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Prologue
투명한 여름바다색 하늘위로 뭉게구름 몇 조각이 떠있었다. 환절의 시작을 알리는 우렁찬 매미소리와 함께 그렇게 초여름의 아침인사가 시작되었다. 새벽녘에 맺힌 이슬아기씨들은 햇볕이 잔디밭 너머에서 빼꼼 모습을 드러내자 부끄러운지 공기 중으로 숨어버렸다. 낡은 오토바이 한 대가 툴툴거리며 골목으로 사라졌고 이따금씩 울려 퍼지는 자전거 벨소리 너머로 들리는 참새들의 지저귐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그날은 초등학교 3학년이 되고 맞이하는 여름방학 첫날이었다. 방학 첫날이라는 핑계 아닌 핑계로 알차게 늦잠을 즐겨보려 했건만 날이 밝아질수록 짹짹 소리가 점점 더 커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참새들이 우리 집을 배경으로 현대판 히치콕 영화를 찍는 것인지 아니면 내 귀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하다 결국 일어나기로 했다. 부스스한 표정. 이른 아침의 참새소리는 늦은 밤의 모기소리만큼이나 친해지기 어렵다.
그날은 그러니까 파란지붕 아주머니 집에서 3주일된 강아지를 데려오는 날이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파란지붕 아주머니가 키우던 시베리안 허스키의 새끼들 중 하나라고 했다. 엄마 허스키는 새끼들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고 그나마 남은 새끼 다섯 마리 중 네 마리도 며칠간 울어대더니 어느 날 싸늘하게 죽어있었다고. 마지막 남은 한 마리는 벌써 몇 주일째 물과 이유식으로 버티고 있었긴 하지만 언제 다른 새끼들처럼 죽을지 몰랐기 때문에 거저주시는 거라고 했다. 물론, 우리 가족은 의사인 아빠를 제외하고는 동물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진 않았고 파란지붕 아주머니의 분양의사가 나의 요청에 의한 것임은 더더욱 아니었다. 단지 우리 집 담벼락을 넘어오는 도둑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집지키는 강아지를 구하려던 참에 파란지붕 아주머니가 새끼 강아지를 우리에게 분양하고자 했고, 아버지는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정말로 그뿐이다.
2.
하늘이 맑았다. 그날따라 유달리 폭신해 보이는 정오의 뭉게구름이 우리 집 정원 위로 지나가며 드리우는 그림자의 느릿한 속도가 이유 없이 우스웠기 때문일까, 곧 새로운 친구가 생긴다는 사실 때문이었을까? 초인종이 울릴 때쯤 나는 묘하게 들떠 있었다.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고 이내 아주 짧게 그러나 분명하게 강아지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아빠가 작은 털뭉치를 안고 들어왔다. 검정 털뭉치가 살아있는 새끼강아지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그것이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후였다. 세상에 그렇게 작은 멍멍이도 있었다니! 녀석은 내 팔길이보다 작았고 흰색이 조금 섞인 옅은 검정 털로 뒤덮여 있었다. 크고 동글동글한 검정색 눈망울을 이리저리 돌리며 새 보금자리를 둘러보는 모습이 제법 귀엽다.
새끼허스키를 몇 번 쓰다듬던 아빠는 같이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과 함께 내게 강아지를 건네주곤 밀린 업무를 보러갔다. 엄마는 장을 보러 외출했기 때문에 적어도 앞으로 30분간은 작은 발들을 꼼지락거리며 돌아다니는 이 털 많은 괴생명체를 어떻게든 책임져야했다. 그러고 보면 아까부터 시무룩한 표정으로 낑낑거리는 것이 신경 쓰인다. 죽은 엄마가 보고픈 걸까? 잠시 가엾다는 생각을 했지만 녀석이 입맛을 다시듯 혀를 날름거리는 것을 보곤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그 모습을 보자 불현듯 이 털뭉치 녀석 설마 배가 고픈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녀석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다 죽어가는 듯한 시무룩한 표정이 과연 내가 배고플 때 짓는 표정과 비슷했다. 확신이 선 나는 접시에 물을 조금 담아왔다. 먹을 건, 음, 사실 이 털뭉치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조차 몰랐기 때문에 할 수 없이 2층 방의 보물창고로 들어가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자, 이건 내가 어제 남겨둔 비상식량에서 가져온 거야. 엄마한테는 비밀이니까 말하면 안 돼.”
