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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ER May 02. 2016

상대 토론자들에 대한 정중한 몇 마디



1.이해하지 못했다면 이해하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말하라. 자존심에 이끌려 감정에 휩쓸려 주장을 한다면 필연적으로 불필요한 비생산적인 말들이 오가게 된다. 문제가 있다면 지적하면 되고 동의할 수 없다면 합의점을 찾고 존중하면 그만이다. 상대가 불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정중히 알려주면 그만이고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면 인정하고 물러나면 그만이다. 단지 자신의 의견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는 이유만으로 열불을 내는 것은 그가 토론 초보라는 사실 이상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내가 하는 말은 언제나 한결같다. 주장과 인격은 구분되어야만 한다. 내가 혐오표출의 자유를 지지한다거나 사형제도에 반대한다고 주장한다 해서 내가 인간 말종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사형제가 옳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옳지 않다고 주장할 수도 있으며 마찬가지로 상대의 주장에 동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어떤 주장을 하고 어떤 견해를 갖는가는 전적으로 나의 자유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떤 견해를 가질 수 없다고 말한다면 어째서 그러한 견해를 가질 수 없는지에 대한 합당한 이유가 제시되지 않는 한 마찬가지로 본인도 어떤 견해를 가질 수 없다는 주장 역시 긍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때 내가 동의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개인의 인격이 아니라 개인의 주장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개인의 주장에 대한 비판을 개인적인 모독으로 받아들이며 화를 내는 것은 어떤 연유에서인가? 아마 주장에 대한 주장과 인격에 대한 주장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주장으로 인해 기분이 상했다면 그것은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자신에게 반대했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자신보다 멍청해서 비위가 상했다는 이유만으로 공격적인 태도를 갖는 사람과 정상적인 토론이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2.나는 내가 멍청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무언가를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다. 나는 모르기 때문에 배울 수 있으며 멍청하기 때문에 현명함을 향해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이토스적 역설이다. 나를 피투성이로 만들고자 한다면 마음껏 그렇게 하시라. 단 그 주먹질의 합당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한 나는 그것을 나의 역량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전부 막아낼 것이다.

3.나는 논리학을 즐겨 사용하지만 논리학을 사용하면 그 결론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따져묻기 보다는 거부감부터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논리는 현상을 기호로 표현한 각 항들의 관계를 다루기 때문에 일상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의자가 논리적으로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 내에서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1) 서로 모순되는 각 항 예컨대 p와 ~p 사이에는 제 삼자가 있을 수 없다는 배중률의 법칙에 따라 p와 ~p라는 선택지 이외의 옵션은 제거되며, (2) 이때 p&~p를 참이라 주장하는 것은 모순율의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리가 현실적이지 않다고 해서 위 논증이 부당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논리가 현실적이지 않기에 논증이 부당해야만 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논리적 토대로 이루어져있는 자연과학 체계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연과학이 기능할 수 있는 이유는 귀납이라는 논증방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논리는 현실적이지 않다던지 실제와는 거리가 있다던지 논리에 기대지 말라는 주장은 논증의 실제 정당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한 주장을 하고자 한다면 어째서 논리가 현실적이지 않은지 현실적이란 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현실적이지 않다면 정당한 결론을 내릴 수 없는 것인지 그것은 이미 극단적인 형태의 실용주의나 경험론을 전제하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현실적이지 않은 것이 내가 제시하는 주장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논리에 기대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그 이유가 합당한 이유는 또한 무엇인지 그것이 나의 주장을 무너뜨리는데에 온당한 방식의 비판인지를 따져 묻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논리를 메타적으로 비판한다고 본인의 논리적 오류가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다.

4.언제부턴가 진지함은 중이병적인 진지충이 되어버렸고 성실함은 지루한 설명충이 되어버렸다. 진지함에 유치함의 낙인을 찍고 성실함에 장황함의 낙인을 찍는 것은 자유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간주가 논박의 근거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진지함의 결여는 곧 치열함의 결여이며 치열함의 결여는 토론 상대로는 부적합하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5.나보다 본인이 현명하다는 우월주의적 태도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멍청하기 때문에 충분히 그쪽의 내공이 더 높을지 모른다. 세상에는 내가 감당할 수조차 없는 괴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는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본인이 나보다 현명하다고 생각한다면 최선을 다해 전력으로 나를 박살내주시라. 근거없는 텅 빈 주장과 몇 마디의 욕설이나 기고만장한 비아냥이나 가벼운 냉소나 무시 따위로는 결코 나를 박살내지 못한다. 그러한 것들은 이미 수천 번의 토론에서 셀 수 없이 겪어 보았다. 공격성은 열등감의 징표다. 가진 것 없는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를 뒤엎고자 한 것은 그들이 약자라는 사실에 대한 열등감이라는 동기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나의 지적에 열등감을 느꼈다면 그래서 나를 짓누르고자 한다면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라. 백 페이지라도 천 페이지라도 상대해 주겠다. 공격적인 말 몇 마디는 호소로서는 유의미할지 모르겠지만 나의 주장의 정당성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나는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예우를 갖추므로 본인도 지키시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욕설을 하고 싶다면 마음껏 해도 좋고 인신공격을 하고 싶다면 마음껏 해도 좋다. 단 그러한 것과 나의 논장의 정당성은 별개의 문제라는 이야기다.

6.나의 주장을 박살내고자 한다면 감정을 추스르고 온당한 근거를 제시하라. 전력으로 논증을 전개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째서 왜 어디서 무엇을 잘못했고 그것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그것의 함축이 무엇으로 보이며 그것이 문제시된다면 어째서 문제시되는지 그것이 반드시 문제시되어야만 하는 부분인지 그것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는 없는지 어떤 부분에서 오류가 나타난다고 생각하는지를 명료하게 논증적으로 제시하라. 마찬가지로 나의 논리가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어째서 틀렸고 어떤 부분에서 왜 틀렸으며 그것에 대한 나의 설명이 어째서 그것을 정합적으로 정당화해주지 않는지를 제시하라. 나의 이러한 요청은 본인을 무시하기 때문이 아니라 본인과 진검승부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박살내고자 한다면 확실하게 박살내시라. 나는 박살날수록 끊임없이 성장할 것이며 깨질수록 더 단단해질 것이다. 토론 주제가 본인에게 중요하다면 주장에 목숨을 거시라. 가벼운 냉소는 본인이 그만큼 그 주제에 진지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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