면, 가족들은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을 힘들어했다. 괜히 자신들이 스트레스를 주어서 그렇다는 생각. 비단 어머니뿐만이 아니라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도 이렇게 생활하고 있는 것이 힘들었을 것이고, 그러한 속사정들을 나에게 가끔 풀어놓으며 눈물을 보였다. 그리고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며 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런 그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정말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내가 닦아주지 않으면 누가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을까. 내가 괜찮다고 말해야했다. 내가 아무렇지 않다고. 나는 우울하지 않다고. 내 마음을 말하는 순간 그들이 더 이상 마음의 말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셋 모두가 감옥살이를 해야한다.

이전 12화 식탁과 화장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