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EAMER Apr 28. 2016

막간극: Aphorism #3

1.힘들다는 말은 별로 힘들지 않다는 말이고, 죽고 싶다는 말은 별로 죽을 생각이 없다는 말이다. 정말 죽고 싶은 사람은 그런 말을 할 시간에 죽고, 정말 힘든 사람은 정말 힘들기 때문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탓이다. 극한의 고통은 언어로 환원될 수 없다.

2.두려움은 망상의 차원에서 발현되고 공포는 실재의 차원에서 나타난다.

3.기다림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즐거움의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시간의 속도는 즐거움에 정비례한다.

4.소중하고 가치 있는 모든 것들은 너무도 빨리 빛을 잃고 끝내 소리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우리가 미처 그것의 소중함을 깨닫기도 전에.

5.패배는 근본적으로 그것이 승리를 위한 밑거름으로 작용할 때만 가치가 있다. 결국 패배에 머무는 패배들, 승리가 없는 패배의 연속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어떤 패배가 승리의 밑거름이 될지 그 반대일지는 그 패배를 패배로 해석하는지 또 다른 종류의 승리로 해석하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요컨대 패배가 패배로 되는 이유는 그것이 처음부터 패배라서가 아니라 그것에 패배라는 이름이 붙여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패배로 선언된 패배는 결코 패배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없을 따름이다.

6.학(學)의 길은 가면 갈수록 목적지가 멀어져가는 길과 같다, 말을 할수록 공백은 늘어만 가듯이.

7.진지한 체 하며 내뱉는 몇 마디는 그럴싸해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진지하고 와 닿는 말도 하룻밤이 지나면 잊히기 마련이고 진심으로 하는 말과 진중한 단어들도 결국 시간이 지남에 따라 허공으로 흩어지며 차차 엷어지고야 만다. 문장들과 단어들을 머금고 소화해서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문장들은 버려지고, 그렇게 문단의 한구석에서 조용히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니.

8.문장에 얼마나 마음이 움직이느냐 보다는, 문장을 얼마나 잘 소화하느냐가 문제다.

9.나이는 치부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벼슬도 아니다.

10.그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입을 다물고 묵묵히 전진하면 될 뿐이다. 아프다고 소리치는 자는 도중 쓰러지고 힘들다고 한탄하는 자는 도중 편한 길로 가기 위해 온갖 요령을 부리다 앞을 보지 못해 좌초된다. 마지막에 도착하는 자는 결국 찢기고, 뜯기고, 검붉은 피로 목욕한 채 다만 입을 앙다물고 눈을 부릅뜨고 있는 자에 다름 아니다.

11.상대의 단점을 자신의 단점에 대한 발견으로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12.실제로 옳은 주장을 단지 나이어린 친구가 주장한다고 틀렸다는 말을 하는 것은 잘못이다. 주장의 정당성이나 개연성을 검증하고 각 전제와 전제 및 전제와 결론 사이의 내적 논리구조 내지 논리적 관계가 갖는 엄밀성과 정합성과 연역적 혹은 귀납적 유관성에 대해 검토하는 작업에 주장하는 주체의 생물학적 나이라는 무관한 독립변수가 고려된다는 것은 결국 사람에 대한 비난적 호소의 오류에 불과하다.

13.허세는 누군가가 가진 무엇을 드러낸다기 보다는, 그 누군가가 가지지 않은 무언가를 은연중에 더욱 극명하게 드러낼 뿐인 것이다.

14.힘을 내비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힘을 숨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전자와 후자에서 하수와 고수의 차이가 나타난다.

15.나이가 많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른답게 행동할 때 어른이 된다.

16.사랑이라는 극도로 형이상학적이면서 극도로 형이하학적인 유일한, 그래서 괴이한 이 동사 아닌 동사는 사랑에 빠진 주체에 의해 비가역적이라 생각되는 감정을 수반하며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모양으로 혼재하다 어느 한 지점에서 우연적 혹은 필연적으로 만나 충돌한 두 세계를 뒤흔드는 운동이다. 마치 몸의 면역체계 같은 이 세계는 서로를 수용하거나 수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거나 한 몸이 될 수 있었을 세계를 둘로 절단하는 방식으로 마감된다.

17.이성을 품은 차가운 분노는 이성을 버린 뜨거운 분노보다 몇 배는 더 위험하다.

18.인간들은 서로 다르기에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같기에 싸우는 듯하다.

19.먼저 마음을 열지 않으면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 법이고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아무도 마음을 열지 않는 법이다.

