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법전

종에 관한 규례

약자들을 선대하고 권리를 보장해주기

by 김응수

[출21:2-11, 우리말성경]


제1조 (1) 만약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6년 동안 너를 섬겨야 한다. 그러나 7년째에는 그가 대가 없이 자유롭게 나갈 것이다.


(2) 만약 그가 혼자 왔다면 나갈 때도 혼자 갈 것이요, 올 때 아내를 데리고 왔다면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갈 것이다.


(3) 만약 주인이 아내를 짝지어 주어 아내가 아들이나 딸을 낳았다면 그 여자와 자식들은 주인의 것이요, 그 남자만 나갈 것이다.


(4) 그러나 그 종이 허심탄회하게 '내가 내 주인과 내 아내와 자식들을 사랑하니 나가고 싶지 않다'라고 하면


(5) 그 주인은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 가야 할 것이다. 또한 문이나 문기둥으로 데리고 가서 그 귀를 송곳으로 뚫어라. 그러면 그는 영원히 그 주인을 섬기게 될 것이다.


제2조 어떤 사람이 자기 딸을 종으로 팔면 그 종은 남종처럼 자유롭게 나가지 못할 것이다.


제3조 (1) 주인이 자기가 가지려고 산 그 여종을 기뻐하지 않으면 주인은 여종을 속량해 주어야 한다. 그가 그 여종을 속였기에 이방 민족에 팔아넘길 권리는 없다.


(2) 그가 만약 자기 아들에게 주려고 산 것이라면 그는 그 종을 딸처럼 대해야 할 것이다.


(3) 만약 그가 다른 아내를 들인다 해도 그는 그 여종에게서 먹을 것, 입을 것 그리고 아내 될 권리를 제한할 수 없다.


(4) 만약 그가 이 세 가지를 여종에게 해 줄 수 없다면 여종은 대가 없이 자유롭게 나갈 것이다.




이 글을 다시 보면서 "종"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제1조에 "종"을 산다고 하고 있고, 그렇지만 7년째는 무조건 내보내고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종"에 대해서 해석이 필요한 것 같다. 우선 "종"은 우리가 알고 있는 "노예"는 아닌 것 같다. 성경의 번역본(개역개정, 새번역, 우리말성경 등)에 따라 종이나 노예로 번역하고 같은 의미로 쓴 것이 보인다. (예,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 종살이, 노예살이)


성경은 기본적으로 '어쩔 수 없이 종이 된 사람'도 있다고 하고, 가나안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노예로 삼은 민족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종들을 위해 희년 제도를 두고 있고 다시 자유를 줄 수 있는 율법들을 두고 있다. 이것들은 성경을 읽어 나가면서 차차 살펴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율법 앞에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이 법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에 어떤 의미가 있나? 과거 미국은 노예 해방을 위해 싸웠고, 지금은 이를 지지하여 기본 인권을 위해 사람이 사람을 노예 삼는 일은 적어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것을 읽는 지금 우리 현대인은 어떻게 받아 들어야 하나?


우선, 이 법을 읽고 있는, 모세로 부터 듣고 있는 1차 독자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얼마 전까지 자기들이 바로 이집트의 노예들이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인생적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어쩔 수 없이' 누가 다른 집에 노예로, 종으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될 것을 역사적 사실로 지금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법이 필요했구나 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종"이라고 할 때 성경, 특히 신약에 와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은...",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이 되지 않게 하려는...", 이와 반대로 "의의 종" 등 이 "종"의 개념을 사용하 그리스도와 우리, 구원받지 못한 우리, 반대로 구원받은 우리를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율법의 "종"을 지금 어떻게 읽어야 하나?


개인적으로, 신약의 개념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가 이런 죄의 종이 었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면 의의 종이 되어 이런 종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그러니까 이 법에서 다루는 종과 같이 되어 섬겨야 하고 낮아진 마음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앞으로도 살펴볼 모세가 하나님으로 부타 받은 이 법들 규례들에 대해서는 모두 글자 그대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고 다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율법의 정신과 사랑의 정신 - 그러니까 제사법은 예배 -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것이고, 이 규례들은 사람 간의 관계를 위한 것이니 예수님이 새 계명을 주신 것처럼 “사랑”으로 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엄한 법 안에 사랑이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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