그리곤 물과 함께 새우깡 다섯 개를 건네주었다. 역시 배가 고팠는지 오도독거리며 새우깡을 먹어치우더니 금세 작은 분홍색 혀로 물을 홀짝였다. 그 모습이 왠지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었는데 이럴 수가 상당히 부드럽다. 나도 모르게 계속 쓰다듬게 되는 것을 보면 이 허스키는 마성의 털을 갖고 태어난 위험한 녀석임이 분명했다. 참, 그러고 보면 아직 이 털뭉치의 이름을 정하지 않았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이름 없는 강아지로 남겨두긴 싫었다. 곰곰이 이름을 생각해보다 이내 머리 쪽에 있는 작은 솜사탕 모양에 시선이 머물렀다. 눈썹 위에 있는 허스키 특유의 흰색 반점이 마치 오늘 아침의 구름 같았다. 구름이? 그렇다고 구름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흔한 이름처럼 보였다. 유심히 고민하던 찰나 영어시간에 배운 클라우드(Cloud)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털뭉치보다는 좋은 이름 같았다.
“좋아, 네 이름은 이제부터 클라우드야.”
클라우드는 자기 이름이 결정되는 역사적인 순간에 하품을 했다.
3.
비상식량을 나눠준 덕인지 나와 클라우드는 꽤 친해졌다. 역시 남자의 의리는 밥 한 끼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클라우드를 그라우라고 발음하는 할머니를 위해 구름이라는 별명을 특별히 만들긴 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이 마성의 털을 가진 새 식구를 클라우드라고 부르게 되었다. 모두의 예상과 달리 클라우드는 건강했고 그만큼 빠르게 성장해갔다. 몸집도 몸집이지만 짖는 소리가 2주일마다 갑절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우리 집에 올 때만해도 나를 따라잡지 못하던 클라우드의 달리기 속도는 한 달 정도가 지나자 얼추 나와 비슷해졌고 부슬부슬한 솜털 같던 털은 제법 짙어졌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부터 클라우드는 잔디정원과 감나무가 있는 마당에서 지내게 되었다. 자주 빠지는 클라우드의 털을 청소하느라 그동안 고역을 치른 엄마의 표정에서 엄마가 곧 <집안개털금지>라는 플래카드와 함께 단식투쟁을 시작할 것 같은 조짐을 읽었기 때문이다. 사실 클라우드가 밖에서 지내기 시작한 것은 우리에게도 잘된 일이었다. 클라우드에게 있어서 마당이란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놀이공원과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우리가 공 던지기 놀이와 술래잡기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좋은 콤비라는 것도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클라우드는 우리 집에서 가까운 시냇물 언덕으로 산책 가는 것을 특히 좋아했다. 그곳은 우리 집 마당보다 넓었고 클라우드가 마음 놓고 달려 다닐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함께 풀숲을 가로지르고 돌부리를 넘으며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달리다보면 우리는 어느덧 이름 모를 숲길에 당도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타나는 클라우드의 천진난만한 검정 눈을 보고 있을 때면 까마득한 우주를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클라우드가 어떤 식으로 세계를 보고 느끼는지 알 것 같았다.
시냇물 언덕엔 맑은 개울물이 졸졸 흐르면서 생기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우리는 달리기 시합이 끝날 때면 어김없이 그 연못가에 걸터앉아 꼬물거리는 올챙이들을 지켜보곤 했다. 종종 운이 좋은 날에는 청개구리들을 볼 수 있었지만 클라우드는 개구리가 폴짝일 때마다 흠칫했다. 시냇물 언덕의 개구리들은 아마 클라우드와 친해지기 힘들 것 같았다.
클라우드가 공을 피하는 재주도 있다는 사실은 그 해의 첫눈이 내리던 쌀쌀한 12월의 어느 날에서야 알았다. 그날 아침 클라우드가 짖는 소리에 밖을 내다본 것이 발단이었다. 클라우드의 모습을 보곤 재빨리 나갈 채비를 했다. 반짝이는 눈송이들이 마당에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처음 보는 하얀 세상에 신난 것인지 시베리안 허스키만의 본능을 차마 억누르기 힘들었던 것인지 클라우드는 정신없이 눈밭을 뛰어다니며 발자국을 찍어내고 있었다.
