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Creutzfeldt-Jakob Disease, CJD)은 희귀한 신경퇴행성 해면양뇌증(Neurodegenerative Spongiform Encephalopathy, NSE)으로써 보통─시드넘무도병이나 헌팅턴무도병에서나 발견되는─운동협응능력의 저하와 치매를 야기한다. 치사율도 극악인 데다 알츠하이머와 마찬가지로 전반적인 인지기능(!)을 락다운시킨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실로 흉물스러운 질병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간혹 CJD를 유전성(fCJD)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CJD는 여느 유전성 질환과는 달리 후천적인 요인을 통해 발생하는 산발성 섭타입(sCJD)이나 전염성 변종(vCJD)도 존재한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염성 해면양뇌증(Transmissible Spongiform Encephalopathy, TSE)이라니! sCJD와 vCJD가 존재가능하다는 것은 말하자면 CJD가 유전자 변이에 독립적인 질환이라는 이야기다. CJD와 마찬가지로 희귀 NSE에 해당하는 변종 게르스트만-슈트로이슬러-샤인커 신드롬(GSS)과 스크래피도 TSE에 속한다는 사실을 볼 때 우리는 무엇이 이들을 TSE로 만드는가 하는 물음을 던질 필요가 있다.
Gajdusek은 1960년대에 vCJD와 쿠루병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양자 모두 TSE에 속한다는 점을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비록 이 연구결과를 통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을 수 있었지만 vCJD의 구체적인 감염원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았다. 일각에선 잠복기가 긴 슬로바이러스라는 설이 제안됐지만 이 가설은 (1) fCJD와 vCJD가 어째서 다른 동인을 갖는(것처럼 보이는)지 설명할 수 없었고, (2) 프루시너가 1982년의 연구논문에서 지적했듯 CJD의 감염원에서는 핵산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빙성이 없었다. 프루시너는 더 나아가 vCJD의 감염원이 단백질로만 이루어졌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하면서 CJD의 발병원으로 추정되는 이 단백질을 프리온(prion)이라 명명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프리온 가설이다. 당시 과학계는 프루시너의 파격적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단백질체학(Proteomics)이 유아기에 있던 시절인 만큼 바이러스같이 작용하면서도 핵산이 없는 유사-바이러스 단백질이 CJD의 동인이라는 주장이 터무니없게 들렸기 때문이다.
허나─여느 무시당하던 가설의 극적 재조명이 그렇듯─실증적인 연구 데이터가 쌓이면서 프리온 가설은 20세기 막바지에서야 받아들여지게 되고 프리온-유사 바이러스 가설은 결과적으로 자취를 감추게 된다. 프리온은 모든 과학자들의 예상을 깨고 CJD와 GSS환자를 포함한 TSE환자의 염색체에 내장돼있는 유전자(PRNP)를 통해 직접 인코딩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단연 하나였다. 유전자 PRNP가 TSE나 NSE 환자가 아닌 일반 사람들의 신경계에서도 발견된다는 것. 일반인들의 중추신경계에서도 프리온 단백질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은 프리온 단백질을 vCJD의 감염원으로 추정하던 과학자들에게는 당혹스러운 결과였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인가?