20.사랑에 대해 그렇게 많은 해석과 주석과 정의와 이론과 책과 격언과 갑론을박이 있는 것을 보자면 누구도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21.머저리들의 주된 특징은 문제를 지각하고는 있고 언제나 그것에 대해 중얼거리며 또한 언제나 동일한 문제에 동일한 사고방식과 태도와 동일한 접근으로 동일한 결론을 내림에도 불구하고 정작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행동은커녕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떤 유별난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결과는 결국 우로보로스이며 따라서 차라리 문제를 무시하며 편하게 지내는 것이 문제를 지각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낫다. 스트레스를 받으며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바에야, 차라리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문제를 무시하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나에 관해 말하고 있다.

22.삶에 관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곧바로 해결하지 않는 것은 왕왕 그것이 해결하기 어렵다기 보다는 은연중에 그러한 상황을 즐기거나 지속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어렴풋하게나마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23.예의를 지키는 것은 어쩌면 상대방과 거리를 두기위한 가장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24.노력 없는 시도가 낳은 실망은 최선을 다한 시도가 낳은 실망에 대한 모욕이다.

25.세상에는 나쁜 사람들이 많지만, 그만큼 좋은 사람들도 많다. 일부로 전체를 파악하려하지 말자.

26.만족감과 실망감은 기대치와 현실치의 차에서 기인한다.

27.사람들은 이따금씩 자신이 욕하는 대상과 동일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도 자신은 그 대상과 무언가 다르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 같다.

28.우리는 편향된 이야기(one-sided story)를 너무나도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자신이 믿기 싫은 것에 관해서는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자신이 믿고자 하는 것에 관해서는 일말의 의심조차 하지 않는 경향을 보자면, 이런 태도는 단지 우리가 믿는 그것이 사실이면 좋겠으리라는 우리의 주관적인 편향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보고픈 것만 보곤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29.서로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싸우고, 혐오하고, 헐뜯고 증오하는 것을 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슬픈 일이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면 논의를 나누면 되고, 비판점이 있다면 정중히 지적을 하면 되고 무언가가 잘못된 게 있다면 차분히 고치면 되는데 그게 어째서 그렇게 어려운건지.

30.빛 없이는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눈을 뜨지 않는다면 빛이 있어도 볼 수 없는 법이다.


31.아무리 흥미진진한 이야기라도 여러 번 들으면 지루해지며 아무리 애절한 이야기라도 여러 번 들으면 별로 슬프지 않게 되고 아무리 우스운 이야기라도 들을 만큼 들으면 별다른 감흥도 일지 않게 된다. 마치 지속되는 자극이 아무런 자극이 없는 상태인 것과 마찬가지 이듯이 반복되는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이야기의 전개와 결말에 익숙해지게 하며 그만큼 그것에 대한 감정과 반응도 무디게 만든다. 그런 사람, 그런 아픔, 그런 이야기들이 있다 세상엔.

32.우리는 앞을 볼 수 없기에 앞으로 나아간다. 상처로 끝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불합리한 선택을 하게 되는 이유이자 한 치의 앞도 안 보이는 인생을 꼬박꼬박 살아 나가는 이유다.

33.거짓에 안위하는 것보다 진실에 다치는 것이 더 낫다.

34.진실의 정합성에는 한계가 없으나, 거짓의 정합성에는 한계가 있다. 거짓의 정합성은 진실에 의해 한계지어진다.

35.과거를 간직하되 감상에 빠지지는 말아야 하며, 현재에 충실하되 지나온 길들을 경시하지 말아야하고, 미래를 희망하되 망상에 빠지지는 말아야 한다.

36.무엇과 함께 자라온 사람들은 그 무엇을 부정하기 힘들게 되는 것 같다.

37.신의는 관계의 원인이다.

38.우리 모두는 결국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인생은 시간이라는 족쇄에 단단히 묶여있는 탓에.

39.광인이 말하는 이성적인 인간은 결국 광인일 따름이다.

40.정제되지 않은 언어는 천박하다.

41.우리가 그들(they)이라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은 왕왕 동시에 우리(we) 자신이기도 한 것이다.

42.인간은 자신이 해석하는 것보다 힘든 상황에 처하지는 않는다.

43.할 말이 있다면 뒤에서 궁시렁거리지 말고 직접 하자. 분을 삭이거나 스트레스는 풀어야하겠고, 그렇다고 직접 말할 용기도 자신도 없으니 뒤에서 궁시렁거리면서 역시 난 대단해라고 중얼거리며 자위하는 게 최선인 사람들보다는 차라리 대놓고 말하는 사람들이 몇 배는 더 낫다.

44.열정과 강박은 동등한 선상에 있다.

45.슬픔과 고통과 절망과 아픔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자유까지 앗아가지는 못한다.

46.누군가의 교만은 그의 기대치를 보여준다. 때문에 누군가가 교만하거나 거만하다면 그는 딱 그 정도 수준의 기대치를 갖고 있는 것일 뿐이다.