퍽-
내가 눈뭉치를 던지자 상당히 얼떨떨한 표정. 처음 눈으로 얼굴을 가격 당했을 때 나도 저런 표정이었는데. 클라우드는 예기치 않은 나의 눈뭉치 공격에 기분이 상했는지 컹! 하고 짖었다. 하지만 클라우드의 반항으로도 첫눈 온 날을 그냥 보낼 순 없다는 나의 의지를 꺾진 못했다. 그런데 내가 눈뭉치 집중사격을 시작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클라우드가 내 공격을 전부 피했기 때문이다! 저번 주에 방영한 겨울 특선 영화인 매트릭스의 주인공처럼 날렵하게 눈뭉치를 피해내는 클라우드를 보자 뭔가 일찌감치 항복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우리는 격렬한 공방전을 그치고 작은 눈사람 하나를 만들었다. 클라우드가 꼬리를 살랑이며 눈사람의 팔 대용으로 쓸 나뭇가지 몇 개를 물고 온 것을 보면 나의 항복에 기분이 풀린 것 같았다. 마당에 덩그러니 서있는 울퉁불퉁한 꼬마눈사람의 표정이 꽤나 우스꽝스러웠기 때문에 아빠가 계속 웃었다.
시계가 새벽 한 시를 지나칠 때 즈음 뛰어다니느라 지친 클라우드는 조용히 자고 있었다. 어디선가 들리는 새벽의 월광 소나타가 부드럽게 밤공기를 휘감았다. 달빛을 은은하게 반사시키던 눈사람만이 말없이 이국적인 은빛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4.
"앉아!"
클라우드는 말을 듣지 않았다. 새해가 시작되고 날씨가 조금 따듯해지자 본격적인 클라우드 훈련이 시작되었다. 물론 훈련의 총책임자는 나였다. 내가 클라우드와 가장 친했기 때문이다. 클라우드의 짖는 소리가 꽤 컸기 때문에 지난달 도둑을 몇 번 쫓아낸 적이 있었지만 문제가 있다면 단지 너무 자주 짖는다는 점이었다. 클라우드는 초인종만 울려도, 담 너머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만 울려도 짖었다.
사실 클라우드의 이런 버릇은 혼내는 것으로 쉽게 고쳐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정말 어려운 것은 에너지 넘치는 클라우드를 앉게 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은 아빠의 의도치 않은 방해공작에서 시작됐다. 클라우드 앞에서 흡사 이계의 주문을 외우듯 “앉아!”라는 말만 5분 째 반복하는 나를 빤히 보던 아빠가 그 다음날부터 클라우드를 볼 때마다 “안짰!”을 외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며칠 후부터는 할머니마저 방해공작에 합세했다. 할머니는 클라우드를 볼 때마다 “앙거”라고 했다. 내가 클라우드였다면 이 인간들이 단체로 단말마를 내뱉는 큰 병에 걸렸다고 생각했을 것이 분명하다.
“앉아, 클라우드!”
사료를 쥐고 앉으라는 동작을 취해보아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때 클라우드가 무언가를 느꼈는지 대문 옆으로 가 유심히 바깥을 보기 시작했다. 귀가 쫑긋하게 세워져있었다. 곧이어 귀엽게 생긴 뒷집 여자강아지가 총총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짜식, 여자 보는 눈은 있어서. 나는 큭큭 웃기 시작했다. 자신이 찜해둔 뒷집의 그녀를 보는 데에 정신 팔려있던 클라우드는 내가 웃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사랑은 힘들어 클라우드, 이제 그만 와서 앉아.”
클라우드는 웬일인지 순순히 내 앞으로 와서 앉았다. 연애문제로 조언을 구하기 위해 온 걸까? 사랑이 힘들다는 것은 텔레비전으로 배웠다. 클라우드의 순수한 검정 눈동자를 보자 양심의 가책이 조금 느껴졌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괜히 뭔가 굉장한 것을 알고 있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지, 사랑하는 사람들은 매번 울기만 해. 자기감정조차 몰라서 결국 기회를 놓쳐버리는 바보도 있다니깐.”
클라우드가 누워서 하품을 했다.
“설마 내 말을 의심하는 거야? 난 이제 어른이야. 벌써 열한 살이라구.”
부족한 경험치가 들통날까봐 나는 학교숙제를 핑계로 일찍 집에 들어왔다. 창문으로 힐끔 밖을 내다보자 할머니가 클라우드에게 밥을 주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밥그릇에는 내가 점심에 먹다 남긴 닭고기 몇 조각이 들어있었다.
5.
“클라우드, 어디 아파?”
