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를 위한 사랑과 책임지기
[출21:12-36, 우리말성경]
* 나 = 하나님
제1조 (1) 누구든 사람을 쳐 죽이는 사람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2) 다만 의도적으로 일부러 죽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의 손에 넘겨주신 일이면 그는 내가 정해 놓은 곳으로 도망치게 해야 한다.
(3) 그러나 치밀한 계획 하에 죽인 것이면 그를 내 제단에서 끌어내어 죽여야 한다.
제2조 누구든 자기 부모를 공격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제3조 누구든 남을 유괴해 팔거나 계속 데리고 있거나 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제4조 누구든 자기 부모를 저주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제5조 싸우다가 돌이나 주먹으로 쳤는데 상대방이 죽지 않고 드러눕게 됐다가 다시 일어나 지팡이를 짚고 다니게 되면 친 사람이 책임질 필요는 없지만 다친 사람의 시간에 대해 손해를 보상하고 그를 완전히 낫게 해야 한다.
제6조 (1) 어떤 사람이 자기 남종이나 여종을 막대기로 때려죽이면 벌을 받아야 한다.
(2) 그러나 그 종이 하루 이틀 뒤에 일어나면 벌 받지 않을 것이다. 종은 자기 재산이기 때문이다.
제7조 (1) 사람들이 싸우다가 아이 밴 여자를 다치게 해서 낙태를 했으나 그 여자가 다치지 않았다면 가해자는 그 여자의 남편이 정한 대로 벌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또한 재판관들이 결정한 값을 지불해야 한다.
(2) 그런데 여자가 다치게 되면 목숨에는 목숨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 화상에는 화상으로, 상처에는 상처로, 채찍질에는 채찍질로 갚아 주어라.
제8조 (1) 남종이나 여종의 눈을 쳐서 실명하게 되면 그 눈에 대한 보상으로 종을 놓아주어야 한다.
(2) 또 남종이나 여종의 이를 부러뜨리면 이에 대한 보상으로 종을 놓아주어야 한다.
제9조 (1) 소가 남자나 여자를 들이받아 죽이면 그 소를 돌로 쳐 죽이고 그 고기는 먹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소 주인의 책임은 없다.
(2) 그러나 그 소가 들이받는 버릇이 있는데 주인이 경고를 받고서도 우리에 가두지 않아 남자나 여자를 죽인 것이라면 그 소를 돌로 쳐 죽이고 주인도 역시 죽여야 한다.
(3) 그러나 그에게 배상금을 요구하면 요구하는 배상금을 지불하고 자기 목숨을 구속할 수 있다.
(4) 소가 아들이나 딸을 들이받았을 때도 이 율례는 적용된다.
제10조 소가 남종이나 여종을 들이받은 경우에는 소 주인이 그 종의 주인에게 은 30세겔을 지불해야 하고 소는 돌로 쳐 죽여야 한다.
제11조 구덩이를 열어 놓거나 구덩이를 파고 덮어 놓지 않아서 소나 나귀가 거기에 빠지면 구덩이 주인은 손해 보상을 해 그 가축의 주인에게 돈을 줄 것이요, 죽은 짐승은 구덩이 주인의 것이 된다.
제12조 (1) 소가 소를 다치게 해 결국 하나가 죽게 되면 그 주인들은 살아 있는 소를 팔아 그 돈을 나눠 갖고 죽은 소도 나눠 가진다.
(2) 그러나 그 소가 들이받기로 유명한데 주인이 우리에 가둬 놓지 않은 것이라면 그는 그 대신에 소로 갚아 주어야 하고 죽은 소는 그의 것이 될 것이다.
이 글을 다시 보면서 "종"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제6조에 "어떤 사람이 자기 남종이나 여종을 막대기로 때려죽이면 벌을 받아야 한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는 "그러나 그 종이 하루 이틀 뒤에 일어나면 벌 받지 않을 것이다. 종은 자기 재산이기 때문이다." 라며 왠지 종을 막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종"에 대해서 해석이 필요한 것 같다. 우선 "종"은 우리가 알고 있는 "노예"는 아닌 것 같다. 성경의 번역본(개역개정, 새번역, 우리말성경 등)에 따라 종이나 노예로 번역하고 같은 의미로 쓴 것이 보인다. (예,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 종살이, 노예살이)
성경은 기본적으로 '어쩔 수 없이 종이 된 사람'도 있다고 하고, 가나안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노예로 삼은 민족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종들을 위해 희년 제도를 두고 있고 다시 자유를 줄 수 있는 율법들을 두고 있다. 이것들은 성경을 읽어 나가면서 차차 살펴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율법 앞에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이 법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에 어떤 의미가 있나? 과거 미국은 노예 해방을 위해 싸웠고, 지금은 이를 지지하여 기본 인권을 위해 사람이 사람을 노예 삼는 일은 적어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것을 읽는 지금 우리 현대인은 어떻게 받아 들어야 하나?
우선, 이 법을 읽고 있는, 모세로 부터 듣고 있는 1차 독자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얼마 전까지 자기들이 바로 이집트의 노예들이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인생적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어쩔 수 없이' 누가 다른 집에 노예로, 종으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될 것을 역사적 사실로 지금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법이 필요했구나 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종"이라고 할 때 성경, 특히 신약에 와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은...",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이 되지 않게 하려는...", 이와 반대로 "의의 종" 등 이 "종"의 개념을 사용하 그리스도와 우리, 구원받지 못한 우리, 반대로 구원받은 우리를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율법의 "종"을 지금 어떻게 읽어야 하나?
개인적으로, 신약의 개념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가 이런 죄의 종이 었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면 의의 종이 되어 이런 종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그러니까 이 법에서 다루는 종과 같이 되어 섬겨야 하고 낮아진 마음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앞으로도 살펴볼 모세가 하나님으로 부타 받은 이 법들 규례들에 대해서는 모두 글자 그대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고 다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율법의 정신과 사랑의 정신 - 그러니까 제사법은 예배 -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것이고, 이 규례들은 사람 간의 관계를 위한 것이니 예수님이 새 계명을 주신 것처럼 “사랑”으로 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엄한 법 안에 사랑이 보이는가?