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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Dec 07. 2020

함께

혼자가 아니야

누나의 중재 이후에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집안 분위기는 의외의 복병에 고전하고 있었다.


우울증


항암을 시작한지 두달 째가 되자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어느날 아침 머리를 감고 나서 유난히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손에 잡힌 한 움큼의 머리카락에 애써 웃음보이며 드디어 부작용이 시작되었노라고 나 조차 신기해 했다. 그러나 거울 앞에 서 있는 내 모습은 점점 불쌍한 아픈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퇴원 후에 말라버린 몸은 항암으로 식욕이 떨어진 탓에 좀처럼 복구되지 않았다. 빠져가는 머리. 검게 변하고 있는 내 피부. 게다가 피부는 전부 트기 시작했다. 내 모습 여기저기에 투병중이라고 씌여있었다.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잊어버리고 지내다가 이따금씩 거울을 볼때면 한 없이 숨고싶었다.


 '이런 모습을 아내가 좋아하지 않을거야'


 아무리 손을 써도 거울 너머의 아픈 나는 없어지지 않았다. 나는 아픈 사람이다.


신경이 날카롭다. 이럴 때에는 아내와 어머니의 통제가 더 야속하게만 느껴진다. 그들의 통제에 내가 반항하기 시작한다. 반항의 이유도, 반항의 목적도 없다. 그저 철창에 갇혀있는 병든 동물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에 철창 안에서 짖고 또 짖어댄다. 내가 짖어대면서 물어버린 그들의 상처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그들도 어쩌지 못하는 이 철창을 부숴버리고 싶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내가 이런 우울함을 겪을 때마다 옆에서 다독여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본인이 물린 상처를 뒤로하고 항상 괜찮다고 나를 위로했다. 치료가 끝나면 모두 괜찮아 질거라고 했다. 그래도 항암제 투여를 많이 하는 다른 사람들 보다는 나은 것이라며 위로 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위로를 받으며 투정을 좀 더 부리다 보면 기분이 나아졌다.


어머니는 아들의 투정을 당신의 마음속으로 모두 받아내고 계셨다. 그저 아무 말 없이, 아들의 이유없는 신경질을 모두 받아주었다. 어쩌다 물린 손가락이 아프다고 철창을 발로 차버리고 나서도 혼자서 눈물을 훔치며 후회하셨다. 그리고는 괜찮다고 하셨다. 당신도 괜찮다고, 너도 괜찮아 질거라고 하셨다.


그런 가족들의 격려와 응원속에서 나는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었다. 나보다 더 힘들어 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눈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도 아닌 '나'때문에 저렇게 고통받고 있는데, 나는 그들에게 왜 다시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일까. 나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다. 내가 힘을 내고 더 씩씩해져야 한다. 내가 그들의 상처를 위로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위로 더 큰 상처를 주어서는 안된다. 거울을 바라보며 애써 웃어보았다. 그래도 여전히 초라하고 못난 모습이지만.


 '그래 잠시 뿐이야'


이후로 가족들과 이야기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내와 내 증상에 대해서, 예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지금의 감정에 대해서 더 많은 공유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내가 갖고있는 아픔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아내의 마음과 진심이 느껴졌다. 내가 느끼고 있는 불안감을 모두 지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내의 진심은 나를 어느 정도 안정시켜주기엔 충분한 안정제 같은 것이었다.


어머니와도 많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대화의 시작은 언제나 다툼이었다. 15년이 넘도록 마음에 있는 대화를 해 본 적이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잦은 다툼으로 대화를 하기 싫다고 하실 때에도 나는 계속 대화를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행동했다. 어머니는 다투면서 내가 받을 스트레스가 걱정이셨겠지만, 나는 내 투정 모두를 흡수하면서 받을 어머니를 걱정하는 것이 더 큰 스트레스였다. 다툼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따위는 잊어버렸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내의 대화 또한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행동이 혹시나 불러올 수 있는 오해에 대해서 며느리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시작했다. 며느리도 자신이 별 뜻 없이 한 행동과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이해를 구했다. 서로 말하기 어려운 관계. 서로 진심을 터 놓기에는 어려운 이 두 사람이 서로에게 한 발씩 다가가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 가족에게 지금은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서로를 알아가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셈이다.


우리는 혼자가 아닌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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