클라우드는 며칠째 기운이 없어보였다. 좋아하던 산책도 가기 싫어했고 밥도 절반 이상을 남겼다. 여태까지 클라우드의 변화가 짝사랑의 여파라고 생각했던 나는 클라우드가 밥그릇 옆에 토하고 나서부터야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클라우드의 배가 크게 부풀어 있었다. 겁이 났다. 집엔 나와 할머니밖엔 없었고 엄마는 외할아버지 댁에, 아빠는 의학협회 일 때문에 며칠간 집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받을까 해서 아빠에게 전화를 해보았지만 휴대폰이 꺼져있다는 안내음만 되돌아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집에 굴러다니던 낡은 전화번호부를 찾아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어보자 아까 들었던 똑같은 여자목소리가 친절하게 지금 거신 전화번호는 없는 전화번호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러고 보면 동물병원이 작년에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는 말을 얼핏 주워들었던 것 같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자 할 수 없이 다시 클라우드를 보러갔다. 클라우드는 이제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보였다. 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아마도 배가 부풀어 오르면서 폐가 짓눌리는 것 같았다. 클라우드는 힘없이 낑낑거렸다. 아파하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클라우드 옆에 쪼그려 앉아 꽤 오랫동안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따금씩 담벼락을 넘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잔디밭을 흩트려놓았고 여러 겹의 새털구름들이 지평선 너머로 천천히 사라져갔다.
“있잖아, 클라우드.”
눈을 반쯤 감고 있던 클라우드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함께한다는 게 아픔도 슬픔도 행복도 같이 나누는 거라면, 정말 그런 거라면, 그건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 이를 악물고 견뎌내야 했던 아픈 시간도 웃고 떠들던 즐거운 시간도 서로 기억하고 있다는 거니깐.”
내 모습을 담고 있는 밤하늘색 눈이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클라우드는 우리 집에 처음 오던 날에도 똑같은 눈으로 날 봤었다.
“시간이라는 실로 짜낸 추억 옷을 입고 있는 거야 우린.”
클라우드한테만큼은 우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그래서 하늘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집에 돌아왔다. 나으면 시냇물 언덕 너머를 탐험해보자는 약속을 해놓곤.
밤 열 시가 지날 때쯤 전화벨이 울렸다. 아빠였다. 이제야 부재중 전화기록을 본 것 같았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클라우드의 뱃가죽이 세배로 부풀어 올랐고 계속 토를 한다고, 걷지도 못한다고 말하자 아빠는 클라우드가 최근 며칠간 먹은 음식들을 말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물과 사료밖에 먹지 않았다고 말하던 찰나 클라우드의 밥그릇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닭고기 조각이 문득 생각났다.
“아, 그리고 할머니가 클라우드에게 닭고기를 줬어요. 그게 아마 4일전쯤이었을 거예요.”
“닭고기? 닭고기를 줬다고?”
전에 그렇게 주지 말라고 했었는데-라는 말을 하며 아빠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마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닭고기 뼈를 먹고 복막염에 걸린 거야. 날카로운 닭뼈에 내장이 찔려서 염증이 생기면 배에 고름이 차면서 부풀게 돼.”
가슴이 철렁했다. 최대한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했다. 동물병원에 대해 묻자 동물병원은 우리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있고 지금은 늦은 밤이었기 때문에 내일 아빠가 급하게 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아빠의 말에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지만 내심 할머니가 미웠다. 닭고기를 주지만 않았어도 클라우드가 아플 일은 없었을 텐데. 그러나 할머니를 향한 미움은 이내 내 자신에 대한 미움으로 옮겨갔다. 내가 그날 닭고기 조각을 남김없이 먹어치웠더라면, 클라우드의 그릇에 담겨있는 고기조각을 버렸더라면, 아니 애초에 클라우드가 아프다는 것만이라도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전화를 끊은 나는 나풀거리는 잠옷 바람으로 클라우드를 보러갔다. 밤이라 그런지 공기가 조금 쌀쌀했다. 클라우드는 여전히 같은 풀밭에 웅크려 누워있었다. 어두운 밤이었기 때문에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풀숲이고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클라우드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마치 검정 하늘 속의 검정 구름 같이.
“조금만 참아 클라우드, 아빠가 내일 오신대.”
클라우드는 대답이 없었다. 피곤해서 일찍 잠든 모양이었다. 내가 공연히 잠을 깨울까 싶어 살금살금 고양이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담벼락 건너편에 있는 주홍색 가로등 하나가 멀어져가는 내 뒤로 몇 번 깜박였다. 클라우드는 풀벌레도 잠든 칠흑 같은 어둠속에 홀로 남아 눈을 뜨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집을 지켜보려는 듯이.
6.침묵의 봄
흐린 구름이 많은 아침이었다. 참새들은 조용했다. 내가 참새들보다 일찍 일어났기 때문이리라. 아빠는 오후에 도착한다고 했으니 클라우드를 병원에 데려갈 채비를 해야 했다. 클라우드의 소식을 들은 엄마는 3시 버스를 타고 온다고 했다. 어젯밤 나의 추궁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만 되뇌던 할머니는 1층 마루에서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 자고 있었다. 이른 장마가 예상된다는 예쁘장한 아나운서의 또박또박한 말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 수질오염으로 인한 물고기 4만 마리의 떼죽음을 알리는 뉴스속보가 스크린 하단에 나타나더니 몇 초 후 모 연예인의 약물복용 속보로 교체됐다. 사람들은 물고기 4만 마리가 죽는 것보다 한 달이면 잊힐 연예인의 사생활에 더 열불을 냈다.
