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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ER Apr 30. 2016

물리법칙의 기원과 경험초월적 존재자

스몰린의 메타과학적 주장에 대하여


1.스몰린, 파인만, 윌러, Dirac과 Unger는 물리법칙이 진화해나가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물리법칙이 완전한 고정불변의 진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윌러는 심지어 빅뱅이란 물리법칙이 재구성되면서 글자 그대로 리셋되는 지점이라고 본다. 가령 닫힌 우주 모델을 생각해볼 때, 일반상대성 이론에 따라 0에 수렴하는 부피와 ∞에 수렴하는 밀도를 갖는 특이점singularity의 폭발을 통해 태어난 우주는 암흑물질의 영향으로 인해 빛의 속도로 끊임없이 팽창하면서 절대 영도에 점근하게 되고, 팽창속도는 이와 동시에 천체들의 중력장으로 인해 점차 감속되면서 결과적으로 모든 물질은 빅크런치에 다다르게 된다. 그렇다면 리셋된 물리법칙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법칙과 동일할 것인가?


만약 동일하지 않다면 우리는 물리법칙이 시간-종속적, 세계-종속적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고, 만약 동일하다고 답한다면 우리는 물리법칙이 시간-독립적, 세계-독립적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리법칙이 불변의 수학적 명제로 표명될 수 있다는 것은 이러한 의미에서 비과학적, 탈자연주의적인 주장이다. 물리법칙에 대한 수학적 명제가 불가변적, 우주-독립적이라면 빅크런치를 통해 리셋된 신(新)우주의 물리법칙 역시 현 우주의 수학적 명제 내지 공리에 종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리법칙에 대한 수학적 명제의 불가변성은 곧 수학적 명제가 지시하고 있는 내용이 우주-독립적이라는 것을 의미할 것이므로 수학적 명제의 진위여부는 <우주-내적인 원리로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우주-외적인 원리로 주어지는 것>이라는 바를 논리적으로 함축한다.

이런 초과학적인 함축 때문인지 공리화 된 특정 수학적 명제들이 탈우주적인 진리로 취급되어야만 한다는 플라톤적, 혹은 피타고라스적인 스탠스는 종래의 물리주의적 경험론, 과학주의적 자연주의 진영에선 거부된다. 그렇다면 우주는 어떤 방식으로 수많은 물리법칙 후보 중 특정한 물리법칙을 고르는 것인가? 물리법칙은 무한대의 밀도를 갖는 특이점에서 상정되는가, 아니라면 특이점의 대폭발과 동시에 상정되는가? 그 과정에 경험-초월적 존재자의 개입이 없고 오롯이 물질과 반물질의 상호작용만이 존재한다면, 물리법칙은 특이점의 폭발 이전엔 존재할 수 없을 것이고 플랑크 경계를 벗어나면 모든 물리법칙은 무효화되므로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물리법칙이 상정되는 것은 적어도 특이점의 폭발 이전은 아닐 것이다.

스몰린은 이러한 맥락에서 물리법칙의 진화가능성과 시간의 실재성 긍정이라는 토대 위에서만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물리법칙이 시간-종속적이라면,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진화가능성, 즉 구조적 가변성을 갖는다면 새로운 우주가 탄생할 때마다 새로운 물리법칙이 임의로 상정된다는 진술은 논리적으로 충분히 성립가능한 해명이기 때문이다. 우주는 시공간과 함께 태어난다. 그렇기에 물리법칙이 우주-종속적인 천체와 물질을 아울러 관장하는 법칙이라면 물질공간의 부재와 물리법칙은 형이상학적으로 양립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물리법칙은 시간-종속적일 것이므로 물리법칙과 그 법칙에 상응하는 수학적 명제들에 대한 합리적인 자연주의적 스탠스는 결국 시간의 실재성 긍정으로 수렴된다.

2.물론 이러한 해명이 얼마나 개연적인가하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물리법칙의 가변성은 처음부터 우주 너머엔 그 어떤 물질이나 공간도 존재할 수 없으며 따라서 우주-외적으로 주어질 수 있는 층위의 그 무엇이 아니라는 전제가 참일 때만 성립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주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며, 우리가 관측 가능한 우주는 단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윌러의 물리법칙-리셋 가설을 실증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즉, 스몰린이 말하는 우주의 디폴트 컨디션이 실제로 우주-내적인 원리로 상정되는지 우주-외적인 원리로 주어지는지, 어떤 탈우주적 규칙에 따라 결정론적으로 규정되는 것인지 아니라면 임의적으로 선택되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설령 임의로 선택된 p, q, r이라는 물리법칙이 특정 우주 U1의 디폴트-물리법칙으로 선택된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어째서 ~p, ~q, ~r이 아닌 p, q, r이어야만 했는가?>, 즉 <p, q, r이 닫힌 계 U1에서 디폴트-물리법칙으로 선택되었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조건들과 요인들에 의해 트리거된 결과인가?>하는 물음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디폴트-물리법칙을 결정하는 조건들과 요인들 및 여타의 환경변수들이 우주-종속적이라는 사실을 밝힐 수 없거나 이러한 요소들이 우주-내적인 원리와는 무관하게 결정되는 것이라는 지적을 논박할 수 없다면 물리법칙-리셋 가설은 형이상학적인 사변적 가설에 불과하다.

3.만약 물리법칙이 우주-종속적, 시간-종속적이라면 물리법칙은 세계-독립적으로 주어지는 그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스몰린이 지적하듯 특정 계 내에서 창발되는 무엇이다. 스몰린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물리법칙이 세계-독립적인 경험초월적 존재자에 의해 우주에 부여된 것이라는 견해를 부정한다. 그런데 물리법칙이 우주 내에서 창발되는 그 무엇이라는 사실이 초월적 존재자의 개입을 통한 물리법칙의 창발가능성과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것 같지는 않다. 우주창조라는 개념 그 자체와 진화의 개념이 양립가능하듯 <물리법칙의 세계-종속적 창발>이라는 개념이 필연적으로 <경험초월적 존재자에 독립적이거나 순전히 우연적인 창발이어야만 한다>는 언술을 함축하진 않기 때문이다. 즉, 스몰린이 주장하는 물리법칙의 세계-종속적 창발은ㅡ기계론적인 뉴토니언 세계관의 이신론적 함축과 같은 맥락에서ㅡ경험초월적 존재자의 개입필요성을 소거하는 개념일뿐 경험초월적 존재자의 개입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 있는 온당한 근거가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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