47.글쓰기는 캔버스에 자기 자신만의 그래서 특별할 수밖에 없는 세계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 붓 대신 연필을, 물감대신 단어를, 추상성에서 구체성을 끌어내는.

48.과시는 대부분의 경우 빈곤의 상징이다.

49.불행을 통해 보는 미래는 불투명한 어둠과도 같으나 행복을 통해서라면 미래보다 투명해 보이는 것 또한 없다.

50.자신이 자신에 대해 하는 말은 필연적으로 어떤 종류의 바이어스를 수반하는 것 같다. 나는 때때로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규정하는 많은 상황에서 자신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 이고픈 것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그것은 은연중에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 더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다. 허세를 부리는 사람은 수양적 빈곤을 드러내며, 공격성을 표출하는 사람은 주목받고픈 욕망을 드러내며, 우월감을 드러내는 사람은 열등감을 드러내고, 혐오와 증오를 드러내는 사람은 사랑받고픈 마음을 드러내는 법이니.

51.부조리와 불합리에는 침묵과 성실, 그리고 정직이 답이다.

52.안타깝지만 경험상 누군가를 가르치려 드는 사람들에는 미련하고 자존심만 강하며 우월감에 사로잡힌 사람들 밖에는 없는 것 같다. 가르치려드는 사람들이 현명한 사람들이라면야 기꺼이 가르침 받기를 원하고도 남을 텐데.

53.자신의 독해력 부족을 글탓으로만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 글이 어렵고 논리가 복잡하다는 지적에 대해서 내가할 수 있는 것은 그러나 아무것도 없다. 어떤 부분이 어떻게 어려운지에 대한 설명이나 질문이 없는 한 그것은 자신이 자신의 독해력부족에 대한 책임전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드러낼 뿐이기 때문이다. 글의 어려움에 대한 비판은 때문에 그 글을 독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자만이 할 수 있다. 글에 있는 문제란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경우에나 있는 것이지, 글을 대충 한 번 훑어보고 나는 그 글을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그것은 글로서의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고 말하는 경우에 있는 것이 아니다.

54.굽힐 줄 아는 것과 굽힐 줄 모르는 것─성숙과 미숙을 구분 짓는 분기점이 거기에 있다.

55.모든 건 자신의 생각일 뿐이지만 이를 근거로 상대의 주장을 반박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모든 주장은 당연히 자신의 생각일 뿐이지 그렇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생각인가. 결국 무엇이 자신의 생각일 뿐이라는 지적은 비판으로서의 의미가 없다. 검토해보아야 하는 것은 오히려 그것이 그의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이 전제하고 있는 혹은 가정하고 있는 어떤 명제들과 근거들의 정당성과 합리성과 정합성일 것이다. 누군가의 생각이 주관적이라는 것은 그 생각이 논증적으로 옳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56.토론은 어려운 것도 아니며 부담스러운 것 또한 아니다. 틀린 주장을 했다면 고치면 되고, 비판을 받는다면 반박하면 되며, 반박할 수 없다면 인정하면 되고, 옳은 것이라 생각하는 주장을 했다면 반박되지 않는 한 입장을 고수하면 될 뿐이다. 그것이 토론이다.

57.남을 가르치기 전에 자신부터 잘하고 남의 흠을 욕하기 전에 자신의 잘못부터 바로 고치자.

58.허구한 날 남을 이간질하고 헐뜯고 싸우고 욕하고 남에 대한 뒷담화를 즐겨하면서 자신을 신실한 기독교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을 보면 구토가 치민다.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이러한 자칭 기독교인들이 부끄럽다. 이해와 관용과 예의는 어디로 간 것인가. 예수가 자신을 깎아내면서까지 말한 사랑과 자비와 용서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그러한 것이 없는 기독교인보다는 차라리 그러한 것이 있는 무신론자가 몇 배는 더 낫다.

59.사람들은 진실이 무엇인가보다는 무엇이 그럴싸하게 보이는가에만 관심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사회에서 진실로 포장된 거짓은 결국 진실로 전락하고 말며 숨겨진 진실은 결국 한낱 소설 속 이야기로 변모하고 만다.

60.품위를 지키자. 예우를 갖추고, 옷맵시를 단정히 하고 상대를 존중하자. 우리는 짐승이 아니라 인간이다. 분노를 내려놓고 증오와 탐욕을 내려놓고 품위를 지키자. 아무리 모욕을 당하고 밟힘을 당하고 갈가리 찢겨도 품위를 철저히 지켰다는 자존감 하나로 버티고 마지막까지 미소를 머금은 채 서 있자. 내가 인간이라는 것은,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도무지 인간이기를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프로틴 구조와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