틱-
텔레비전을 껐다. 할머니는 아직도 내가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자고 있는 할머니를 뒤로하고 마당으로 나섰다. 아빠가 오기 전까지 클라우드를 돌봐야 했다. 이미 해가 떴는지 어둑했던 구름이 좀 더 밝게 변해 있었다.
“클라우드, 물 마실 시간이야. 일어나서─”
나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물그릇을 떨어트렸다. 클라우드는 어제 누워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눈을 뜬 채 고꾸라져 있었다. 살진 파리들과 이름 모를 벌레들이 검정색 눈동자 위를 걸어 다니고 있었다.
“클라우드!”
클라우드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시야가 흐려지더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일어나, 클라우드! 아직 네 짝사랑한테 말 걸어보지도 않았잖아, 응? 일어나란 말이야!”
클라우드를 움직이자 털에 붙어있던 파리 몇 마리가 황급히 달아났고 잠시 후 부푼 배 밑으로 적갈색 지네가 기어나왔다. 언젠가 꾼 적 있는 악몽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꿈이길 바랐다. 망막에 맺히는 모든 혼란스러운 이미지들 하나하나가 잔상처럼 뒤엉키다 홀연히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곧 참새들이 울기 시작하면 나는 아침잠에서 깰 테고 그럼 이 기억들도 새벽안개처럼 사라질 거라고, 분명 그럴 거라고 믿었다.
아빠가 집에 도착했을 때 내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클라우드가 내 꼴을 봤다면 멍-하면서 놀렸을 텐데. 아빠는 할머니를 나무라더니 나에게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했다. 허탈했다. 내가 클라우드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것도 한심했고 클라우드가 아프다는 걸 늦게 알았다는 것도 한심했다. 죽어가는 클라우드 옆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들었다. 아빠는 혼자 클라우드를 돌보느라 고생했다며 들어가서 쉬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7.Epilogue
시냇물 소리가 들렸다. 빨간 잠자리 몇 마리가 춤을 추듯 일렁이는 강아지풀 사이로 지나갔다. 바람꽃과 흰민들레 주변에서 바쁘게 오가는 꿀벌도, 차가운 시냇물 속에서 꼬물거리는 올챙이들도, 소나무에 걸터앉아 노래 부르는 지빠귀도 각자 저마다의 삶을 분주하게 살아내고 있었다. 나는 그날 클라우드의 무덤 앞에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 다니던 직박구리 한 마리가 갸우뚱 거리며 나를 관찰하더니 이내 시냇물에서 조금 떨어진 버드나무로 날아갔다. 클라우드가 떠난지 벌써 몇 주일이 흘렀다. 엄마는 클라우드가 묻히던 날 눈물을 뚝뚝 흘리던 나를 안아주었고 나는 나뭇가지로 십자가를 만들었다. 클라우드의 무덤은 시냇물 언덕 중턱에 만들어졌다. 마지막 날 했던 약속을 이렇게라도 지키고 싶었다. 클라우드는 유난히 이곳으로 산책 오는 것을 좋아했다.
죽음과 함께 태어난 클라우드는 다시금 죽음과 함께 떠났다. 클라우드의 엄마를 앗아간 작년의 초여름은 이번엔 클라우드까지 데려갔다. 야속한 태양의 계절. 파란지붕 아주머니 집의 마지막 새끼 허스키는 결국 1년이나 버텼다. 얼마 안 가 죽을 거라고 말하던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그렇게 끈질기게.
나는 슬프지 않은 척 입꼬리를 올렸다. 생각보다 아팠다, 내 역사의 한 지점을 장식하고 있는 클라우드색 추억 옷을 입고 있기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마치 클라우드와 낙엽정원에서 놀던 날처럼, 하얀 세상에서 눈사람을 만들던 12월의 어느 아침처럼 말이다. 클라우드와 만든 울퉁불퉁한 눈사람 생각을 하던 나는 어느덧 정말로 씨익 웃고 있었다. 하늘에선 햇빛을 견디어 내던 뭉게구름이 조금씩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강아지풀도 좋았고 어렴풋이 들리는 시냇물 소리도 좋았다. 그 아득한 봄언덕의 끝자락에서 나는 조그맣게 속삭였다.
“안녕, 클라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