간단하다. 일반인들의 프리온 단백질(Prion Protein Cellular, Prᴾᶜ)과 TSE환자의 프리온 단백질(Prion Protein Scrapie, Prᴾˢᶜ)에는 차이가 있다. Prᴾᶜ가 염류용액에 용해되고 프로테아제에 의해 손쉽게 분해되는 반면 Prᴾˢᶜ는 타 Prᴾˢᶜ와 함께 불용성 미소섬유(insoluble fibril)를 구축함으로써 프리온을 제거하는 기존 프로테아제 작용을 무효화시킨다. 그렇다면 Prᴾᶜ와 Prᴾˢᶜ의 가용성/불용성 차이는 PRNP의 문제, 그러니까 단백질 합성의 재료가 되는 염기서열에서 비롯되는 문제인가? 놀랍게도 양자의 차이는 염기서열과는 무관하다. Prᴾᶜ를 인코딩하는 데 사용된 PRNP의 염기서열은 Prᴾˢᶜ를 인코딩하는 데 사용된 PRNP의 염기서열과 완전히 동일하다. 즉, Prᴾᶜ와 Prᴾˢᶜ의 차이는 염기서열-독립적 요소에서 발생하는 문제다. 그렇다. 정답은 학부 분자생물학 시간에 지겹도록 배우는 단백질 구조의 차이에 있다. Prᴾᶜ는 α-helix로 이루어져있고 Prᴾˢᶜ는 β-sheet으로 이루어져있다. 미세한 차이처럼 보일 수 있어도 양자의 특성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론 충분하다. 염기서열이 동일해도 프로틴 구조가 다르다면 기능 역시 변화한다는 분자생물학적 상식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프로틴 기능은 구조-의존적(Conformation-dependent)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RNA translation을 통해 단백질을 찍어내는 과정에서 우연히(운도 더럽게 없이) Prᴾˢᶜ라는 폴리펩타이드 고분자 물질이 형성되면서 트리거되는 sCJD의 발생가능성이나 감염된 고기를 섭취해 생기는 vCJD를 통해 어느 정도 해명할 수 있는 Prᴾˢᶜ의 체내유입/발현경로는 그렇다 쳐도, α-helix가 아닌 β-sheet으로 이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Prᴾᶜ와 Prᴾˢᶜ를 구분할 수 있다면 대체 무엇이 Prᴾˢᶜ를 vCJD의 감염원으로 만드는 것인가? 프루시너의 Heterodimer 모델에 따르면 비정상적인 프리온 단백질 Prᴾˢᶜ는 정상적인 프리온 Prᴾᶜ에 직접적으로 접촉함으로써─마치 알로스테릭 활성물이 효소의 구조를 변형시키듯─Prᴾᶜ의 기존 프로틴 구조를 변형시킨다. 이렇게 프로테아제-저항력을 갖고 탄생한 새로운 Prᴾˢᶜ는 암세포가 증식하듯 중추신경계에 남아 Prᴾᶜ의 구조를 변형시켜나가고 점차 프리온 집적물이 쌓이게 되면 세포는 결과적으로 괴사한다. 요컨대 Heterodimer 모델은 (1) Prᴾˢᶜ의 작용이 Prᴾᶜ에 의존적이라는 것, 따라서 (2) 디폴트 Prᴾᶜ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TSE환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신경세포들의 괴사 역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한다. 정해진 농도의 Prᴾᶜ 샘플에 Prᴾˢᶜ를 섞을 때 관찰되는 Prᴾᶜ의 구조변형과 프리온 합성에 관여하는 문제의 유전자 PRNP가 제거된 실험쥐에게는 Prᴾˢᶜ를 투여해도 별다른 해면양뇌증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볼 때 이는 나름대로 신빙성 있는 모델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Prᴾˢᶜ의 NSE 트리거가 Prᴾᶜ-의존적이라면 TSE환자의 치료는 Prᴾᶜ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을 법하다. Prᴾᶜ의 합성재료가 되는 PRNP 그 자체를 건드리거나 Prᴾᶜ의 단백질 구조변형 이전 프로테아제를 통해 어떤 형식으로든 Prᴾᶜ를 분해하거나 결과는 같다. 단지 Abbott이 지적하듯 Prᴾᶜ의 제거는 정상적인 미엘린 형성에 타격을 주기 때문에 기존의 Prᴾᶜ 형성과정에는 간섭하지 않으면서 Prᴾˢᶜ를 통한 β-sheet 무더기로의 변형에 저항성을 갖는 Prᴾᶜ를 만들어내는 방식의 RNA조작이 필요할 뿐이다. TSE환자에 대한 Bone의 다황펜토산(Pentosan polysulphate) 투여법이 미미한 수준의 수명연장에서 그쳤다는 점을 고려할 때, CJD와 GSS, Kuru같은 프리온 질환이 불치병으로 남아있는 현 상황에선 실험쥐의 스크래피 진행을 효과적으로 막아낸 바 있는 PRNP modification을 임상에 도입하는 수밖엔 없다. TSE환자의 Prᴾᶜ 변형을 막고 TSE의 진행속도를 유의미하게 증감하기 위해선 간접공략보다는 Prᴾˢᶜ의 활동을 사전차단하기 위해 RNA translation 과정 그 자체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