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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Feb 23. 2022

브런치 북 발행,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냥 빨리 출간할 걸. 구독자님들 감사합니다.

기나긴 대장암 일기를 끝맺었다.


책으로 발간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의미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해서, 브런치 북으로 엮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아끼고 아끼며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꾸역꾸역 글을 이어 나갔다.


7년


무려 7년이라는 시간동안 나에게 큰 위로가 되어준 이 글들은 한 단어 한 단어가 나라는 사람 그 자체였다. 황당하기 그지 없던 암과의 첫 만남부터, 설래는 암 병동 졸업. 그리고 그 기나긴 길을 지나면서 알게된 나를 지지해 주는 많은 것들. 그리고 벌거벗은 나의 모습까지. 모든 것이 나였다. 암이라는 큰 쉼표이자 인생의 작은 선물로 시작된 나의 일기는 결국 내면의 내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거울이었다. 내 자신을 바라 보는 일. 그것도 아픈 부분을 가감없이 적어내려가며, 남들이 볼까 두려운 사실들까지 나열해 나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나를 짓누르고 있던 내 허물들을 하나씩 벗어 던짐으로써 얻어지는 깃털같은 가벼움은 누구나 얻기 어려운 그 어떤 것이었다.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하나.

바로 아버지의 일기를 적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로써 아픈 아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나 큰 아픔이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그 크기를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설픈 초보 아빠의 탈을 쓰고, 헤아리기 조차 어려운 아버지의 마음을 자판을 누르며 뒤적거렸다. 한 편 한 편 연재를 해 나갈 수록, 무거운 죄책감과 자책에 시달려야 했다. 아버지가 느꼈을 법한 감정을 써 내려가야 했지만, 아들인 나 때문에 힘들었을 아버지의 감정을 내 손으로 써 내려가는 것은 애초부터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아버지의 일기는 절반도 쓰지 못하고 마무리도 하지 못한 채, 연재를 마쳐야만 했다. 


나는 이렇게 씌여진 내 작은 일부가 세상의 빛을 보길 바랐다. 내 돈을 써서라도 하나의 오브제로 세상의 빛을 보게 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길 옆에 브런치 북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제는 마무리를 해야할 때가 오지 않았을까. 거의 모든 자가치료가 끝났다고 판단되었을 때 쯤. 브런치 북을 출판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땀 한 땀 글들을 모아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브런치 북에 배신당한 느낌이 들었다.


30개가 넘는 글은 한 브런치 북에 담을 수 없다는 사실.

30개를 다 채우고 완독 예상 시간이 60분을 넘게 되면 완독률이 떨어진다는 빨간 경고. 

(그래도 발행하겠냐고 묻는 되지도 않는 친절인지 협박인지 모를 문구까지)


발간하기 전에 이런 사실들을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렇게 까지 아끼지 않고 30개 정도 글이 모였을 때, 발간을 해 보았을 것을. 30편에 맞추어 글을 작성해 보았을 것을. 


7년의 기록이 모두 나라고 생각했는데, 이걸 둘로 또 쪼개야 한다니. 뭔가 언짢은 기분은 지우기 어려웠다. 다만, 자연스럽게 암 투병과 내면의 나와의 대면이라는 큰 주제로 깔끔하게 분리되는 마법은 마냥 이 언짢음을 그저 그 언짢음 자체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얼마 되지 않지만, 그러나 내게는 소중한 독자 여러분들께는 이 브런치 북 발간 소식을 알려드리고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었다. 






구독자 분들께,


하찮은 저의 글들을 그 동안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댓글 하나 하나, 

공감 하나 하나가,

저에게는 큰 응원이고 힘이 되었습니다. 더 많은 글을 쓰게 되는 원동력이었고, 제 자신을 조금 더 드러낼 수 있는 용기였습니다. 보내주신 응원과 용기로 인해서 조금 더 저를 드러내 볼 수 있었고, 그러한 글들이 제 자신을 치유해 나가는 데에 너무나 큰 치료제가 되었습니다. 

구독해 주시고 긴 글을 읽어주시고, 댓글과 공감까지 남겨주셨던 여러 구독자 여러분들께 다시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더 좋은 글들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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